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생활시의 창시자’ 양동준 작가. 최근 판타지 소설을 비롯한 작품 창작에 여념이 없는 그를 이코노미뷰가 만나봤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시로 표현해내고,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삶 속에서 새롭게 건드려지는 감정의 복선을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내어 문단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그에게서 꿈꾸는 세상이야기를 들어본다.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양동준 작가는 이미 세간에 알려졌듯 ‘국제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작품으로는 (지금도 나는 에스오에스 신호를 보낸다) (달빛여행), (둥지)등을 출간했으며 잡지나 신문에도 원고 청탁을 받아 작품을 싣고 있고 중견작가로서 나이테가 점차 두터워지고 있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냐? 고 질문하자 그는 “어휴~전 정말 공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원고료를 받든 막노동을 하든 돈만 벌면 무조건 책사서 보고 신문보고 세상에 관심을 참 많이 가졌습니다. 대학 때는 주책맞게 술자리에서도 책을 끼고 다니며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꿈은 기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사회를 바로 알리는 법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제가 뭔가 옳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 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튼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살긴 했습니다.”고 말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저항시 발표
양동준 작가는 “등단은 국제문예를 통해 했지만 시는 이미 군사정권 시절인 1987년, 시집 (지금도 나는 에스오에스 신호를 보낸다)를 써서 사회에 커다란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와 정서를 담은 시집은 당시 비매품으로 배포됐는데도 불구하고 복사본이 나돌고 여기저기서 제 시를 외우며 좋아해 주시고 아직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학시절 인하대학교에는 순수문학의 조병화 교수님과 실천문학의 윤영천 교수님이 계셨는데 두 분의 강의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싶습니다”고 말했다. 현재 양동준 작가는 국제문단의 편집장과 국제문인협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문학계와 문학인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수원대학교와 성남방송고등학교에 출강하여 후학에게 자기개발, 동기부여등 문학 강의를 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삶 속에서 발견하는 생활 시詩
‘생활시’란 개념을 처음 만든 양동준 작가는 “책상머리에서 쓴 시가 아닌, 우리의 삶 속에서 묻어나는 감정들과 이야기들이 모두 시가 될 수 있습니다. 햇볕과 바람과 비를 맞은 과일이 맛있고 몸에도 좋은 것처럼 일상 들 속에서 부대끼며 일어나는 일들을 맛있게 버무려 시로 담아내는 일이야 말로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생활시’는 사람들에게 시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없애고 공감대도 클 듯합니다.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과일처럼 맛있는 생활시를 담아 독자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고 이야기 한다.
양 시인은 그의 작품 중 <끈>을 예로 들며, 오랫동안 함께 살던 장모님을 보내드렸다/ 살아생전의 가구나 옷, 흐트러진 약봉지를 모두 없애고 보니/ 텅 빈 방안이 다시 눈을 적셨다/가슴 한 켠도 먹먹하다/ 결국 부부싸움의 바람막이도 없어졌다/ 찌는 무더위 속의 나는 위기의 남자가 되었다/ 101동 1701호의 아파트는 이제/ 두 동강의 위험이 늘 도사린다(생략)라고 말하며 실제 오랫동안 모셨던 장모님을 생각하며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등 우리 주위의 모든 숨어 있는 이야기는 바쁜 일상과 만남, 생활과 생계를 위한 발버둥의 몸짓 속에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 이외에도 생전에 아버지 말씀을 담아 표현해낸<아버지 영전에 바치는 時> (무말랭이) (희망꽃) (어느 주부의 일상) (나만의 힐링)등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고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기업체 운영과 단체 임원으로 동분서주
작가로 전념만 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듯이 양 작가도 삶의 터전이 있다. 그는 인테리어 업체 (주)꾸밈디자인의 대표로서 실제 사업에도 매진하고 있는 경영자다. 특화된 시공기술과 디자인력, 창의적인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는 탄탄한 기업으로써 주거 및 상업, 오피스공간과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기능과 편의를 고려한 독창적 공간을 연출하는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죄가 많은 사람이라 견적 가격은 착하게 낸다고 한다. (웃음) 그런데 그의 이러한 재능은 단지 돈만 버는데 국한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인테리어를 ‘반전의 미학’이라고 정의했다.
누군가에겐 구질구질하고 폐허로 보이지만 “저는 폐허의 공간을 좋아 합니다“ 환경이 열악할수록 아름다운 공간을 구상하고 꿈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희망이 있으며,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인테리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필자의 지인이 큰 서점을 하고 있었는데 갈수록 형편이 어려워져서 파산할 지경에 이르러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옮겨야 할 형편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 쓰레기 더미와 곰팡이, 쥐들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는 낙후된 지하 공간을 보여주며 한 숨을 쉬며 죽어도 이런 곳으로는 이사를 못 오겠다고 손사래를 쳤을 때, 양동준 대표는 손벽을 치며 ”바로 이곳이다“고 좋아했다고 한다.
임대료가 6분의 1밖에 안되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공기 순환을 최우선 과제로 군더더기를 다 걷어치우고 원목 나무와 빈티지 풍의 컨셉을 가지고 서점을 변화시켰다고 한다. 요즘은 책보다는 인터넷이나 게임에 몰두해 있는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서점이나 출판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실의에 빠져있는 서점 부부를 위해서 완벽하게 탈바꿈 시켰다며 보여준 사진을 보니 예사 솜씨는 아닌게 분명하다.
어렵고 힘든 환경에 처한 단체나 사람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모습과 다르게 바보 같았다. 그러나 재능을 기부하고 생활시를 쓰고 있는 양동준 작가는 사람 냄새가 폴폴 나서 좋았다. 더군다나 ‘강서구 상공회의소 사무총장’ ‘강서구 배드민턴연합회 부회장’ ‘강서 호남향우회 연합회 부회장‘까지 역임하고 있으니 해도 해도(?) 너무 활동적인 것은 아닐까? 그는 “집사람이 그런 면에서는 늘 불만이 많습니다. (웃음) 하지만 제가 워낙 활동적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향이기에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회의적이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습니다.”고 말해 당분간은 가족의 품보다 사회의 품에 더 안겨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리면 어떻습니까. 사람답게 살아야죠
“꿈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상가건물을 갖는 겁니다. 돈보다도 자유롭게 글을 쓰고,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화가들이 그림을 전시할 공간도 만들어 주고 또 책도 읽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농촌과 도시를 오가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소망입니다. 또 현재 집필 중인 소설 60~70년대 배경의 <아름다운 시절>과 독도를 주제로 한 소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이 부딪히는 판타지 성격을 가진 소설이 될 것입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동준 작가는 “산업화와 기계화 속에 국가의 효율성과 이익은 커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개인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론 이 사회가 느리게 가더라도 일자리도 늘리며 좀 더 나누며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피력했다.
여러 기업과 단체에 강연도 자주 나간다고 밝힌 양동준 작가는 “제가 성공했기 때문에 강연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직전까지 가는 실의에도 빠져봤고, 다양한 실패도 경험했기에 오히려 누군가에게 도전을 이야기할 수 있고 수렁에서 빠져나가는 법, 긍정적인 마인드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기원했다.
양동준 작가 ccumimdesig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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