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특유의 기후와 토양성질, 풍부한 지하수는 제주 농업에 천혜의 환경조건인 동시에 농업인에게는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한중 FTA 발효로 농업시장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기에 작물과 병해충, 비료와 농약에 대한 지식이야말로 제주 농업의 미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 농업의 근본적인 체질개선 재고를 위해 원희룡 도정 이전부터 민관이 함께 학술· 정책적으로 많은 힘을 쏟고 있는데, 현해남 제주농업마이스터대학 학장이야말로 토양·비료·환경 등 다각도에 걸쳐 풍부한 연구 성과를 거두며 제주농업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핵심 인사다. 자신의 연구 성과가 제주도와 전국 농가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며 지식을 보급하느라 구슬땀 흘리고 있는 현해남 학장. 2015년 마지막 제주특별자치도 기획 특집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물었다.
실험실에서의 미시적인 농업생명과학의 연구에서 탈피, 제주특별자치도의 농업정책이 현장의 요구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는 현해남 학장은 현장을 중요시하는 야전형 학자다.
“2000년을 기점으로 연구 주제가 많이 변했어요. 이전까지는 미시적인 연구에 주력했다면, 이후부터는 거시적이고 정책적인 관점에서 농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농업인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제가 이렇게 연구 방향을 전환하는데 ‘새로운 연구 소재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과 ‘미시적 연구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한계’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기발한 연구 주제를 떠올리더라도, 그간 세계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보면 이미 선행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또 이런 미시적인 연구들은 정작 농업인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죠. 젊은 시절부터 일상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꿈꿔왔던 저는 농민 교육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현해남 학장은 매년 생명자원이나 농업에 관련된 각종 논문들이 수없이 발표됨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소출 증가에는 큰 효과를 주지 못해왔던 현실에 반성이 많았다고 한다.
“실용적인 연구와 농민 교육 과제는 FTA로 치열한 시장경쟁구도에 내몰린 대한민국 농업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항상 농민의 입장에서, 제가 그동안 쌓아온 연구 성과와 지식들을 전파하기 위해 여러 매체들을 활용하고 있어요. ‘제주농업마이스터대학’의 강단과 스마트폰으로 접속하는 ‘흙과 비료와 벌레 이야기’ 밴드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전국 농민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를 넘어 전국을 아우르는 농업지식의 전당 ‘제주농업마이스터대학’
제주농업마이스터대학은 변화하는 제주농업환경에 주목하고 보다 고품질의 작물을 더 많이 생산해 농민들의 삶을 증진시키고자 농식품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교육기관이다. 경험에 의존해온 구식 농경이 아닌, 지식·계량·분석의 지식을 겸비한 농민들을 양성하고 있는 본 기관은 앞으로 제주농업이 전국을 선도해나가는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제주농업마이스터대학은 7개 학과로 구성되어있다. 양돈 전공, 한우 전공, 참다래 전공은 육지의 타 마이스터대학과 비슷한 교과과정으로 윤영되고 있으며, 감귤전공, 친환경과수전공은 제주농업마이스터대학만의 강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이스터대학은 과거의 1회성 교육에서 벗어나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교육입니다. 이론과 현장실습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농업을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 곳이죠. 제주도의 면적은 서울시 면적의 3배에 불과하지만 농산물 생산량은 전체의 8%를 넘고 농업인 비율과 농업의 비중도 전국에서 가장 높기에, 앞서나가는 지식과 실패를 받아들이고 원인을 분석할 줄 아는 농민들을 육성한다면 제주는 한국 농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될 것입니다.”
총 2년 32학점으로 구성된 커리큘럼은 전공과 일반으로 나뉘는데, 전공은 필수(영농기술, 경영 분야)와 선택(영농기술, 경영, 교수법 분야)으로 학점의 8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일반과목으로 자율과목(대학자율 개설과목)과 특강(정책, 이슈 등을 다룬 과목)으로 보다 다양하고 넓은 시야를 가르친다.
“저희 마이스터대학에는 교수급으로 30명에 가까운 강사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농업기술원 지도사와 현장 전문가 100여명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농민들을 지도하고 현장의 문제점들을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감귤박람회
감귤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제주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1974년부터 2008년까지 명맥을 이어오던 제주감귤축제는 발전동력의 부재로 잠시간 막을 내렸다가 ‘서귀포세계감귤박람회’를 거쳐 ‘제주국제감귤박람회’로 재정비, 국제적 행사로 발전·개최되고 있다. 여기에도 현해남 학장의 활약이 남달랐다고.
“서귀포세계감귤박람회는 예전 제주감귤축제가 단지 감귤아가씨를 선발하는 등 지역 소규모 축제에 그친 점을 반면교사로 삼고, 종합 박람회 행사로 발전시켰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원희룡 도지사님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시고 감귤박람회를 ‘제주국제감귤박람회’로 도 차원으로 확대했습니다. 저는 제 1회 서귀포세계감귤박람회부터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을 맡아오다 이번 3회 2015제주국제감귤박람회에서 부터는 집행위원장 직을 맡고 있습니다.”
제주국제감귤박람회는 산업, 문화예술, 학술적으로 감귤산업에 접근하는 장으로서, 제주감귤산업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행사로 평가되고 있다.
흙과 비료이야기 만화
현해남 교수의 이름을 들으면 ‘만화가’의 이미지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만화로 이해하는 흙과 비료 이야기 1, 2권」은 평생에 걸쳐 농업에 대해 연구한 성과를 현실과 접목하고 응축해 농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재구성한 교육도서다. 2페이지를 넘지 않는 분량에 이슈를 담아내는 「만화로 이해하는 흙과 비료 이야기」얼핏 보면 신문의 만평을 닮았다.
“네 맞습니다. 신문의 시사만평과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교육만화는 회화스킬보다 정보가 중요하다는 점과, 복잡하고 정교한 그림보다 단순하더라도 직관적인 스타일이 지식전달에 있어서 월등하다는 것을 배웠죠. 지금까지 2권에 걸쳐서 농민들이 자주 궁금해하던 정보들을 담아냈고, 실제로 많은 효과를 거뒀습니다.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도 보내주셨고요. 2012년도에는 문광부 우수도서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현 학장은 “거의 1년 동안 농민신문 편집부에 만화를 연재할 지면을 부탁했다”고 밝혔다. 해당 언론 편집부는 난색을 보였으나, 현 학장의 열정과 구체적인 계획을 보고 격일로 발행되는 지면을 할애 했다고 전해진다.
“논문 발표와는 완전히 다른 희열을 느꼈어요. 비로소 내가 갈 길을 찾았다는 생각도 들었죠. 1997년부터 직접 만화를 배우고 연구 성과를 정리해 지면에 담아내기 시작했어요. 스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정확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맛깔나게’ 농민들에게 전달하는데만 집중했죠. 만화로 저의 지식을 전파하는데 큰 기쁨을 느꼈고, 이제 연구에서는 이런 기분을 맛보지는 못할 것 같아요(웃음).”
현해남 학장은 ‘흙과 비료와 벌레 이야기’ 밴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 농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현재 ‘흙과 비료와 벌레 이야기’ 밴드는 5000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런 성장추세라면 내후년에 3만 명까지 확장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생물 이름, 비료 종류나 사용방법 등을 PDF파일로 정리해 공유하고, 우연히 발견한 벌레가 해충인지 여부 등을 올리면 전문가가 답하는 등 아주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제가 주도적으로 밴드를 이끌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회원들이 스스로 지역별, 작물별로 모여 소규모 그룹을 형성하고 한 차원 높은 브레인스토밍의 단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으니, 그저 뿌듯할 뿐이죠. 본 밴드에서 열심히 노력해주고 계신 전문가 분들과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고 계신 회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현해남 학장은 농업인 교육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한다. 본인의 연구 결과와 다른 학자들의 성과들을 종합해 전파하고, 마치 ‘어두운 방에 촛불을 켜듯’ 암중모색의 농업 현실을 밝혀나가겠다는 각오로 마이스터대학, 밴드와 만화책 이외에 다른 매체 개발에도 힘쓸 생각이라고 한다. 한층 발전된 농업 이론을 전파하고 도정과 협조하면서 제주 농업의 발전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현해남 학장. 그의 식지 않는 열정과 굳은 신념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한국 농업에 적지 않은 공로를 세우게 될 앞날을 기대해본다. 이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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