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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도시로 재건되는아름다운

이탈리아 라퀼라 투어 | 2020년 03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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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설산의 중세도시 로까를 떠나 겨울 들판을 달려갔다. 아스콜리 피체노를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가자 한 곳은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96km 떨어진 아브르쪼 주의 라퀼라였다. "거긴 뭐로 유명해?" 하고 친구에게 물으니 "지진이 났던 곳이야"라며 친구는 덤덤히 말했다.
이탈리아 반도는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의 지각 판들이 서로 충돌하는 지역 근처에 위치해 있으니 지진이 좀 나는 곳이구나 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폐허와 개미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라퀼라는 내가 생각했던 경미한 지진 따위가 난 마을이 아니었다.
2009년 4월 6일 새벽 3시 32분, 이탈리아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지진이(리히터 규모 6.3도) 라퀼라를 덮쳤다. 그 날 20,000여 채의 건물이 내려앉으며 309명이 사망하고 1500여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라퀼라 시민의 90%가 보금자리를 잃었다. 라퀼라 지진은 사망자를 많이 낳은 단순한 재난사고가 아니었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참사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매일이 악몽의 연속이었다.
라퀼라는 1315년부터 1706년까지 총 일곱 번의 지진이 발생했던 지진위험지역이다. 네이쳐 지에 라퀼라에서 한 평생을 살아왔던 빈첸초 비토리니는 이렇게 인터뷰를 했다. "어렸을 적 마을에 경미한 지진이 발생할 때 마다 아버지는 집안 가족들을 다 깨워 건물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차 안에서 잠을 잤고, 아버지는 그 시간 동안 차 밖에서 다른 아저씨들과 담배를 피우며 밤을 지샜지요."
빈첸초는 4월 5일 밤 끊이지 않는 진동 때문에 아내와 집에 남을 것인지 밖에서 밤을 보낼 것인지에 대해 논쟁을 펼쳤던 그 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나는 내 아버지가 했던 그 전통을 지켰어야 했어요. 국가재난방지위원회 사람들이 큰 지진이 나지 않을 것이라 TV에 나와 확신했기 때문에 나는 아내와 내 딸을 설득해 집에 있자고 했지요." 그 날 새벽 빈첸초의 집은 지진으로 무너져 지금은 큰 구멍만 남았고, 그 아파트에서만 17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빈첸초는 그 날 아내와 딸을 잃었다.
라퀼라 시민들은 대지진 이 후, 가족들을 잃은 슬픔에 젖을 시간을 제쳐두고 정부에 크게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재난사태를 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이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가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진 발생 7일 전, 3월 30일에도 역시 심한 진동이 있어 주민들은 밖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그 때 시민 안전처는 즉각 국가재난방지위원회를 소집했다고 한다. 지진학자, 화산학자, 지구물리학자, 지진공학자 등과 같은 주요 전문가들과 방재위원회 부위원장인 베르나도 드 베르날디니가 위원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위원회가 회의를 통해 내린 결론을 매스컴을 통해 보도했다. '지진에 관련된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도 강진이 실제로 발생할지, 그리고 그 정확한 시기가 언제일지 예측불가능하다. 그리고 1703년의 지진과 같이 거대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
이 후, 베르날디니는 다른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최근의 지각활동이 어떠한 위험도 나타내지 않는다'고 재차 장담하며 '안심하고 집에서 와인 잔을 기울여도 된다'고 덧붙였다. 지진 사망자 중 그 날 이 방송을 보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29명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국립천체물리학연구소에 근무하는 지진학자 조아키노 줄리아니가 대지진 한 달 전 지진 발생을 예측하고 정부에 경고했지만 묵살 당했다 주장하며 국민적 분노는 더 거세져 갔다.
2010년 피해자 가족들은 지진 경보를 발령하지 않고,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키운 재난방지위원회 과학자 7명을 고소했다. 그리고 2012년 10월 7명의 과학자들은 '거짓 정보를 제시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책임'으로 징역 6년, 벌금 900만유로(125억 원)를 내라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과학계에서는 이러한 판결이 오히려 과학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발언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현대판 '갈릴레이 재판'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자연재해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과학적 지식으로도 완벽히 그것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인간은 끊임없이 실패할지 모른다. 그러나 라퀼라 지진사태의 중요한 맥락은 확신할 수 없는 과학적 지식을 가진 자들의 판단이 나와 우리 가족의 운명을 바꿀 수 있고, 그렇기에 그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최악의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라퀼라 주민들은 과학에 배신당한 것이 아닌, 그것을 다루는 인간들에게 배신당해 분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이뤄진 것처럼 보이는 라퀼라 지진사건의 재판 결과는 선과 악을 구분하며 사건의 결과를 희생양의 단죄를 통해 해결하려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대처이기에 경계되어야 한다.
내가 라퀼라를 방문했던 2018년도는 몇몇 상점들이 문을 열고 있었지만 여전히 9년 전 붕괴된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2019년도에는 대지진 발생 10주년을 맞아 추모 행사를 열었고, 대략 1만 7천 명 정도의 주민만이 다시 라퀼라로 돌아와 내진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그 날 무너진 문화유산들은 복구를 기다리는 중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항상 그래왔듯이 라퀼라는 다시 아름다운 문화유산도시로 재건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악몽도 언젠가 끝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글 : 윤주희 가이드
사진 : 윤주희 가이드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02-723-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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