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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운율을 가진 격자들의 합

<정상화>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2021년 07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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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단색조 추상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정상화의 대규모 개인전 <정상화>를 5월 22일부터 9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정상화>는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에 있어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일궈온 정상화(1932~)의 화업을 총망라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이다. 정상화는 회화를 근간으로 판화, 드로잉, 데콜라주, 프로타주 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며 평면작업의 가능성을 탐색해왔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작가 특유의 수행적 방법론을 창안하여 독보적인 단색조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토대를 확장하는 시도로써 정상화의 작품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동시대적 맥락을 살펴본다. 

정상화는 1932년 경북 영덕 출생으로 1953년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하여 1957년 대학 졸업 후 <한국현대작가초대전>(1960), <악뛰엘 그룹전>(1962), <세계문화자유회의초대전>(1963) 등 다수의 정기전, 그룹전에 참여하였고, 제4회 파리비엔날레(1965), 제9회 상파울루비엔날레(1967) 등에 한국 작가로 출품하였다. 1967년 프랑스 파리로 갔다가 1년 후 귀국한 작가는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일본 고베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이후 1977년부터 1992년까지 다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작업에 몰두하였다. 

1992년 11월 영구 귀국하여 1996년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마련한 후에는 줄곧 한국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창 시절 대상을 재현하는 구상 회화를 주로 그렸던 정상화는 1950년대 중후반이 지나면서 앵포르멜 경향의 표현주의적 추상을 실험하였다. 이후 일본 고베로 건너갈 무렵부터 작가는 앵포르멜에서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1970-80년대 고베와 파리에서의 작업 활동을 통해 그를 대변하는 단색조의 격자형 화면 구조가 확립되었다. 정상화는 다양한 기법과 매체 실험을 통해 종국에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뜯어내고 메우기”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방법론을 발견해냈다.

정상화만의 추상실험의 결실인 격자 구조 화면은 치밀하게 계획된 정신적 공력의 결과인 동시에 고된 육체적 수고의 결정체이다. 우선 캔버스 윗면 전체에 붓을 사용하여 고령토 약 3-5mm를 덮어 바르는데, 이를 일주일 이상 작업하고 난 다음, 캔버스 뒷면에 미리 그은 수직 수평의 실선 또는 대각선을 따라 주름잡듯이 접는다. 그 과정에서 화면의 균열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조각이나 공예 작업에서 볼 법한 도구와 재료, 그리고 행위를 통해 정상화는 자신의 화면을 직조해나갔다. 꺾어 접거나 칼로 그어 만든 균열은 작가의 “뜯어내고 메우는” 독특한 행위를 통해 깊이를 더하게 된다. 작은 사각형들에서 고령토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아크릴 물감 메우기를 수차례 반복함으로써 화면은 서로 다른 운율을 가진 격자들의 합이 된다. 단조롭고 수고스러운 반복을 축적하는 과정을 통해 정상화는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머물며 작업했던 여러 공간(서울, 고베, 파리, 여주)과 시간을 잇고 연대기적 흐름을 큰 축으로 하여 그의 독특한 조형 체계가 정립된 과정을 추적한다. 동시에 종이와 프로타주 작업 등 국내에서 자주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과 미발표작들을 통해 작가의 조형 연구와 매체 실험을 조명한다. 

전시는 ‘추상실험’,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 ‘격자화의 완성’, ‘모노크롬을 넘어서’ 등 4개의 주제와 특별 주제 공간인 ‘종이와 프로타주’, 그리고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영상자료와 기록물을 비롯해 작가의 초기 종이 작업을 소개하는 아카이브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정상화의 60여 년 화업을 총망라한 이번 전시는 한국 추상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작가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 “한국 미술사의 맥락에서 작가의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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