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16,500원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 2013)과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등을 통해 친밀한 관계에서 생겨나는 불안과 의심을 날카롭고 세련된 방식으로 그려온 손보미가 『사랑의 꿈』에서 공들여 묘사하는 세계는 그전과는 전혀 다르다. “한때는 부부에게, 한때는 특별히 비참한 삶을 산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지금은 일인칭에 관심을 가지는 중이다”(웹진 비유 2021년 3월호)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 세계는 주로 ‘일인칭 십대 여자아이’로 이루어져 있다. 장편소설 『작은 동네』(문학과지성사, 2020)에서 처음으로 일인칭 여성 화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 손보미는 이번 소설집에서 다양한 나이의 여자아이를 본격적으로 등장시키며 “연약하지만 다채롭고 위태롭지만 맹렬한 세계 속에 포함되어”(192쪽)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렇지만 『사랑의 꿈』 또한 손보미의 소설이기에 ‘십대 여자아이’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것들은 짜릿하고 통렬하게 깨어지며 새로운 얼굴로 드러난다.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사 / 16,000원
이 책은 독자에게 롤 모델이 되어주는 성공한 아나운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의 씩씩한 실패와 도전이 하나의 레퍼런스가 되어 그와 나란히 선 독자에게 용기로 가닿는 책이다. 우리는 도망이 간절해지는, 크고 작은 좌절의 순간에도 내면의 감정에 귀 기울이기보다 다른 이의 기대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애쓰고 감내한다. 그런 우리에게 “막다른 길 앞에선 용기 내어 자기 자신을 위해 도망칠 수 있으면 좋겠다”(11쪽)라고 힘주어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용기를 심어준다. 또. ‘도망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한 행동이며 자신 역시 기꺼이 실패하고 도망쳤기 때문에 조금씩 원하는 삶의 궤도를 찾을 수 있었다’는 솔직한 고백은, 실패에 대한 마음속 두려움을 깨뜨릴 뿐 아니라 틀에 박힌 성공만을 인정하는 사회의 경직된 잣대를 비튼다. 이처럼 유연하고 진솔한 저자의 삶의 태도는, 진정한 행복과 다양한 삶의 가치를 누릴 자유를 응원하고 긍정한다. 특히 수많은 갈림길 속에서 불안하고 불투명한 시간을 통과하는 또래 여성 독자에게 원하는 삶의 방향을 향해 꿋꿋이 나아갈 용기를 전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날씨와 얼굴
이슬아 지음 / 위고 / 15,000원
『날씨와 얼굴』은 이슬아 작가가 지난 2년간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다시 쓰고, 새로 쓴 글을 더해 엮은 책이다. “얼굴을 가진 우리는 가속화될 기후위기 앞에서 모두 운명공동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기후위기의 다양한 모습 뒤편에 그동안 인간이 외면해온 수많은 얼굴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이 시대가 외면해온 반갑고 애처로운 얼굴들을 불러낸다. 때로 그것은 ‘나’의 얼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된 동물과 택배 노동자와 장애인과 이주여성의 얼굴 들이다. “내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의 앞뒤에 어떤 존재가 있는지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는 저자는 분명 어떤 얼굴들은 충분히 말해지지 않으며 그들에 대해 말하려면 특정 방향으로 힘이 기우는 세계를 탐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슬아 작가의 다짐이기도 하다. 중요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고, 누락된 목소리를 정확하게 옮겨 적는 것.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배운 저항의 방식임을 곱씹는다. 저자는 그 어느 때보다 여러 사람에게 묻고 여러 책을 참조하고 부지런히 자료를 조사하며 이 책을 완성했다.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목정원 지음 / 아침달 / 24,000원
2021년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펴내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목정원의 사진산문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가 아침달에서 출간됐다. 목 작가가 2016년부터 찍어온 사진 100여 장과 함께 사진에 관한 에세이를 한 권의 아름다운 책으로 엮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시인과 화가와 사진가들은 공간에 기대 기록을 남겼다. 따라서 예술은 기억과 애도의 역사이기도 하다. 목정원은 장면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시도인 사진에서 사랑의 잔존을 증명하려는 기억의 기술을 읽어낸다. 우리 눈앞의 어떤 장면들은 어느 미래에 없을 사랑으로 흐르기에, 그것을 남기려 하는 일은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자 하는 의지와도 같다. 목정원이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일은 그렇게 사랑에 닿아 있다. 사랑이 있었던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남겼던 사진은, 이제 물성을 가진 그 존재가 사라지더라도 다시 개인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게 된다. 작가가 전하는 이 사진들을 통해 우리에게도 사진이 그러한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생에 가끔씩 타인들의 사진이 자신에게 곧 도래할 미래가 되기도 하듯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더 많은 장소를 우리의 기억 속에 남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그것은 더 많은 사랑의 기억들을 나눠 가지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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