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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과 새로움의 연극적 하모니

국립극단 | 2024년 03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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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은 올 한 해 선보일 12개 작품 라인업을 발표한다. 지난해 11월 김광보 단장 겸 예술감독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새로운 기관장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국립극단은 지난 1년간 준비한 작품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며 2024년의 힘찬 닻을 올린다.

올해 국립극단 라인업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새로움’이다. 작품 분류로 보면 고전, 레퍼토리, 근현대극, 창작신작, 해외신작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고려하여 균형감 있게 안배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과 첫선을 보이는 작품 모두가 ‘새로움’을 지니고 있다. 

2019년 초연 당시 주요 연극상을 휩쓸며 매 공연 매진을 기록해 온 <스카팽>이 전 회차 ‘열린 객석’으로 4월에 찾아온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만큼,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 보다 폭넓은 관객층이 열린 환경에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다. ‘릴랙스드 퍼포먼스(relaxed performance)’라고도 불리는 ‘열린 객석’은 통상적인 공연과 달리 공연 중 관객이 자유롭게 입․퇴장할 수 있도록 객석을 열어 두며, 조도와 음향을 부드럽게 조절하여 눈과 귀가 예민한 관객들이 보다 편안하게 느끼도록 한다. 미동 없이 공연을 관람하는 ‘시체 관극’이 매너로 여겨질 만큼 관극 문화가 경직되고 있는 시대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는 ‘느슨한 관극 문화’를 지향한다. 

5월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활화산>은, 1974년 국립극단 제67회 정기 공연으로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초연됐던 작품으로, ‘한국 연극의 거인’ 故 이해랑이 연출했다. 50년 만에 선보이는 국립극단의 <활화산> 연출은 극단 그린피그 상임연출이자 한예종 연극원 교수로 활동 중인 윤한솔이 맡았다. 윤 연출은 <두뇌수술>, <안산순례길>,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등 사회적 메시지와 미학적 완성도를 추구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작품에서 윤 연출은 과거 한국 사회 생활상과 더불어 시대착오적이었던 모습을 유머러스한 감각으로 풀어내고, 등장인물 중 원작에서는 일부로써 다뤄졌던 아이들의 시선을 가미할 예정이다. 특히 2024년은 차범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더욱 뜻깊은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7월에 개막하는 <햄릿>은 ‘관객이 애타게 부르던 그 이름’이다. 2020년 제작 당시 배우 이봉련을 ‘햄릿’에 전격 캐스팅하여 화제가 되었으나, 코로나19로 관객과 만나지 못한 채 온라인 극장을 통해서만 몇 차례 공개되어 더욱 애틋하다. 화면 너머로 만난 무대임에도, 관객들은 편견을 깨부수는 이봉련의 파격적인 연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3년간 꾸준히 국립극단 SNS에 재공연 요청 DM(다이렉트 메시지)이 도착할 만큼, 관객들의 관심과 갈증이 대단했던 작품이다. 이번에는 무대디자인과 의상 등 전체적인 비주얼 컨셉을 변경하여 새로운 미장센과 더 날카로운 시대성으로 관객에게 찾아간다. 

4월, 천선란 SF소설 『천 개의 파랑』이 연극으로 찾아온다. 연출을 맡은 장한새는 2023년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연출]을 통해 7개월 간 ‘과학기술과 예술’이라는 주제 아래 리서치, 스터디, 특강, 자문과 워크숍 과정을 거쳐 로봇 혹은 비인간의 개념이 무대에 존재할 수 있는지 탐구했다. 장 연출은 모션 캡처와 입체음향 기술 등을 활용하여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진 ‘연극적 메타버스’를 무대 위에 구현할 예정이다. 발달한 기술이 배제하고 지나쳐버리는 이들, 고도화된 자본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 부서지고 상처 입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이들을 내내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서사로 문학계에 돌풍을 일으킨 이 작품은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 등으로 대단한 저력을 과시하며 활발한 극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김도영의 각색을 거쳐 무대 언어로 변모한다. 

하반기 소극장 무대는 [창작공감: 작가]가 책임진다. 8월 무대에 오르는 <은의 혀>는 ‘돌봄 연대’를 키워드로, 기댈 곳 없이 살아가는 정은과 은수가 만나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주는 이야기를 통해 ‘돌봄’이 한 사람이나 가족의 희생을 통해 이뤄지는 낡은 가치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이어주는 적극적인 행동임을 이야기한다. 리듬이 살아 있는 맛깔난 대사와 랩 등 음악적 요소가 살아 있는 희곡은 서정적 터치와 명료한 연출로 두산연강예술상, 서울예술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고 있는 윤혜숙 연출이 맡았다.

10월에는 [창작공감: 작가] 두 번째 작품 <모든>이 무대에 오른다. 인류 인구가 20만여 명밖에 남지 않은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인간지성의 집대성인 AI가 전 가정에 보급된 세계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신효진 작가의 전작 <머핀과 치와와>에서 구축한 SF 세계관 안에서 또 다른 구역을 그리고 있는 후속작으로, 연출은 지난해 국립극단의 5시간짜리 역작 <이 불안한 집>을 통해 무르익은 연출력을 보여 준 김정이 맡는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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