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박현준 감독: 한양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저는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로시니 국립음악원 성악과, 파르마 국립음악원 성악과를 졸업하였습니다. 이후 저는 대통령 취임 축하 행사 및 <열린음악회>를 포함한 각종 행사나 연주회에서 공연하며 인기 테너로 알려졌으며, 이탈리아에서만 오페라 <토스카> 등 20편의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라보엠>으로 오페라 공연사상 최다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썼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월드컵 1주년 기념 오페라 <투란도트> 예술 총감독으로 세계 최대의 오페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 저라는 사람을 수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이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오페라 감독으로서 가장 잘한 일도 결국 월드컵 1주년 기념 오페라 <투란도트> 예술 총감독을 맡으신 것인가요?
박현준 감독: 물론입니다. 참 많은 일들을 이루어 냈죠. 40년이 흘렀네요. 잘한 일이라. 작품이 끝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지요. 기억이 감동이 오랫동안 남아있는 작품들이 있지요. 첫 번째는 1995년 예술의 전당에서 첫 오페라 "라보엠", 10회 공연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매진되었지요. 오페라가 당시에 보통 4회 공연으로 끝나던 시절이었는데 10회 공연은 기록적이었지요. 두 번째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선보인 오페라 "투란도트" . 신드롬과 기적이 일어났지요. 중국의 거장 장이모우 감독을 칠고초려 끝에 설득해서 연출자로 참여시켰고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경기장 오페라였으며 세계최대 오페라였습니다, 그때 저는 출연자 및 스태프 1,500명의 무대 인사후 마지막으로 전 출연자와 스태프들을 이끌고 무대 인사를 하는데 35,000명 관객의 20분 동안의 기립박수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35,000명의 헤드폰 무대를 담고자 하는 플래시를 불빛은 장관이었고 그것은 밤하늘의 별빛이 쏟아지는 듯하였습니다.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지요.
세 번째는 2024년 투란도트입니다, 코엑스에서 연말에 가장 주목을 받았던 공연입니다. 언론에 집중적으로 조명되었지요. 정말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아! 세상이 변했구나. 물질 만능주의 집단 이기주의가 세상 이토록 팽배하다” 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순수와 예술 인문학적인 소양들이 소멸해 가고 있는 현실에 음악가로, 예술가로, 교육자로 비애를 절감하였고 과거 오페라 무대가 좋아서 선배님과 선생님들과 몇 달을 함께 웃고 울고 뒹굴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그 시간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 오페라로 무대로의 열정을 태우는 예술가들의 열정과 혼이 사라졌음을 보게 되었지요.
합창단 연기자 수백 명의 출연자들은 단지 저에게 출연료를 지급하는 제작자로만 여기는 것을 보고 평생 온갖 어려움도 꿋꿋하게 지켜온 자존감이 무너짐을 느꼈지요.
그러나 저로 인하여 플라치도 도밍고, 호세쿠라 아스믹 그레고리안, 에바플로카, 유시프에이바초프라는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이 한국의 투란도트를 위해 저의 우산 아래 모여 한 세기에 다시 나오지 못할 투란도트를 만들었음에 깊은 스스로의 위로와 작은 자부심을 갖습니다.
Q.오페라와 사랑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현준 감독: 단연케 오페라는 모두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랑하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면 오페라 무대에 서기가 쉽지 않겠죠. 설령 무대에 서더라도 오페라의 극치를 이루는 음악을 선보일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다수 오페라는 ‘사랑하는 여인이여 왜 나를 떠나려 하나? 나는 널 사랑한다’의 흐름으로 진행되고, ‘나’는 그 사랑 때문에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렇기에 열정을 다해 사랑해 본 경험이 없다면 이를 노래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즉, 오페라와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Q.감독님은 목사님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박현준 감독: 저는 젊은 시절부터 늘 교회와 함께였습니다. 찬양대원으로서, 또 성가대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신앙의 토양 위에서 성장했지요. 사실 서양 음악사에서 헨델이나 베토벤 같은 거장들 역시 교회 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음악의 근간과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곧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치열한 예술계의 현장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이끌다 보니, 때로는 예기치 못한 오해를 사기도 하고 견디기 힘든 부침의 시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 고난의 순간마다 저를 지탱해 주고 위로해 준 것은 오직 신앙뿐이었습니다.
제가 목사로서 안수를 받게 된 것은 저에게 과분한 축복과 달란트(Talent)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그 은혜를 온전히 되돌려드리고 싶다는 순수한 소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하나님, 제가 예순이 되면 당신의 종이 되겠나이다” 라고 드렸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 약속과 서원(誓願)을 지키기 위해 이 길을 택했고, 이제는 예비하신 길을 따라 어디든 기꺼이 나아가려 합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부(富)를 축적하기 위해 오페라를 한 적이 없습니다. 오페라를 순수하게 사랑했고, 제 평생을 바쳐 그 가치를 지켜왔을 뿐입니다. 이제는 예술가이자 목회자로서, 제가 받은 달란트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사명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Q.2026년에는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박현준 감독: 제가 사실은 2025년에 선교의 목적으로 케냐에 가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도 많이 했죠. 그런데 제가 2024년 12월에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어게인 2024 투란도트’ 공연의 제작 겸 예술 총감독을 맡게 되었고, 이 공연을 제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준비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2024년 12월은 우리나라가 계엄령으로 충격에 빠졌고, 언론의 과대 보도와 직원의 업무 미숙 등이 더해져 흥행에 실패해 1년여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대하던 케냐행도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26년을 비롯한 제 남은 시간은 남을 위해 노래하고 헌신하고 어쩌면 또 교회도 세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Q.감독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박현준 감독: 저는 오페라를 사랑했던 저의 지난 시간이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페라에 모든 것을 바친 남자로도 기억되고 싶습니다. 저는 벌써 오페라를 연출한 지 30년이 됐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나라 오페라 시장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굉장히 절실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국내 오페라 시장의 부흥 및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미래에 오페라를 산업화하려고 했던 사람으로 제가 기억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조이향 ㈜한국융합콘텐츠컴퍼니 대표는『조이향의 굿피플, 2026 세상을 바꾸는 선한 영향력 12인 선정』을 기획해 올해 첫 번째 주자로 박현준 오페라 감독을 만났다. 조 대표는 본지 편집위원 및 객원기자 / 미국 오이코스 경영대학원 웰라이프 경영 주임교수 / 국제대학교 엔터테인먼트학부 겸임교수 / 안양시 안양문화원 홍보대사 및 문화예술전문위원 /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기원 국제문화예술비엔날레 총괄 기획 / 아시아평화민속예술제 무용 부분 총괄 기획 / 평창군 산림자원 스토리텔링 문화관광 융복합 콘텐츠 총괄기획 / 기업, 문화, 예술, 교육 기획 · 자문 약 1,000회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