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이 은퇴했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명문 클럽에서 선수 시절의 황금기를 보내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캡틴 박’으로 동료를 이끌며 월드컵 역사상 원정 첫 16강을 일궈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인 그가 떠나고 우려했던 대로 우리나라 축구는 위기를 맞이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작년 열렸던 브라질 월드컵에서 졸전 끝에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둬 귀국한 대표팀을 향해 국민들이 내던진 엿 세례일 것이다. 이것은 국민들의 커다란 실망감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박지성이라는 위대한 선수가 떠난 후 남겨진 부재의 자리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아킬레스건이 된 지금, 우리나라 축구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다시금 등장하여 국민을 위안시킴과 동시에 희망의 존재가 되고 있다.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닌, 어느새 27살이 된 새로운 캡틴 기성용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린시절부터 소위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가며 연령별 대표팀을 거친 그는 준수한 외모와 더불어 뛰어난 잠재력 그리고 스타성까지 겸비하여 차세대 스타플레이어로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며 여론과 언론의 뭇매를 받았고, 오히려 이것이 전화위복이 돼 성장의 발판으로 작용하였다. 기성용은 자신의 기량에 비해 다소 설익은 정신력을 강화하여 축구대표팀의 주장완장을 달게 됨은 물론 세계 최고의 리그인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이하 스완지)의 핵심선수로 성장하여 2014~2015 시즌 스완지시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기성용의 지난 시즌 활약은 실로 굉장했다. 그의 소속팀 스완지는 지난 시즌 중반 팀의 간판 공격수 윌프레드 보니를 이적료 약 4,000만 유로(한화 약 475억 원)에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시켰다. 팀의 NO.1 스트라이커를 이적시켰기 때문에 득점포를 가동할 선수가 사라져 다수의 언론은 스완지의 몰락을 예견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기성용이 스완지의 득점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기성용은 본 포지션이 중앙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즌 8골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자로 만점 활약을 펼쳤다. 중앙미드필더인 그가 놀라운 득점력을 발휘하며 보니의 공백을 최소화하여 스완지는 막판까지 꾸준하게 승점을 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스완지는 승점 56점을 획득하여 프리미어 리그 8위로 시즌을 마쳐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최고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기성용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스완지의 프리미어 리그 최고 성적을 이끈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33경기에 출장하여 8골과 1개의 도움을 기록하여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여기에 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특유의 패스 정확도와 개선된 공중볼 싸움 능력까지 갖춰 가장 경쟁력 있는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중앙미드필더로 성장하여 대내외적인 인정을 두루 받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재미있는 설문이 있다. 지난 6월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에서 ‘올시즌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팬들이 2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선정하는 설문을 진행했는데 기성용이 당당히 6위를 기록한 것. 10위 이내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이 산티 카솔라(아스널), 세스크 파브레가스(첼시), 조던 헨더슨(리버풀), 야야 투레(맨시티), 네마냐 마티치(첼시) 등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번 설문을 통해서도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 내에서 달라진 그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결과였다.
이 기세를 이어 기성용은 스완지 팬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상’에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이에 스완지의 게리 몽크 감독은 올해의 선수에 기성용이 선정된 데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고 말했다. 몽크 감독은 지역 일간지 ‘사우스 웨일스 이브닝 포스트’와의 시즌 결산 인터뷰에서 팬들이 기성용을 올해의 선수로 선정한 데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러나 기성용은 올해의 선수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몽크 감독의 스완지의 중심에는 기성용이 있었다. 몽크는 스완지 감독으로 정식 부임할 때부터 당시 선덜랜드로 임대 이적해 있던 기성용을 복귀시킨 후 그가 팀에 잔류하도록 설득했다. 결국, 기성용은 몽크 감독이 올 시즌 가동한 4-2-3-1, 4-3-3, 4-1-2-1 포메이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를 두루 소화하며 공수에서 팀의 중심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기성용은 올여름 명문 구단 아스날의 영입제의를 받았다. 영국 복수의 언론에서 발표한 아스날이 기성용을 영입하기 위해 준비한 이적료가 무려 1500만 파운드(한화 약 254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아스날은 전 세계 축구 선수라면 한 번쯤 꿈꿀 만한 명문 구단이다. 아스날 이적은 기성용에게도 선수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꿈의 무대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성용은 아스날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 스완지시티에서의 선수 생활을 한 번 더 택했다. 이는 기성용의 성숙함을 느낄 수 있는 행보였다. 그는 아스날 이적설에 관해 “나에게 최고의 팀은 나를 필요로 하는 팀”이라면서 “내가 뛸 수 있는 팀에서 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적에 대한 확실한 지론을 밝혔다. 이것은 박주영 등 아시아 선수들이 철저히 실패한 명문 구단 아스날보다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스완지에서 선수 경력을 이어가겠다는 그의 속내로 해석 가능하다. 이렇듯 SNS글 논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축구 본고장에서 전성기를 활짝 열기 시작한 기성용의 다음 시즌도 열렬히 응원한다. 그는 의심의 여지 없는 한국 축구의 대들보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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