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홍보 사업들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서 모 교수의 한국 홍보 광고가 미국 현지화에 실패하면서 혹독한 비평에 직면한 바가 시사하듯, 콘텐츠의 특성을 외면한 광고 전략은 무리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로 우리 고유의 정서를 포괄적으로 포용하는 동시에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관련 산업과 융합해 실질적으로 해당 국민들이 먼저 접하고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한지는 우리 고유의 정서를 아우르는 동시에, 뛰어난 색감과 친환경성, 다양한 산업과의 접목 가능성으로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이끄는데 가장 적합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최근 전주한지패션대전, 한지패션쇼 등 국내 다양한 단체 행사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미를 아우르는 한지패션이 주목받는 가운데, 전통 한지 복원과 계승을 선도하는 한지 명인 이서하 작가를 만나 한지문화의 발전방향에 대해 인터뷰했다.
한지 명품화를 선도하는 명인(名人) 이서하 작가는 저술 및 작품 활동으로 한지의 세계화에 헌신해온 인물이다. 특히 그가 펴낸 한지그림 및 공예 안내서 「서하한지월드」는 초심자들도 쉽게 한지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저는 작품 활동과 사회 활동을 병행한 결과,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공예나 미술의 틀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활용 영역을 넓혀가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한지를 산업분야에서 실질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충분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한지산업에 대한 기업 투자를 이끄는 중요 매개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서하 작가는 소규모 공방이나, 작가 협회들이 주축이 된 한지 산업의 성장 동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고백했다. 더 근본적으로 한지의 멋을 알리기 위해서는 패션, 디자인 등 산업 분야에서 응용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사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 미국 샤넬-달라스쇼 런웨이에서 선보인 '트로아(TROA)'의 한지 패션이 훌륭한 롤모델입니다. 한송 디자이너가 선보인 데님팬츠로 제작된 한지 원단은 전 세계 샤넬 매장에서 전시·판매됐지요. 아울러 한송 디자이너는 ‘TROA JEANS’를 론칭, Barneys New York 미국 3개점, Barneys New York 도쿄 2개점, 파리 꼴레뜨 등 패션의 중심지에서 큰 호응을 얻은 바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한지가 샤넬에서 큰 호응을 얻은 것이야말로 2000년대 들어 가장 중요한 한지 발전사례가 아닐까 싶어요. 한지가 높은 수준의 예술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었죠.”
국제교류를 통한 한지산업 발전 이끌어야
사실 이 작가는 10여년전부터 국내 패션계에서 한지를 명품의류의 소재로 사용해야함을 강조해왔다. ‘친환경이 곧 럭셔리’로 인식되기 시작한 21세기야말로, 한지가 가진 장점들이 세계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최적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 한지패션으로 세계시장을 주도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제가 당장 뛰어들어 패션시장을 리드하고 싶지만, 여러모로 힘이 부족해서 안타까울 뿐이에요. 우선 옷에 대해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의 한지를 패션과 접목해 실용옷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준비는 하고 있지만, 서두르거나 욕심을 부리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역할을 가지고 태어나죠. 저는 작품 활동을 하고 책을 펴내는 것만으로도 신께서 주신 저의 쓰임새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일본에서 한지 시장이 거대하게 성장한 것처럼, 국내에서도 한지가 고부가가치 사업 아이템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울러 국제 패션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으니 충분한 자금과 혜안을 갖고 계신 기업가들의 관심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서하 작가에게 일본은 애증의 나라다. 비록 우리의 전통 한지를 강탈한 나라지만, 한지 장인들을 우대하고 그들의 예술성을 발휘하도록 지원하고 관리한 일본의 저력은 높이 살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영토분쟁이나 역사 관련 쟁점들로 국내에서 반일본 정서가 팽배해지고 있는데요, 이럴 때일수록 일본이 어떻게 우리의 전통 문화를 가져갔고, 이를 관리해서 일본의 문화로 승화시켰는지 보고 배워야합니다.”
감정에 매몰된 나머지 일본의 강점마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일본 열도에서 한지는 고급스런 공예·예술·패션의 소재로 인식되고 있으니, 말로만 한지를 알린답시고 애꿎은 세금만 낭비하는 한국정부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우리 것을 지키는 진지함에 있어서 일본은 한국보다 한수 위인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한지 예술계가 교류하면서 서로의 역량을 키워나갔으면 좋겠어요. 페어플레이가 필요해요. 한지는 앞서 설명한 패션이나 공예 뿐 아니라, 인테리어·건축 등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한일 양국이 서로의 한지를 견제하고 공격하기보다 서로의 강점을 배우고 저마다 전문분야를 개척해나가는 것이 양국의 공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서하 작가는 철학이 담보된 한지 예술을 강조했다. 단순한 상술은 오히려 한지의 계승과 발전에 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학양성 및 저술활동에 주력
이서하 작가는 여전히 후학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게 수업을 청하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지만, 특히 그는 타 연구소에서는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수업을 추구한다.
“이미 전통한지를 접하신 분들께서 그림과 접목하기 위해 서하갤러리를 찾아주고 계세요. 어느 정도 한지에 대한 이해도를 갖추고, 보다 높은 단계로 거듭나는데 저의 경험이 도움 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수업시간 동안 제가 가지고 있는 한지 노하우와 철학을 모두 전수해 드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제 수업이 한지를 다루는 기교 뿐 아니라 마음가짐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수업에 앞서 항상 우리 전통 한지의 역사를 가르친다. 아무리 한지의 세계화가 중요하다 해도, 우리 전통 문화라는 정체성을 잃어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세계 각국 대사관 사모들도 이서하 작가의 명성을 듣고, 한국의 예술을 배우고자 그를 찾는다. 이 작가와 한지그림을 배우면서, 한국 전통미에 매료되고, 그 우수성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 작가는 “최근 칠레대사관 사모가 고국으로 돌아가 동영상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며 “그간 모진 핍박 속에서도 외롭게 싸우며, 한지를 지켜온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했다”고 전했다. 또 이서하 작가는 「서하한지월드」에 이어서 한지의 응용 분야별로 한 권씩 책을 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지 패션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직접 수업을 들으며 집필에 앞서 제반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이미 해외에서는 천연 염료로 물들인 한지를 의류 소재로 사용하고 있어요.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지도서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번에 펴낼 제 책이 기업 뿐 아니라, 개인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되도록 충실히 준비하겠습니다.”
싱가폴·미국 마이애미 아트페어 참가
현재 그는 싱가폴 아트페어, 미국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출품할 작품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저는 지금까지 반추상이나 비구상을 주로 다루고, 고뇌와 사유의 작품을 많이 했는데요. 이번에는 보다 대중의 요구에 호응하려 노력했습니다. 이번 싱가폴 아트페어에는 구상화 3점을 출품했고, 작품의 크기도 키웠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싱가폴은 아기자기한 구상화를 선호하는 반면, 미국 마이애미에서는 반추상이나 비구상을 선호한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세계 아트페어에 출품하기 위해서는 보다 작품 스펙트럼의 폭을 넓혀야겠어요.”
이서하 작가는 한지 산업의 발전을 위해 먼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해야 함을 강조했다. 부디 정부와 의회는 당리당략을 떠나 실질적으로 국부를 창출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문화 정책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일본의 한지 예술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전통 한지의 질감을 살린 현대적인 아이템 개발에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동안 한지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고, 후학 양성에 몰두하고 있는 이서하 작가의 모습에서 큰 보람과 가능성을 확인했다. 국제무대에서 한복 입은 한지화가로서 작품을 알리고 싶다는 이서하 작가. 향후 그가 한지패션산업의 중추역할을 맡아 한국예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서하한지 브랜드의 명성을 세계 속에 떨치길 기대한다. 정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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