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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학 대가 백파 원장 단독 인터뷰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에 국운이 걸려 있다”

커버스토리-백파카운셀러상담원(한국수경학연구원) 백파 원장 | 2016년 10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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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되고 있는 세종시는 국토균형발전을 넘어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가치 있는 도시, 세계가 주목하고 동경하는 명품도시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세종시야말로 대한민국의 국운(國運)을 견인할 구심점이기 때문입니다.”
백파카운셀러상담원 백파 원장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세종시의 발전을 통한 국가 융성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수경학(壽鏡學)의 대가(大家)로서 국가의 발전방향을 통찰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소임임을 강조했다. 수경학은 목숨‘수’, 거울‘경’자로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학문이며 백파 원장은 수경학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명인이다. 한국의 수경학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는데, 2002년부터 미국의 한인방송과 CBS방송 등에서 5년간 재미교포와 현지인을 대상으로 상담활동을 펼쳤고 미국, 중국 등 세계 39개국으로 특별 초청되어 국운과 장래를 카운셀링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세종시’를 통해 국가발전의 진일보를 이룰 수 있다는 백파 원장의 메시지를 독자와 함께 경청해 본다. 
백파 원장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송파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당대 수경학(壽鏡學)의 대가(大家)로 성장했다. 그는 남다른 통찰력과 예지력을 가진 인물로 심오한 수경학의 경지를 터득하여 국내 유일무이한 수경학 대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수경학은 풍수지리와 사업, 직업, 상호명, 가정문제, 작명, 운세 등 다양한 분야의 상담이 가능한데, 태어난 시에서도 초시, 중시, 말시로 세분화하여 판단하고 상담자 집안의 본과 지역까지 감안하여 운명을 통찰한다. 백파 원장은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서 정계 수뇌부와 국내 굴지의 그룹 총수들의 곁에서 도움을 주며, 국운은 물론 사업 방향과 인재 등용 등 중요한 결정에서 상담활동을 해왔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저서에서도 백 원장이 언급된바 있다고 한다. 

수경학(壽鏡學)의 창시자, 불세출의 명인
기자는 세종시를 통한 국운 융성 전략에 대한 질문에 앞서 독자들을 위해 먼저 백파 원장의 성장과정에 대해 물었다. 
“어린 시절 저는 태어난지 8개월만에 전염병으로 부모를 여의고, 주위어른의 도움으로 합천 해인사에서 성장했습니다. 이후 해인사 송파 큰스님이 자식처럼 키워주셨고, 스님께서 수경학과 지리학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켜주셔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중 큰스님이 타계하시고 큰스님과 인연이 있던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과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여 큰스님이 가르쳐주신 수경학을 통한 상담업을 부산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속칭 ‘총각도사’라는 소문이 지역은 물론 전국에 자자했고, 백원장을 만나려면 3-4일은 걸려야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정도로 이름이 났다. 심지어 백원장의 상담소 주위에 조그마한 여인숙과 여관이 있었는데 그에게 상담을 받기위해 손님들이 기다리는 기간에는 주위 숙박업소들이 방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국가 수뇌부의 높은 분들은 물론, 지금은 굴지의 재벌이 된 많은 기업의 창업회장들의 운명을 봐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저는 절에서만 자라서 돈의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형제하나 없는 단신으로 생활해왔기 때문에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왜 돈과 세상물정을 모르고 오로지 상담과 역술에만 집중했는지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웃음).”
그는 서민부터 국가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왔다. 특히 6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절 기업인들과 인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산업계 발전은 물론 지리학을 통한 도로, 도시개발 등 국가 기반시설 기획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 당시에는 ‘그룹’이라는 말은 상상도 못했고, 지금은 누구나 아는 기업들도 당시엔 이름조차 생소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기업들이 사업상 새로운 성장을 시작할 때 또 사업전략을 수립할 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이 형성되는 것을 보며 역술가로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당시 창업가 분들이 사업체를 만들기 위해 저에게 많은 상담을 해왔고 저 역시 그분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세종시’는 명당(明堂)  
백파 원장은 당대 수경학의 대가로서 국가 발전의 비전을 기자에게 새롭게 제시했다. 한민족의 천년의 번영을 위해 그가 제시한 것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되고 있는 세종특별자치시(이하 세종시)’를 통한 국가발전 방안이다. 백파 원장은 이미 1973년도부터 국가 수뇌부에 현재의 세종시 자리인 당시 공주군 장기면, 의상면, 연기군 금남면, 남면 등 일대에 나라의 수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당시 정부차원에서도 백파 원장의 의견을 신뢰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인 수도 건설을 위한 실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수도 이전은 미뤄졌지만 백파 원장의 제언에 힘입어 금남면 일대는 항상 수도 이전 최적지로 정치권의 관심을 받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권에 이르러 본격적인 세종시 건설로 이어지게 되었다. 백파 원장은 세종시를 중심으로 국가시스템을 재정비할 때 나라가 융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초 지금의 세종시 지역에 큰 사고가 있었고 그때 저는 국가 수뇌부의 요청으로 그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세종시 지역을 면밀히 살펴보고 지형이 너무나 좋아서 나라의 수도 자리로 국가 수뇌부에 건의했고 이를 계기로 정부에서도 큰 관심을 받는 곳이 되었습니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오늘날 세종시의 탄생을 볼 때 제 예견이 맞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1973년부터 국가 수뇌부에 현재의 세종시 위치로 수도가 옮겨져야만 나라가 편안해진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가보시면 세종시의 지형적 구조가 굉장히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풍수적으로 판단하면 계룡산, 갑하산과 대전 동학사, 마곡사 줄기를 볼 때에 현 세종시의 운기는 바람이 불어 내려와서 쉬었다 가는 형국입니다. 즉 하늘이 내린 땅이라는 뜻입니다. 이 땅은 일반인 중에서도 잠을 못자거나 피로하거나 정신이 어지러울 때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 몸이 회복되는 명당중의 명당입니다. 그만큼 대단한 지형이고 그래서 이미 40여년 전부터 국가 수뇌부에서도 수도 이전자리로 기획해 왔던 곳입니다.”
세종시의 현재위치는 하늘이 내린 자연환경과 지리적 여건으로 과거에도 수차례 국가 융성을 이끌 도시 건설의 최적지로 꼽혀왔던 곳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세종시의 위치는 1500년전 삼국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으며, 조선 건국기에는 서울보다 유력한 왕도의 후보지로 거론됐던 곳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건국 후에는 남북을 잇는 중요도로와 철도가 지나는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백파 원장은 이 같은 배경을 볼 때 세종시의 탄생은 결코 한시적 시대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며 수 천년의 시간을 거쳐 우리가 준비해온 필연적 결과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개발,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백파 원장이 또 한가지 강조한 것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계획의 일관성 있는 추진이다.
“자 여기 지도를 보세요. 현재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추진계획을 보면 도시구조나 관공서 배치 등 도시구성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도시 건설의 최고책임자가 누군지 모르고 만난 적도 없지만, 지금 도시가 만들어지는 형국을 보면 분명 지형과 지리학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 봐도 도시계획이 훌륭하기 때문에 지금의 최고책임자가 도시 개발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도록 정부와 관계부처가 변함없이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각 부처의 장관이 새로 임명되기만 하면 자리도 바꾸고 집기를 교환하는 등 큰 혼란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국운을 바꾸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그런 혼란이 발생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계획대로 도시가 건설되고, 도시 건설 최고책임자가 처음의 추진계획대로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현재 도시의 구성형태는 산줄기를 보든, 인맥을 보든, 땅의 기운을 보든 모든 것이 지금의 구조대로 나가야 합니다. 만약 성급하게 계획이 틀어지고, 도시구조가 바뀐다면 ‘혈’이 끊어지는 등 많은 혼란이 초래될 여지가 있습니다. 현재 추진되는 계획대로만 도시구성이 이루어진다면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불러오는 최고의 도시가 될 것입니다.”
세종시는 국토균형발전을 넘어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가치 있는 도시, 세계가 주목하고 동경하는 명품도시를 만들어간다는 궁극적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종시는 대한민국의 성장을 견인할 구심점을 마련하는, 말 그대로 건국이래 최대의 대역사(大役事)이기 때문이다. 백파 원장은 세종시야말로 일찍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그 어느 도시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특별한 도시, 모든 구성 요소와 기능이 특화된 행복도시의 실체이며 부강한 국가로 가는 초석이라고 역설했다. 

법(法)도 외면한 억울했던 시절
백파 원장은 그동안 수경학과 상담에만 전념해왔다. 말 그대로 ‘인생상담’이기 때문에 상담자가 모든 것을 허물없이 털어놓고 상담하고 운명과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는 카운셀링이다. 그러다보니 기업인, 공무원, 정계인사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깊은 이야기까지 알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구설수에 오르는 일도 생겼다. 타인의 어려움을 들어주기 위해 백파 원장은 순수한 마음으로 관의 고위직에 있는 이들에게 부탁을 전달했다가 곤혹스러운 일을 당한 것이다. 기자는 어렵게 그간 쌓아온 억울한 심경을 물었다. 시종일관 한결같이 진중했던 백파 원장도 정치인과 얽힌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정말 치를 떨 정도입니다. 너무나 억울하게 많이 당하고 금전적인 손실도 많았어요. 제 상담객 중에는 사업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고 납품, 사업인허가 등 여러 가지 애로점이 많습니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저를 통해 접근해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고 장담하고 정치후원금을 원했고, 저는 그 말을 믿고 상담객에게 정치후원금을 받아 정치인에게 전달하면 그 뒤로 정치인은 나몰라라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일이 처리되지 않으니 상담객은 나를 사기로 고소합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정치인에게 경찰이 전화하면 정치인들은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여 나만 억울하게 당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검사, 경찰 등 사법기관에서 편파적으로 저를 처벌하여 억울했던 울분의 세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맹세코 남을 속였다면 저는 벌써 천벌을 받고 죽었을 것입니다.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백파 원장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기가 찰 노릇이지만 역술인이 힘을 가진 고위공직자를 당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에서 모든 누명을 백파 원장이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몇몇 부정한 고위공직자들은 이후에도 백파 원장에게 상담자의 어려운 일을 언제든 해결할 듯이 접근했고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권세를 이용해 모두 빠져버리고 백파 원장만이 책임을 지는 식이었다.  
“당시 저는 정말 이 사회의 비정한 논리를 몰랐고 오직 큰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수경학 공부에만 전념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사기꾼이 되었고 도둑이 되었다는 현실을 깨닫고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자세한 조사조차 하지 않고 그저 전과가 있다하여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현 실정의 부조리함을 법조인들도 알아주길 바랍니다.” 
백파 원장은 금전적인 이익만을 챙긴 고위직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이후 자신을 언제 보았냐는 듯 하는 그들을 보며 사회의 비정함과 비열함을 느꼈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무조건 전과가 있다하여 전후 충분한 조사 없이 백 원장에게 벌을 주었고, 심지어 조사관은 백원장의 말은 듣지도 않고 고위직의 말만 믿고 사건을 처리하기도 했다. 
“부모형제 없이 자라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고, 주위에 아는 분들이 그것을 악용해 저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저는 외로운 마음에 믿다보니 피해를 보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저는 하늘을 두고 맹세컨대 사리사욕을 탐한 적도, 돈을 흥청망청 써본 일도 없고 술은 일체 배우지도 먹지도 못합니다. 여건이 된다면 세상에 이런 부조리함을 알려 경종을 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백파 원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재까지도 백파 원장의 명성과 지위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권모술수로 억울한 일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당대 수경학의 대가로서 정치인과 가까이 지냈다는 죄로 그가 감내해야 했던 수모는 너무나 컸다.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
백 원장은 이후 일방적으로 처리된 사건기록을 확인하고 자신을 판결한 사람들을 몇 차례 찾아가서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판사였던 그 분들 또한 억울한 사연을 이제야 이야기하니, 사건일지에 기록된 것을 보고 판결한 것인데 안쓰럽고 안타깝다고 하며 용기를 주었고 어떤 분은 백원장을 위한 무료변론을 해주기도 했다.  
“다시 한번 하늘을 두고 맹세하건대 지금까지 사는 동안 누구에게도 사기를 치거나 속이려고 마음먹은 일이 없습니다. 또한 저는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서 국가에 당당히 세금을 내며 살았고 이 사실은 세무서에 확인해보면 다 나오는 사실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판사분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는 생각도 새삼 듭니다. 조사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처리되어 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고위공직자가 얽혀있는 사건에서 힘없는 제가 이기기는 어려웠겠지요. 이제부터라도 법조계에서 일방적으로 한쪽의 편에 서서 처리되는 사건이 없어졌으면 합니다. 전과가 있든 없든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공명정대한 판결이 이뤄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수경학의 대가인 백파 원장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백파 원장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동하며 한국의 수경학을 세계에 알렸다. 2002년부터 미국의 한인방송과 CBS방송 등에서 5년간 재미교포와 현지인을 대상으로 수경학 상담활동을 펼쳤다. 매일 진행된 ‘즉문즉답’을 통해 명쾌한 운세판단과 가이드를 제시해 인기를 누렸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미국, 중국 등 세계 39개국으로 특별 초청되어 국운과 글로벌기업의 장래를 카운셀링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기부활동 외에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밥차’ 활동까지 준비 중이다.     
현재 백파 원장의 충북 청주 제1사무실과 서울 종로구 제2사무실에는 예약 없이는 상담이 어려울 정도로 상담자가 끊이지 않는다. 백 원장은 제1사무실이 위치한 청주의 발전을 위한 제언도 잊지 않았다. 
“청주는 알려진 대로 참 살기 좋은 고장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청주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우암산(牛岩山)에, 지리적으로 ‘학의 날개’에 해당되는 지점에 방송안테나가 생기면서 청주에 강력사건과 같은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이미 2006~7년에도 청주지방신문을 통해 보도된바 있는데요. 우암산 안테나를 빨리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청주는 예전처럼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이 될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 백 원장은 기자에게 수경학의 원리에 비추어 인생의 금언을 남겼다. 반드시 인간은 뿌리가 있고,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 마디가 생기고 열매가 열린다는 것. 운명은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듯이 바꿀 수는 없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진리였다. 백파 원장은 지금도 상담이 맞지 않을 경우 일체 상담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백파 원장의 카운셀링은 그의 관록(貫祿)과 통찰력이 더해져 상담자들에게 ‘희망’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이양은 기자 
상담문의 
충북 청주 제1사무실(월, 화, 수요일 충청지역 KT 독점전화 1899-4684) 서울 종로구 제2사무실(목, 금, 토요일 02-226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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