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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꽃’ 김성오 프로가 전하는 꿈의 메시지

김성오 프로 | 2017년 02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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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위대한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인생은 가혹했다. 그는 오른발 탈골, 왼쪽 어깨 탈골, 갈비뼈 골절 등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인한 내외적 상흔으로 인생 전반을 견디기 힘든 상처를 짊어지며 살았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는 이런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여 20세기 근대미술의 한 획을 그은 초현실주의 작가로 성장하였다.
이와 결을 같이하는 국내 프로골퍼가 있어 눈길을 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왼쪽 갈비뼈가 산산조각 나 모든 장기를 관통하는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일어나 프로골퍼 사상 아시아 최초로 ASU 미국체육대학교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김성오 프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로지 골프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육체의 뒤틀림과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고 절망 속에서 새롭게 피어난 김성오 프로가 우리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어보았다.

김성오 프로는 골프 유망주 시절 뜻하지 않은 낙마사고로 프로골퍼의 꿈을 접고 골프지도자로 변신하였다. 그는 이후 골프지도자로 명성을 점차 쌓아가며 지역에서 손꼽히는 프로 중 한 명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장밋빛 인생이 찾아오나 했지만 또 다시 어둠이 드리워졌다. 교통사고가 그의 발목을 재차 붙잡은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오 프로는 불굴의 정신력과 생존을 위한 강한 의지로 수많은 위기와 난관을 극복하고 레슨 지도사, 투어프로 등 자격을 획득해 당당히 정상급 골프지도자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또한 지난해에는 이러한 스토리를 책으로 담아 ‘포기할 수 없다면 극복하라’를 출판하기도 했다. 김성오 프로는 자신이 경험으로 배운 희망이라는 꽃을 지금 이 순간 좌절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선물하며 ‘삶의 재생’을 독려하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극복하고 다시 잡은 골프채
2008년 5월. 김성오 프로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골프지도자 중 한 명이었고 많은 골프레슨 요청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에도 무려 3개 시도를 다니며 레슨을 하던 그날, 하필 자동차열쇠를 두고 오는 바람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음 레슨장소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만났고, 그의 오토바이에 번개가 떨어져 천길 낭떠러지로 구르는 사고를 당했다.
“너무나 처참한 교통사고였습니다. 가수 강원래 씨와 똑같은 사고였죠. 당시 왼쪽 어깨뼈는 두 동강이 나고 쇄골뼈는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왼쪽 갈비뼈는 단 한 개도 남기지 않고 산산조각이 난 상태로 폐와 간, 소장과 대장을 포함한 장기들을 모두 관통했기 때문에 숨을 쉴 때마다 입으로 피를 토했고, 온몸에도 큰 출혈이 있었습니다. 허리 척추뼈 역시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에 목숨만 붙어있는 사망 직전의 상태로 대학병원에 실려서 왔습니다. 대학병원 외과, 정형외과, 내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비뇨기과 박사님 까지 긴급회의 끝에 처음에는 수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씀을 가족에게 통보했습니다. 너무나 큰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고, 다시 살 수 있는 확률이 10%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술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가족의 부탁으로 무려 이틀에 걸쳐 진행된 대수술 이후 저는 기적처럼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수술 후 9일 만에 깨어났습니다.”
죽은 것과 다름없던 김프로가 기적처럼 다시 눈을 뜬 다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처절한 고통과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살아야한다는 현실이었다. 한 달 보름간 중환자실에 있다가 입원실로 이동했고, 평생 불구의 몸으로 걸을 수도 없다는 선고가 내려져 그를 다시 절망케 했다. 김성오 프로는 날카로운 드라이버로 온몸을 후벼 파는 것 같은 고통, 둔기로 맞은 듯 온몸에 절절히 느껴지는 아픔 속에서도 재활에 대한 의지를 다잡았다.
“수술에서 깨어난 이후 저는 제가 태어나서 느낀 고통 중 가장 처절한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병원 의료진은 입을 모아 ‘이 사람은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고, 저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을 떠나 태국으로 재활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무엇보다 추운 겨울이 오면 온몸의 상처 때문에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과 고통이 엄습하여 도저히 한국에 있을 수 없어서 더운 태국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재활훈련, ‘지옥이 있다면 이 순간이 아닐까?’
김성오 프로는 태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재활치료를 받게 된다. 태국에서의 재활치료로 인한 고통은 한국의 병원에서 받았던 고통보다 더 극심했고, 그 당시 그가 감당해내야 할 충격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는 강제로 몸을 비틀어서 움직이게 만들고, 마사지를 하고, 지압을 하고, 뜸을 뜨고, 침을 놓고, 하루에 두 번씩 반신욕을 하는 타이트한 과정의 민간요법을 1년간 참아냈다. 다시 달려야 하고 골프를 해야 한다는 욕망이 이를 견디고 포기하지 않게 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만에 목발을 놓고 걷기 시작했고, 3개월이 지난 후에는 좀 더 빠른 속도로 걷고 심지어 뛸 수 있게 되었다.
“강한 강도의 재활을 통해 뼈가 붙으며 신경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발바닥에 감각이 생기고, 팔에도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게 되었죠. 그때부터 회복이 급진전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까운 재활과정이었죠.”
김 프로는 ‘지옥이 있다면 이런 순간들일 것이다’라는 느낌이 들만큼 강한 강도의 마사지를 받으며 정말 매순간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차올랐지만, 다시 일어서서 골프를 해야 한다는 뜨거운 열망으로 이겨냈다. 그렇게 김성오 프로는 사고 난 이후 3년 만에 재활에 성공하고 꿈에 그리던 골프채를 다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골프채를 다시금 잡은 그는 이제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바로 과거의 골프 실력을 되찾는 일이었다.
“사고난 이후 3년만에 재활에 성공하고 다시 골프채를 잡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과거에 골프를 치던 건강한 몸이 아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운동하기가 불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왼손에 감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오른손으로만 골프를 치는 것과 같았고 이마저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휘청거리다 쓰러지기 일쑤였습니다. 굽은 채로 굳어진 왼팔관절을 다시 정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강한 힘으로 누르다 그대로 기절하기도 했고, 골프채로 땅을 쳐서 붙었던 뼈가 다시 살을 뚫고 나와 쓰러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주위 외국인들의 수군거림도 들렸습니다. ‘저 사람 분명 한국의 프로라는데 왜 저렇게 골프를 못칠까. 프로 맞아? 공 하나 못 맞추는데 무슨 골퍼라고 저렇게 골프채를 들고 운동을 할까’ 외국인들이 비웃고 손가락질했지만 저는 묵묵히 그냥 이겨냈습니다. 아니 오로지 골프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더욱 죽기살기로 했습니다.”
김 프로는 그때부터 오기가 생겨 사고나기 전보다 더 많이 연습을 했다. 새벽4시에 일어나 6시까지 연습하고, 아침 먹고 또 연습하고, 오후 땡볕에서도 연습하고, 저녁을 먹고도 밤 10시까지 가로등 밑에서 연습했다. 그렇게 그는 1년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했다. 정상적인 사람과 똑같은 패턴과 연습량을 유지한다면 그들을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보다 더 열심히 더 처절하게 연습했다.
“그렇게 연습을 거듭하다보니 마침내 점점 예전의 실력이 돌아왔습니다. 3개월 만에 볼이 뜨기 시작하고, 멀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것 역시 기적이겠죠. 그러고 또 3개월이 지나자 제 지난 이야기가 외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심한 교통사고, 왼쪽에 감각이 없는 몸, 저 사람이 지금 공을 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공을 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때부터 제 주위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고, 만나는 외국인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저에게 미소를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2년간 죽기 살기로 연습했고 고된 연습을 거듭한 끝에 언더파를 치고, 마침내 아시아 PGA시합에 나가서 당당히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김 프로는 왼쪽 절반의 감각을 잃은 상태에서 골프대회에 도전하여 아시아 PGA투어프로자격을 취득하고, 다시 골프선수로서 시합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때 그는 68타 4언더파의 기록을 세웠으며, 꿈속에서만 그리던 타수를 치는 첫 달콤함을 맛보게 되었다.

‘원턴스윙’으로 아시아 최초 골프 명예박사 오르다
김성오 프로는 이른바 ‘원턴스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골프레슨이론을 개발해냈다. 그는 7년 동안 연구 및 개발을 한 끝에 이를 논문으로 완성했으며 ASU 미국스포츠대학교의 인정을 받아 지난 2015년 프로골퍼 사상 아시아 최초로 명예박사에 오르는 영예를 안게 됐다.
“저는 한때 일어설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유서를 쓰고 짐정리를 하고 있는데, 1년 동안 병원에 누워있을 때 골프스윙에 관해 연구한 제 자료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때 이 자료를 바탕으로 더 연구를 하여 제 몸에 적용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기존 스윙으로는 골프를 할 수 없으니, 새로운 골프스윙을 연구하면 저처럼 다친 사람도 골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고 실제로 몸에 적용한 결과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골프를 다시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원턴스윙 레슨 기법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했습니다. 마침내 제 이론과 다양한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해 드디어 저만의 ‘원턴스윙’이 탄생하였습니다.”
일명 ‘똑딱이 스윙’으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레슨과 달리, 원턴스윙으로 골프를 배우면 3일 만에 풀스윙을 익히게 되고 15일이면 골프장에 나가 첫 라운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레슨법이다. 이렇듯 골프레슨계의 획기적인 혁명으로 일컫는 원턴스윙 이론은 영국, 미국 등 골프 선진국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여러 대학교로 원턴스윙 기법 관련 논문을 보내기 시작했으며, 그 노력 끝에 ASU 미국체육대학교의 인정을 받아 2015년 5월에 세계에서는 두 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ASU미국대학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으며, 골프학과 전임교수로 임용되기도 했다. 기자가 조사한 바로는 ASU 미국체육대학교 총장은 물론 관련교수진도 김 프로의 사고이력과 피나는 재활노력 그리고 독창적인 스윙교육법의 개발이야기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하며 김 프로를 최고의 골프인을 넘어 인간승리의 모델로 인정했다고 한다.  

강연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
“사고 전에는 그저 한 지역에서 레슨 잘하는 프로에 불과했다면, 사고 후에는 새로운 레슨법을 개발한 것은 물론 이를 통해 명예박사에 올랐고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자살을 하려고 했던 어떤 분이 제 강연을 듣고 다시 살아보고 싶은 희망이 생겼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강연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달하고 싶습니다.”
김성오 프로는 삶으로 체득한 자신의 이야기를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소위 N포 세대, 사업에 좌절한 이들, 취업으로 고심하는 취업준비생 등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희망을 주려고 한다. 말로만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는 여느 강연자가 아닌 실제로 세상의 절벽에 매달린 채 포기하지 않고 기적을 써낸 그의 진심어린 조언은 강연을 듣는 이들로 하여금 삶의 희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제 좌우명은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라’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유언으로 해주신 말씀입니다. 저는 늘 하루하루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것 보다 행복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정말 최선을 다하셨는지요? 정말 죽을만큼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가지려 해보셨는지요? 몸 왼편의 모든 감각들을 느끼면서, 사물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지 아시는지요? 온 마음을 다해 정성껏 그 일을 간절하게 원하셨는지요?’라고 말입니다. 저는 제 처지를 비관하거나 슬퍼하기보다 저의 삶을 극복하기위해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들도 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스스로 삶을 새로이 일으켜 세우는 값진 순간들을 만나시기를 기도합니다.”
멕시코의 위대한 화가 프리다칼로(Frida Kahlo)는 ‘고통, 기쁨, 죽음은 존재를 위한 과정일 뿐 이 과정의 혁명적 투쟁이야말로 지성을 향해 열린 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성오 프로는 그에게 주어진 고난과 이를 극복하는 투쟁을 통해 한계를 넘어섰고 우리나라 골프교육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기자가 만난 김성오 프로는 ‘성공한 골프인’을 넘어 우리 사회의 ‘희망전도사’로서 주어진 인생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힘찬 스윙을 하고 있었다.  이양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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