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농업의 역사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농업의 미래인 (서울)영동농장이 신년하례식을 지난 2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호텔리베라서울 3층 베르사이유홀에서 열린 이번 하례식에는 300여명의 농업인과 함께 영동농장 그룹 계열사 및 산하재단((재)용복장학회, (재)한사랑농촌문화재단), (재)월정어린이복지재단) 이사진 등이 참석하였다. 아울러 전라남도 강진의 70만 평 황무지를 개발해 농업의 살아있는 신화를 써내려간 영동농장 김용복 명예회장이 이날 이임하고, 그의 아들인 김태정 신임회장이 새로 취임하는 자리도 가져 그 의미를 더했다.
영동농장 김용복 명예회장은 이임사에서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많은 농업인들이 영동농장에 보내준 응원 덕분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사랑을 안고 이제 은퇴하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태정 회장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훌륭한 전인격적 리더십으로 영동농장을 잘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당부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김태정 신임회장 역시 “많은 사람들이 농업과 농촌에 희망이 없다고들 말씀하시지만, 저를 비롯한 영동농장 가족들은 농업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라 생각합니다. 농장 설립자인 김용복 명예회장의 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우리나라 농업 발전을 선도하는 영동농장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처럼 평생을 농업 발전과 농민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해 온 대한민국 농업의 산증인 김용복 명예회장은 85세의 나이에 명예롭게 자신의 자리를 신임회장에게 넘겨주었다. 비록 그는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단돈 7달러와 삽 4자루로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서 이뤄낸 ‘농장의 기적’과 개척정신 그리고 용복장학회·한사랑농촌문화재단 ·월정어린이복지재단 등 세 개의 비영리재단은 오래도록 희망의 꽃씨가 되어 단단한 열매를 맺어갈 것이다.
농부의 사명을 다한 녹색혁명의 기수 “어지럽고 분통터지는 2016년을 보내고 2017년 정유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국민 모두가 희망찬 새해맞이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데, 올해는 그렇지 못해 서글프고 마음 아픕니다. 그러나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되고 물러서서도 안 되며, 기필코 재도약하는 슬기롭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세계를 또 한 번 놀라게 하여야합니다. 이에 저희 영동농장은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는 신념으로 지난 한해도 그랬고 새해에도 한 눈 팔지 않고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자세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전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용복 명예회장은 1979년 세계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야채재배에 성공, ‘녹색혁명의 기수’라는 칭호를 받았다. 말 그대로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심정으로 척박하기 그지없던 사막에 야채농사를 지어 4년간의 사투 끝에 드디어 1979년 4월 20일 배추 500kg을 첫 수확하는 쾌거를 맛본 것. 그는 세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월사금이 없어 중학교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시기를 지나 미군부대의 하우스보이가 되어 인생 최고의 자산인 영어와 운전을 배우며 꿈에 대한 작은 씨앗을 심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75년 4월 단돈 미화 7달러를 손에 쥐고 사우디아라비아로 훌쩍 떠나 그 뜨겁고 지독한 현실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성공의 결실을 수확하게 된 김용복 명예회장.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82년 ‘석탑산업훈장’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 각지에 널리 알렸다. 그렇게 성공의 열쇠를 손에 거머쥔 김용복 명예회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1982년 전라남도 강진군 신전면과 도암면 일대 약 100만 평의 미완성 간척지를 매입한 뒤 70만 평의 현대식 벼농사 농장을 가꿔 오늘날의 영동농장드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비록 그는 농대도, 농고도 졸업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연구하는 열정과 두뇌로 농부의 사명을 다해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돈은 분뇨와도 같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사랑마저 새 어머니에게 빼앗긴 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다. 하지만 궁핍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공부에 대한 열망도 채 피워보지 못하고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평생을 전투하는 자세로 살아왔다. 이렇듯 수많은 실패와 온갖 고난을 거친 그에게 돈의 의미는 남다르기 마련. 김용복 명예회장은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물질적 성과를 기꺼이 사회에 돌리고자 한다. “돈은 한 사람이 너무 많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돈은 분뇨와 같기 때문입니다. 돈은 흡사 분뇨와도 같아서 한 사람이 너무 많이 너무 오래 갖고 있을수록 부패하고 구린내가 날 뿐입니다. 하지만 이를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사람과 나누면 구린내가 아닌 향내가 나 비료가 돼 죽어가는 생명도 살릴 수 있습니다. 저는 생을 마감하고 저세상으로 갔을 때 하느님께서 ‘너는 이승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고 물으면 ‘저는 흙 농사, 사람농사, 사랑농사를 열심히 짓다가 왔습니다’라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렇듯 영동농장 김용복 명예회장은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실천하기 위한 사회 환원을 시작하였다. 받은 만큼 베풀 수 있고, 선한 곳에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2003년 한사랑농촌문화재단을 설립한데 이어 용복장학회, 월정어린이복지재단을 연거푸 설립하였다. 이를 통해 매년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는 160여명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아 현직 판사, 대학교수, 의학 박사 등 다수의 사회 인사를 배출하였다. 이와 함께 2013년에는 고액 기부자 모임, 일명 ‘아너소사이어티’ 1호 기부자에 이름을 올리며 보다 희망찬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농업은 사양 산업이 아닌 종합적 문화산업!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농업은 어렵고 힘들기만 한 산업이라고. 이미 죽은 사양 산업이라고 단정 짓는 그들에게 영동농장 김용복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농업이 사양 산업이 아니라, 농업의 변화와 발전을 사회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미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기술 농업, 친환경 농업의 시대를 지나 농업이 종합적인 문화 산업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즉, 농업이 지니고 있는 치유, 유희, 교육적 기능에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농업은 그저 사양 산업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제도가 이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농업과 농촌을 기피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볼 때입니다.” 영동농장 김용복 명예회장은 한평생을 농업인으로 살아가며, 농업의 사회적 역할과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 그가 설립한 재단을 통해 농민, 학생, 어린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그들을 돕는 일에 기꺼이 헌신하였다. 이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물러가려한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의 마음속에 아낌없이 나눔을 실천한 꿈을 키운 농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흙 농사, 사람 농사, 사랑 농사를 마음껏 지으며 희망이라는 토양을 비옥하게 한 영동농장 김용복 명예회장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우리의 뜨거운 농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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