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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학(壽鏡學)의 명인 봉사와 나눔의 삶을 살다

백파카운셀러상담원(한국수경학연구원) 백파 원장 | 2017년 08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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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반드시 뿌리가 있고,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 마디가 생기고 열매가 열립니다. 운명은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듯 바꿀 수는 없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당대를 대표하는 수경학(壽鏡學)의 대가(大家)인 백파카운셀러상담원(한국수경학연구원) 백파 원장은 인터뷰 제 일성(一聲)으로, 상담활동 외에도 봉사, 나눔활동을 통해 사회 공공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자는 수경학(壽鏡學)의 명인 백파 원장을 만나 지난 생애와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운명을 통찰하는 학문 수경학(壽鏡學), 그리고 하늘이 내린 재주로 인해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백파 원장의 이야기를 지면에 옮겨본다.

현재 백파 원장의 충북 청주 제1사무실과 서울 종로구 제2사무실에는 예약 없이는 상담이 어려울 정도로 상담자가 끊이지 않는다. 기자가 방문했던 날도 상담자가 줄을 지어 있었는데, 수경학은 풍수지리와 사업, 직업, 상호명, 가정문제, 작명, 운세 등 많은 분야의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백파 원장을 찾고 있다. 특히 사주는 물론 태어난 시에서도 초시, 중시, 말시로 세분화하여 판단하고 상담자 집안의 본과 지역까지 감안하여 운명을 통찰하기 때문에 섬세한 상담이 가능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백파카운셀러상담원을 찾고 있다.

국내 유일무이한 수경학 대가
수경학은 목숨 ‘수’, 거울 ‘경’자로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학문이며 백파 원장은 수경학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명인이다. 어린 시절 백파 원장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송파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당대 수경학(壽鏡學)의 대가(大家)로 성장했다. 그는 남다른 통찰력과 예지력을 가진 인물로 심오한 수경학의 경지를 터득하여 국내 유일무이한 수경학 대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어린 시절 저는 태어난지 8개월만에 전염병으로 부모를 여의고, 주위어른의 도움으로 합천 해인사에서 성장했습니다. 이후 해인사 송파 큰스님이 자식처럼 키워주셨고, 스님께서 수경학과 지리학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켜주셔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중 큰스님이 타계하시고 큰스님과 인연이 있던 고마우신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과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여 큰스님이 가르쳐주신 수경학을 통한 상담업을 부산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속칭 ‘총각도사’라는 소문이 부산지역은 물론 전국에 자자했고, 백 원장을 만나려면 3-4일은 걸려야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정도로 이름이 났다. 심지어 백 원장의 상담소 주위에 조그마한 여인숙과 여관이 있었는데 그에게 상담을 받기위해 손님들이 기다리는 기간에는 주위 숙박업소들이 방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국가 수뇌부의 높은 분들은 물론, 지금은 굴지의 재벌이 된 많은 기업의 창업회장들의 운명을 상담해 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저는 절에서만 자라서 돈의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형제하나 없는 단신으로 생활해왔기 때문에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왜 돈과 세상물정을 모르고 오로지 상담과 수경학 공부에만 집중했는지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그는 서민부터 국가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왔다. 특히 6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절 기업인들과 인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산업계 발전은 물론 지리학을 통한 도로, 도시개발 등 국가 기반시설 기획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 당시는 산업발전의 태동기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기업집단을 ‘그룹’이라는 말로 부르지도 않았고, 지금은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기업들도 당시엔 이름조차 생소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기업들이 사업상 새로운 성장을 시작할 때 또 사업전략을 수립할 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이 형성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당시 창업 회장님들이 사업체를 만들기 위해 저에게 많은 상담을 해왔고 저 역시 그분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파 원장은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서 정계 수뇌부와 국내 굴지의 그룹 총수들의 곁에서 도움을 주며, 국운은 물론 사업 방향과 인재 등용 등 중요한 결정에서 상담활동을 해왔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저서와 정태수 한보그룹 전 회장의 증언에서도 백 원장이 언급된바 있다고 한다.

오해와 억울함으로 굴곡진 세월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백파 원장은 하늘이 내린 재주 수경학 때문에 구설수에 휘말리고, 불필요한 고생까지 하게 되는 굴곡을 겪게 된다.    
“지금도 제게 피해를 줬던 얌체 같은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정말 치를 떨 정도입니다. 너무나 억울하게 많이 당하고 금전적인 손실도 많았어요. 예를 들어볼까요? 제 상담객 중에는 사업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납품, 사업인허가 등 여러 가지 애로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돈만 밝히는 얌체 같은 정치인들은 저를 통해 접근해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고 장담하고 정치후원금을 원했고, 저는 순진하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에 그 말을 믿고 상담객에게 정치후원금을 받아 정치인에게 전달하면 그 뒤로 정치인은 나몰라라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일이 처리되지 않으니 상담객은 나를 사기로 고소합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정치인에게 경찰이 전화하면 정치인들은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여 나만 억울하게 당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검사, 경찰 등 사법기관에서 편파적으로 저를 처벌하여 억울했던 울분의 세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백파 원장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기가 찰 노릇이지만 일개 개인이 힘을 가진 고위공직자를 당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에서 모든 누명을 백파 원장이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몇몇 부정한 고위공직자들은 이후에도 백파 원장에게 상담자의 어려운 일을 언제든 해결할 듯이 접근했고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권세를 이용해 모두 빠져버리고 백파 원장만이 책임을 지는 식이었다. 백 원장은 타인의 어려움을 들어주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관의 고위직에 있는 이들에게 부탁을 전달했다가 곤혹스러운 일을 당한 것이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무조건 전과가 있다하여 전후 충분한 조사 없이 백 원장에게 벌을 주기도 했고, 심지어 조사관은 백 원장의 말은 듣지도 않고 고위직의 말만 믿고 사건을 처리하기도 했다. 백파 원장은 금전적인 이익만을 챙긴 고위직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이후 자신을 언제 보았냐는 듯 하는 그들을 보며 사회의 비정함과 비열함을 느꼈다고 한다.

공명정대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모형제 없이 자라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고, 주위에 사람들이 그것을 악용해 저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저는 외로운 마음에 믿다보니 피해를 보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당시 저는 이 사회의 비정한 논리를 몰랐고 오직 큰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수경학 공부에만 전념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사기꾼이 되었고 도둑이 되었다는 현실을 깨닫고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부산에서 상담활동을 시작해서 어렵게 모았던 많은 재산도 정치인들의 모략에 빠져 다 빼앗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으며, 심지어 어린 자식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고생을 겪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금전을 취한 정치인, 고위공직자의 이름까지 자세히 댈 수 있습니다. 공화당 원내총무를 지낸 김모 전 국회의원, 국회의장을 지낸 채모 전 국회의원, 부산진구의 구모 전 국회의원, 울산지역의 김모 전 국회의원 등 국회의원 아홉 명의 모략에 당한 것은 너무나 큰 치욕이며 누가 저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었는지 지금도 낱낱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조계에서도 일방적인 의견만으로 사건을 처리한 것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제가 이미 나이는 팔십이 넘었고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리고 싶다는 욕심도 한때는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고 저를 도와주신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그때의 말할 수 없는 치욕을 가슴속에 억누르며 살고 있습니다.” 
백 원장은 이후 일방적으로 처리된 사건기록을 확인하고 자신을 판결한 사람들을 몇 차례 찾아가서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판사였던 그 분들 또한 억울한 사연을 이제야 이야기하니, 사건일지에 기록된 것을 보고 판결한 것인데 안쓰럽고 안타깝다고 하며 용기를 주었고, 당시 판사 출신의 어떤 변호사는 백 원장을 위한 무료변론을 해주기도 했다. 
“다시 한번 하늘을 두고 맹세하건대 지금까지 사는 동안 누구에게도 사기를 치거나 속이려고 마음먹은 일이 없습니다. 또한 저는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서 국가에 당당히 세금을 내며 살았고 이는 세무서에 확인해보면 다 나오는 사실입니다. 저는 흥청망청 돈을 써본 적도 없으며, 흔히들 가는 레스토랑이며 유흥시설 같은 곳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술은 일체 먹지도 배우지도 않았을 정도로 절도 있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제 어리석음으로 인한 실수로 정치인과 관에 있는 일부 얌체 같은 사람들에게 당했다는 것이 분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판결을 내린 판사 분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는 생각도 새삼 듭니다. 조사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처리되어 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고위공직자가 얽혀있는 사건에서 힘없는 제가 이기기는 어려웠겠지요. 이제부터라도 법조계에서 일방적으로 한쪽의 편에 서서 처리되는 사건이 없어졌으면 합니다. 전과가 있든 없든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공명정대한 판결이 이뤄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봉사와 나눔의 대부(代父)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수경학의 대가인 백파 원장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백파 원장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동하며 한국의 수경학을 세계에 알렸다. 2002년부터 미국의 한인방송과 CBS방송 등에서 5년간 재미교포와 현지인을 대상으로 수경학 상담활동을 펼쳤다. 매일 진행된 백파 원장의 ‘즉문즉답’을 통해 명쾌한 운세판단과 가이드를 제시해 인기를 누렸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미국, 중국 등 세계 39개국으로 특별 초청되어 국운과 글로벌기업의 장래를 카운셀링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의 상담 내용들과 기록들은 백파카운셀러상담원 홈페이지(www.baekfa.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6월경에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자리 등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와 2017년 상반기 국가적 혼란을 여러 명의 지인들앞에서 예측했는데, 백파 원장의 발언이 적중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기부활동 외에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밥차’ 활동, 지역 봉사활동, 나눔활동을 통해 사회 공공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을 속인 적이 없고, 단 십원도 남에게 손해를 끼친 적도 없습니다. 내가 만약 정말 남에게 부정한 짓을 했다면 어떻게 지금 정당하게 돈을 벌수가 있겠으며, 남들 앞에 이렇게 떳떳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정치인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범법자 취급을 받으며 재산까지 다 빼앗긴 것이 지금도 말할 수 없이 억울합니다. 정치인의 모략에 빠져 전과가 생겼고, 또 전과가 있다하여 이후 사건에서도 일방적으로 누명을 쓴 것이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억울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에 앞으로 더 베풀고 나누며 살려고 합니다. 억울한 일을 수없이 당했지만 지금 건강하고, 부족하지 않게 살고 있는 것도 착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독자분들 중에서도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상담을 받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분들은, 망설이지 마시고 방문해 주시면 성심성의껏 상담해 드리겠습니다. 똑같은 상담을 정성껏 진행하더라도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께는 절대 사례금도 받지 않고 언제든 무료로 상담해드리고 있습니다. 제 나이 팔십이 넘고 보니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주위 여러분들을 최대한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
백파 원장의 카운셀링은 그의 관록(貫祿)과 통찰력이 더해져 상담자들에게 ‘희망’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파 원장은 지금도 상담이 맞지 않을 경우 일체 상담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굴곡진 인생에서 배운 지혜와 통찰로 상담객들의 아픔을 더 내 일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다며 웃었다. 수경학의 명인에서 봉사와 나눔의 대부(代父)가 되어 돌아온 백파 원장을 상담객들이 더 많이 찾는 이유다. 본지도 인터뷰를 마치며 백파 원장의 건강과 왕성한 활동을 기원했다. 이양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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