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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학의 명인 ‘희망’을 전하다

백파카운셀러상담원(한국수경학연구원) 백파 원장 | 2018년 06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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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학은 목숨‘수’, 거울‘경’자로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학문이며 백파 원장은 수경학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명인이다. 백파 원장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동하며 한국의 수경학을 세계에 알렸다. 2002년부터 미국의 한인방송과 CBS방송 등에서 5년간 재미교포와 현지인을 대상으로 수경학 상담활동을 펼쳤다. 매일 진행된 백파 원장의 ‘즉문즉답’을 통해 명쾌한 운세판단과 가이드를 제시해 인기를 누렸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미국, 중국 등 세계 39개국으로 특별 초청되어 국운과 글로벌기업의 장래를 카운셀링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의 상담 내용들과 기록들은 백파카운셀러상담원 홈페이지(www.baekfa.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백파카운셀러상담원 충북 청주 제1사무실과 서울 종로구 제2사무실에는 예약 없이는 상담이 어려울 정도로 상담자가 끊이지 않는다.

수경학의 명인 백파 원장은 인터뷰를 시작하며, 기부활동과 봉사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밥차’ 활동, 지역 봉사활동, 나눔활동을 통해 사회 공공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역설했다.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에 앞으로 더 베풀고 나누며 살겠다는 것이 백파 원장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혹시 독자분들 중에서도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상담을 받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분들은, 망설이지 마시고 방문해 주시면 성심성의껏 상담해 드리겠습니다. 똑같은 상담을 정성껏 진행하더라도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께는 절대 사례금도 받지 않고 언제든 무료로 상담해드리고 있습니다. 제 나이 팔십이 넘고 보니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주위 여러분들을 최대한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
백파 원장은 최근 소외된 이웃에게 많은 쌀을 기부하여 화제가 되었고, 청주 수혜 지역 복구를 위해 지속적인 기부활동을 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강원도에 위치한 삼화사 절이 시멘트공장 건설로 인해 이전할 때 위치선정, 자리배치 등 이전과 건립에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수경학의 대가로 성장하다
어린 시절 백파 원장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송파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당대 수경학(壽鏡學)의 대가(大家)로 성장했다. 그는 남다른 통찰력과 예지력을 가진 인물로 심오한 수경학의 경지를 터득하여 국내 유일무이한 수경학 대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어린 시절 저는 태어난지 8개월만에 전염병으로 부모를 여의고, 주위어른의 도움으로 합천 해인사에서 성장했습니다. 이후 해인사 송파 큰스님이 자식처럼 키워주셨고, 스님께서 수경학과 지리학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켜주셔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중 큰스님이 타계하시고 큰스님과 인연이 있던 고마우신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과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여 큰스님이 가르쳐주신 수경학을 통한 상담업을 부산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속칭 ‘총각도사’라는 소문이 부산지역은 물론 전국에 자자했고, 그래서 그는 서민부터 국가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왔다. 특히 6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절 기업인들과 인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산업계 발전은 물론 지리학을 통한 도로, 도시개발 등 국가 기반시설 기획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백파 원장은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서 정계 수뇌부와 국내 굴지의 그룹 총수들의 곁에서 도움을 주며, 국운은 물론 사업 방향과 인재 등용 등 중요한 결정에서 상담활동을 해왔다.

누명을 쓰고 굴곡진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백파 원장은 하늘이 내린 재주와 사람에 대한 순수한 믿음으로 인해 굴곡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정치인의 모략에 빠져 누명을 쓰고 많은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제 상담객 중에는 사업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그린벨트 규제, 납품, 사업인허가 등 여러 가지 애로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일부 돈만 밝히는 비열한 정치인들은 저를 통해 접근해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고 장담하고 정치후원금을 원했고, 저는 순진하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에 그 말을 믿고 상담객에게 정치후원금을 받아 정치인에게 전달하면 그 뒤로 정치인은 나몰라라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일이 처리되지 않으니 상담객은 나를 사기로 고소합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정치인에게 경찰이 전화하면 정치인들은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여 나만 억울하게 당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기가차고 억울할 노릇이지만 일개 개인이 힘을 가진 고위공직자를 당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에서 모든 누명을 제가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몇 부정한 고위공직자들은 이후에도 백파 원장에게 상담자의 어려운 일을 언제든 해결할 듯이 접근했고,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권세를 이용해 모두 빠져버리고 백파 원장만이 책임을 지는 식이었다. 백 원장은 타인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관의 고위직에 있는 이들에게 부탁을 전달했다가 곤혹스러운 일을 당한 것이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무조건 전과가 있다하여 전후 충분한 조사 없이 백 원장에게 벌을 주기도 했고, 심지어 조사관은 백 원장의 말은 듣지도 않고 고위직의 말만 믿고 사건을 처리하기도 했다. 백파 원장은 금전적인 이익만을 챙긴 고위직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이후 자신을 언제 보았냐는 듯 하는 그들을 보며 사회의 비정함과 비열함을 느꼈다고 한다.

공명정대한 사회를 꿈꾸며
백 원장은 이후 일방적으로 처리된 사건기록을 확인하고 자신을 판결한 사람들을 몇 차례 찾아가서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판사였던 그 분들 또한 억울한 사연을 이제야 이야기하니, 사건일지에 기록된 것을 보고 판결한 것인데 안쓰럽고 안타깝다고 하며 용기를 주었고, 당시 판사 출신의 어떤 변호사는 백 원장을 위한 무료변론을 해주기도 했다. 
“다시 한번 하늘을 두고 맹세하건대 지금까지 사는 동안 누구에게도 사기를 치거나 속이려고 마음먹은 일이 없습니다. 또한 저는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서 국가에 당당히 세금을 내며 살았고 이는 세무서에 확인해보면 다 나오는 사실입니다. 저는 흥청망청 돈을 써본 적도 없으며, 흔히들 가는 레스토랑이며 유흥시설 같은 곳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술은 일체 먹지도 배우지도 않았을 정도로 절도 있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제 어리석음으로 인한 실수로 정치인과 관에 있는 일부 얌체 같은 사람들에게 당했다는 것이 분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판결을 내린 판사 분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는 생각도 새삼 듭니다. 조사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처리되어 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고위공직자가 얽혀있는 사건에서 힘없는 제가 이기기는 어려웠겠지요. 이제부터라도 법조계에서 일방적으로 한쪽의 편에 서서 처리되는 사건이 없어졌으면 합니다. 전과가 있든 없든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공명정대한 판결이 이뤄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감과 나눔의 실천
“부모형제 없이 자라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고, 주위에 사람들이 그것을 악용해 저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저는 외로운 마음에 믿다보니 피해를 보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당시 저는 이 사회의 비정한 논리를 몰랐고 오직 큰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수경학 공부에만 전념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범법자의 누명을 쓰게 되었다는 현실을 깨닫고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부산에서 상담활동을 시작해서 어렵게 모았던 많은 재산도 정치인들의 모략에 빠져 다 빼앗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리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미 나이는 팔십이 넘었고,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고 저를 도와주신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그때의 말할 수 없는 치욕을 가슴속에 억누르며 봉사활동에 전념하며 살고 있습니다.” 
백파 원장은 앞으로도 기부활동과 봉사활동에 더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더 힘들고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을 돕고, 많이 베풀어 건강한 사회로 가는데 이바지하겠다고 전했다. 백파 원장은 최근 ‘대한민국 의정 대상’,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상’을 수상하는 등 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아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백파 원장은 지금도 상담이 맞지 않을 경우 일체 상담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굴곡진 인생에서 배운 지혜와 통찰로 상담객들의 아픔을 더욱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며 진심어린 카운셀링을 진행하고 있다. 수경학의 명인이며, 공감과 나눔을 실천하는 백파 원장을 상담객들이 더 많이 찾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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