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온함을 얻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우리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친다. 의심과 환락, 공허함에 삶은 시달린다. 존경을 받는 수많은 성인들의 말에 따르면, 봉사와 나눔의 의미를 찾을 때마다 공허의 틈이 점점 좁아진다. 삶이 힘들 때일수록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면서 그들은 진정한 해방과 구원을 체험했다. 가장 낮은 곳,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얻었다는 의미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이 인류를 이토록 풍족하게 한 21세기에도 여전히 노인들은 영양실조나 고독사로 죽어간다. 복지는 말에서 그칠 뿐 이를 진정으로 실천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이달 만난 세종행복복지재단의 이병식 이사장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잘 나가던 사업을 접고 봉사와 복지의 길로 투신한 그를 만나 낮은 곳의 구원과 진정한 봉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건복지부, 복지재단 정식 인가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이병식 이사장은 귀중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자비로 오랜 기간 운영해온 행복노인복지센터가 보건복지부의 인가를 받아 ‘세종행복복지재단’으로 재탄생 한 것이다. 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쌓였던 피로와 애환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복지재단은 지역사회의 노인들에게 좀 더 전문화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신청했다. 이번 인가를 계기로 개인으로는 시작할 수 없었던 다양한 노인복지사업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다. 이병식 이사장은 “국가 공인 복지재단으로 새 옷을 입게 된 만큼 현재 센터를 확장해 요양관과 생활관으로 구분하고 웃음치료, 레크레이션, 식사, 미용 등을 종합케어 할 수 있는 종합노인복지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어르신들이 함께 어울리며 황혼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 우리 재단의 모토이자 내 인생의 목표입니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재단 인가를 계기로 지역사회의 후원회도 준비 중이다. 이미 여기저기서 돕겠다는 이들이 많다. 이병식 이사장은 “지난 날 쌓아온 공덕을 이렇게 받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복지재단의 활성화에 힘써 주시고 있죠. 정말 마음이 행복합니다. 후원회가 정식으로 결성되면 후원해 주시는 분들에게도 보답하고 싶습니다”며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봉사란 손길을 건네는 것 이런 그가 생각하는 복지란 무엇일까. 이 이사장은 “봉사란 손길입니다.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길을 한 번 더 주는 것이 희생이고 봉사인 것입니다.”라고 정의했다. 진정성 있는 봉사에 대한 정의를 듣노라면, 오랫동안 복지와 봉사를 실천해 온 사람 같지만 그는 15년 전만 해도 소위 말해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 수원과 대전 등에서 삼성의 협력사를 운영하며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의 감사패를 받은 적도 있을 정도로 건실한 중견기업의 대표였다. 그러나 사업을 하는 동안 그는 남모르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결국 건강까지 해치게 돼 사업을 접게 됐다. 하지만 세상은 쉬고 싶던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기업을 하며 모아둔 재산을 노린 후배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경제적 위기까지 맞닥뜨리고 말았다. 건강을 잃은 것도 모자라 믿었던 사람을 향한 신뢰마저 배신당한 기분은 참혹했다. 그는 “내 잘못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괴감이 찾아왔습니다. 우울증을 앓게 되고 세상도 원망스럽더군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그의 아내였다. 그의 아내는 남다른 혜안으로 과거 친정 근처인 세종 지역에 땅을 사두었다. 그리고 이 이사장이 실의에 빠지자 몇 십 년을 사모님으로 살았던 아내가 그 곳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고생하는 아내를 보며 이 이사장도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와는 다른 시골 사람들의 순수함과 순박함이 그의 마음에 평안을 주기도 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사투리가 섞여 나올 정도로 정이 들고 어느덧 지역사회와 어울리게 됐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마음속에 ‘세종시가 내가 살 곳이구나’ 하고 느낀 것 같아요.”라며 서서히 지역문화에 동요된 자신을 알게 됐다. 한 번 빠지면 발을 푹 담그는 그였기에 지역사회문제를 위해서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어느덧 지역사회의 일꾼이 되다 다시 열의를 갖게 된 이병식 이사장은 충남자원봉사시민네트워크 초대연기지부장을 4년간 맡아 주말이면 관내의 장애우시설과 노인요양시설, 마을경로당, 병원시설 등을 돌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또 역 광장에 나가 무료급식, 노래 공연 등을 펼치며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위한 문화공연의 가수로 활동하며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칠 이병식 이사장이 아니었다. 그는 부인과 함께 행복실버요양원과 행복노인복지센터를 일궈 지역 복지사업의 허브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모든 건 아내가 밑그림을 그린 겁니다. 조치원 친정에 다녀오면서 복지에 관한 정보를 얻어와 당시 시세보다 몇 배나 비싼 것도 개의치 않고 현재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어요”라며 부인에게 은근슬쩍 공을 돌렸다. 그는 “한 때의 좌절감에서 벗어나 봉사활동을 하는 요양원을 차려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을 보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지금하고 있는 봉사의 삶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병식 이사장은 학창시절 청소년심리학을 전공한 것을 바탕으로 청소년심리상담소를 열려고 계획했으나 오히려 부전공이었던 사회복지학을 살려 노인복지시설로 방향을 정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또 그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석사과정을 졸업한 만학도로, 논문 주제 역시 ‘노인요양시설 노인들의 생활만족도에 영향이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였다. 복지재단 인가는 이런 그의 노력이 결실로 나타난 것이다.
노노케어, 시력보존사업, 노인 일자리 창출 등
독거노인에게 밑반찬을 갖다 주는 노노케어는 그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의미가 담긴 노노케어는 활동할 수 있는 노인이 홀로 칩거하는 독거노인에게 밑반찬을 가져다주며 말동무도 해주고 건강을 해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활동이다. 노인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독거노인 고독사도 예방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 밑반찬은 일주일에 두 번 전달하고 현재 수급자는 100여명, 봉사자는 45여명의 노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병식 이사장은 긍지와 자신감이 넘쳤다. 그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물었다. 그는 성웅인 이순신 장군을 꼽았다. 갖은 음해와 모함과 핍박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한길을 간 이순신 장군. 사실 이 이사장도 지역 내에서 때로는 모함과 음해에 시달렸다. 순수한 지역사회 봉사를 정치적 활동이 아니냐며 오해하는 이들도 많다. 또 지역 시민들에게 신임과 존경을 받는 그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일들과 외부의 시선이 괴로울 때면 이순신 장군처럼 원래 마음먹었던 봉사의 한 길만을 걷자고 그는 다짐한다. 이런 그의 노인복지는 청소년들에 대한 효 교육으로 이어진다. 올해부터는 지역 내 중학교에서 효에 대해 가르칠 계획이다. 한편, 그가 회장으로 있는 세종스마트 라이온스클럽은 지난 해 노인시력보존사업으로 천여만원어치의 돋보기 640개를 기부 받아 사랑의 재단에 기증했다. 백내장을 앓고 있는 노인을 위해 수술보조도 준비 중이다. 또 소외계층의 집을 무료로 고쳐주는 희망하우스와 연계해 암으로 투병중인 환자가 노모를 모시고 사는 한 시민의 집을 고쳐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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