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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속에 내재된 현대적 감성을 풀어내다

커버스토리 김혜림 작가 | 2014년 08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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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눈이 부시지 않아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는 친근한 빛으로 조용히 어둠을 밝혀요. 그 고요하고 은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한지의 품성이 달빛과 너무 닮았어요.”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연히 한지 육각대등에 매료되어 한지를 접하게 된 한지공예가 김혜림 작가는 달빛처럼 소박하고 은은한 한지의 멋스러움을 생활 속에 녹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화려하지만 튀지 않는 그녀의 작품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한껏 대변한다. 



한지는 손으로 찢거나 구기거나 겹쳐질 때 마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 한지를 어떻게 만지냐에 따라 질감이 드러낸 입체감이 살기도 하고 빛과 조합하면 슬며시 실루엣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 두께나 엮은 방식에 따라 빛의 농도도 달라진다. 이러한 한지의 물성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김혜림 작가는 물을 적셔 구기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해 부드럽고 연한 한지를 강하고 질기게 변화시키고 이를 조형물로 재창조해낸다. 이를 통해 그녀는 한지의 현대화를 추구한다. 

특허 받은 한지 디자인, 여성발명협회 회원으로 활약 
김혜림 작가는 2007년 한지공예 사범자격증을 취득한 후 지금까지 오로지 한지만 보고 살아왔다. 2008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공모전에 참여했고 6회의 개인전과 30여 차례의 그룹전을 치러냈다. 그 성과로 김혜림 작가는 2012년 전통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2013년 대한민국 세계 여성발명대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2012년 일본 아트미래 국제 공모전 도쿄의 롯폰기에 있는 국립신미술관 전시하여 ‘장려상’을 수상하며 국제무대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이후 그녀의 한지는 심사를 통해 2012년 2월 특허 받은 디자인으로 등록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한국전통문화예술 진흥협회에서 전통한지 명장을 취득했다. 현재 김혜림 작가는 여성 발명협회 회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국정원 산하의 양지회 한지공예반 및 밥퍼목사가 운영하는 다일교회 강사로 출강하며 서울 옥수동에서 혜림한지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한지의 모던화
김혜림 작가는 2011년 개인전에서 줌치기법으로 새로운 질감의 한지 작품을 선보였다. 줌치기법은 공예기법의 하나로 두 겹의 한지를 물만으로 붙여서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밀착시키고 주물러 한지를 아주 강하게 만드는 기법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보아오던 전통적인 한지의 전통문양에서 벗어난 새로운 질감의 한지가 탄생하게 된다. 김혜림 작가는 줌치기법으로 탄생한 새로운 질감을 창조해내고 이를 자개장이나 서랍장, 테이블, 전등 등에 덧입힌다. 화려한 색상의 천연한지, 단아한 블랙과 골드 톤으로 덧입혀진 공예품들은 투박함에서 모던함으로 그 자태를 뽐내며 저마다의 매력을 발산한다. 김혜림 작가는 “때로는 작업 중 예측하지 못한 질감과 색감으로 탈바꿈되어 소스라칠 때가 있다.”며 이것이 한지 작업의 경이로운 묘미라고 전했다. 

생활 속에 스며든 한지
한지의 물성을 매력으로 드러내기 위해 작업에 기울인 정성과 열의는 그녀의 작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특히 현대생활 속에 접목할 수 있도록 한 실험적인 작업이 눈에 띈다. 합지로 골격 조립작업을 한 후 한지를 입힌 작업으로 이렇게 섬세하고 무수한 손길을 통해 탄생한 화장대나 서랍장 등은 나무가구 만큼이나 견고하다. 특허받은 한지를 활용해서 다양한 생활용품도 만들지만 특허받은 한지로 한국적인 민화풍의 작품에도 도전(무릉도원,십장생도)하여 완성시켰고 세계적으로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단청에도 도전하였다. 궁궐이나 절에 있는 단청은 평면의 느낌이지만 한지로 만든 단청은 입체적이어서 더욱더 돋보이며, 지금 일월도악도에도 도전하여 작업 중에 있다. 이렇듯 민화적인 표현의 십장생도나 단청, 일월도악도등 새로운 한지 작품의 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한지공예를 규방공예라고도 하는데 규방문화에서 벗어나 ‘한지의 예술화’  ‘한지의 세계화’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지의 숨겨진 미적 가능성을 열다
한지의 역사는 다른 공예에 비해 그리 길지 않다. 조선 후기에 들어 시작된 것으로 보는 한지가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진 이유는 조선시대에는 닥나무로 만든 종이를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왕가나 귀족층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귀하디귀한 한지가 지금은 친숙한 전통공예로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흐름에는 김혜림 작가의 한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탄생한 작품이 분명히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하게 재료를 변용하고 끊임없이 조형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의 작업은 한지의 무한한 매력을 최대한 발현토록 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지극히 한국적인 재료로 독창적으로 잉태된 조형미의 조화를 통해 한지의 또 다른 미적 가능성을 묵묵히 열어가는 길이 행복하기만 하다는 김혜림 작가. 그녀는 한지 속에 내재된 현대적 감성과 감각을 담은 작업을 통해 한지를 널리 알리는 촉매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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