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극명히 갈린다. 너무 가볍거나 혹은 너무 무겁게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혈액형 분류나 연애 심리 등을 곧 심리학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심리학은, 특히 현대 임상심리학은 명백히 과학의 한 분야다. 한편 심리학을 너무 무겁게 여기면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조차 기울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상담센터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쉽게 문을 두드리지 못한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까봐서다.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인식 속에서, 또 급변하는 사회가 빚어내는 혼란 속에서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임상심리 전문가다.
손애리심리연구소 1년을 돌아보다
손애리 박사는 한국임상심리학회가 인정하는 최고의 자격인 ‘임상심리전문가’로서 다년간의 대학병원 근무 이력과 대학 강단에서 강의와 교육을 담당하고 후배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수련감독자로서 역할을 하는 등,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실전형 전문가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복잡하고 깊은 단계까지 장애나 증상이 진행된 환자들을 치료하던 그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심리학적 서비스’가 필요함을 매번 절실히 느꼈고, 이러한 절박함이 손애리심리연구소를 열게 된 계기였다고 설명한다.
“이제는 한국에도 임상심리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거 양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그러나 임상심리전문가 인력의 대다수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결과, 지방에서 이들 전문가들을 만나기 쉬운 일은 아니죠. 저는 대전에서 각종 정신적 장애나 아픔을 겪는 분들을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가능한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서울에서 병원생활을 정리하고 대전에 내려올 때도 오랫동안 해오던 일이니 다시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 가지 않고 미루다가 치료에 ‘너무 늦은 환자들’이 양산되는 것을 줄여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텐데, 하는 마음으로 과감히 개업을 선택했지요. 물론 더 많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도 컷고요(웃음).”
손애리 박사는 “상대적으로 약물 치료나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요하는 상태에 있는 분들은 신속히 병원이나 적절한 치료 기관으로 의뢰해드리고, 전문적인 심리 치료로 부적응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분들은 이 곳 연구소에서 치료하고 있습니다”라며 연구소의 역할과 취지를 설명했다. 즉 손애리심리연구소는 병원치료와 심리상담의 가교로서 내담자의 심리적 부적응 문제를 평가하여 병원 치료가 우선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 적절한 약물 치료를 권유하고 연결시키는 한편, 조기에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적합한 치료법을 제공하는 심리치료의 1차 기관과 흡사한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손애리심리연구소가 첫 발을 내딛은 지 1년이 지났다. 여러 힘든 일도 있었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내담자들 중 상당수가 손애리 박사가 바라 마지않던 ‘조기에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근로자지원프로그램(Employee Assistance Program : EAP)의 지원으로 직장인들도 심리치료를 많이 찾는 추세라고 한다. 대기업에는 내부에 상담실을 갖추고 있으나, 이보다 작은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은 아직은 자체적인 심리 지원체계가 미비한 상황이다. EAP는 이러한 실태를 해소하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복지시스템이다.
“대전광역시와 인근 도시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임직원들이 상담센터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면 기록이 남아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많았는데요, 현재는 그런 생각이 많이 바뀐 추세입니다. 오히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려는 태도로 심리적인 건강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정신적인 웰빙이라고 할까, 요즘은 비교적 가벼운 심리적 문제나 스트레스들을 정기적으로 상담 받고 싶어 하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심리적 증상보다 직장생활에서의 고충이나 대인관계 문제와 같은 일반적인 부분들을 주로 이야기한다고. 이러한 내담자의 경우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충분한 사람들이기에 내적 갈등을 빚는 문제를 명확히 밝혀주기만 하면 확실한 변화를 볼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한다.
“제가 처음 대전에 내려왔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습니다. 심리연구소 보다는 ‘카페’ 형식의 상담센터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하고요. 누구든 쉽게 들어와 차 한잔 마실 시간 동안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편한 공간을 꿈 꿨었죠. 지금 제 연구소의 분위기도 카페만큼은 아니지만 찾는 분들께 최대한 심리적인 안정감을 드리는 방향으로 꾸몄습니다. 앞으로 손애리심리연구소를 현대인의 편안한 상담공간으로 자리매김 시키는 한편, 자칫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 ‘임상심리학’을 ‘심리학적 서비스’로서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다양한 치료법으로 임상효과 극대화 추구
최근 연구소를 찾는 내담자 중 우울증이나 강박증·불안장애를 겪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손애리 박사는 다양한 증상에 대해 가급적 맞춤형 치료법을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한다.
“호소하는 증상의 종류에 따라 내담자의 주요 문제에 따라, 치료 기간과 방법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또 대체로 단기적인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고 통합적인 접근을 합니다. 예로 강박 장애의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인지행동치료(CBT)와 지지치료를 함께 사용하는 등 문제에 따라 다양한 치료법을 함께 사용하는 식이죠. 내담자가 연구소로 직접 방문하기도 하지만 관내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선생님들께서 저에게 환자를 의뢰하시기도 합니다. 일부의 경우에는 병원에서 약물치료로 증상이 회복되더라도 성격적인 문제나 대인관계, 사회기술의 문제 등 심리적 적응을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즉 지속적인 상담치료로 증상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런 케이스의 환자는 제가 맡아 지속적인 상담으로 재발의 위험을 낮추고 적응 기능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합니다.”
물론 그에게도 힘든 점이 적지 않다. 일단 내담자 치료 작업이 의도한 만큼 진척되지 않을 경우에 치료자로서의 좌절과 고독감을 느낀다고 한다.
“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니 외롭고 힘든 적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내담자에게 적절한 도움을 드리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가 가장 힘듭니다. 다른 전문가 분들과 함께 했더라면 이런 문제들을 상의하고 도움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자책도 많이 했죠. 하지만 제가 더 성숙하고 연구소가 안정되기 전에 섣불리 연구소의 규모를 키울 수는 없었기에 견뎌낼 수밖에 없었죠.”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손애리 박사에게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이 있다. 바로 상담과정을 통해 내담자의 내면과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최근에 우울증으로 찾아온 대학생 내담자가 있었어요. 본인이 적극적으로 약물치료와 함께 상담치료를 병행하길 원한 경우였죠. 처음에는 당연히 청소년기 우울증으로 생각했는데, 상담을 진행하면서 경계선 성격 성향이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저도 치료가 좀 진행되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손목에는 얼핏보면 잘 보지 못하는 정도의 희미한 자해 흔적도 많았고요. 본인은 오랫동안 대단히 절박한 내면적 고통을 느끼고 있었지만 부모는 내담자의 심리적인 상태를 가벼운 부적응 정도로 여기는 상황이었습니다.”
치료과정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마음의 빗장을 내려놓은 내담자는 여러 문제들을 털어놓으며 부모와의 극적인 화해와 자신에 대한 이해의 단계까지 도달했다.
“부모는 그들의 방식으로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키웠지만, 정작 본인은 부모의 일방적인 관심을 힘겨워했고, 이것이 결국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과 반감으로 자라난 것이죠. 다행히 본인이 적극적으로 치료에 참여했고 자신의 문제를 외면하기보다 진지하게 응시하려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제가 생각한 것 보다 짧은 시간에 좋은 성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내담자의 치료 동기가 높아 치료 작업에 협조적이었고 내담자가 적극적인 만큼 저도 치료에 집중하고 책임감도 컷던 것 같습니다.”
손 박사는 앞으로 성격장애와 사회적 부적응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가 지금껏 임상심리학의 길을 걸어오면서 느낀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원만한 대인관계를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성격이나 사회적 적응 능력은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적절한 대인관계의 기술을 익혀가야 하는데 이를 발달과정에 맞춰 습득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인관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앞으로 손애리심리연구소를 더욱 확장하게 된다면, 대인관계와 사회성 전문 파트를 만들어 진단하고 치료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수퍼바이저로서 심리학도들 지도
“더 많은 심리학 전공자들이 사회에서 활동하기를 기대”
심리 치료는 집단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개개인과의 정성스런 1:1 치료다. 그러므로 하루속히 보다 많은 잘 훈련된 전문가들이 전국적으로 뿌리를 내려 귀한 지식과 임상기술을 전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특히 임상 기술은 책이나 지식으로가 아닌 도제제도와 같이 수련감독자의 지도 아래서 훈련과 자신의 실제 상담치료의 경험을 통해서 가장 잘 전수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수퍼바이저의 역할이 궁극적으로 매우 크다고 보여 진다.
손애리 박사는 현재 대전대학교와 한남대학교 대학원 과정에서 고급이상심리학, 심리치료이론, 심리평가 과목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충실한 수퍼바이저이자, 본인 또한 배우는 자세로 충실히 강의에 임하고 있다.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공부하는 마음입니다. 실제로 대학원생들 중 약 50%는 저마다 심리연구소나 기관 등 심리상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 제가 배울 점도 많습니다. 또 대학원생들은 이미 임상 현장에서 일하고 있기에 ‘심리 평가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이며, 내담자를 어떻게 진단하고 이해할 것인지, 심리평가 보고서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등 실용적인 것들을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울러 대전지방경찰청과 가정법원 등지에서 전문성을 살려 상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의 복지기관에서 심리치료 분야에 대한 자문을 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보이고 있다.
“대학병원에 있을 당시에는 몰랐던 사실인데요, 개업 후에 주변을 둘러보니 심리학 관련 전공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지는 않더군요. 덕분에 제가 마음만 먹으면 시도해 볼 수 있는 분야가 많은 점은 좋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바람직한 일이 아님이 분명하죠. 하루빨리 심리학 전공자들이 지역으로 진출해 내담자들과 대면하면서 조기에 문제를 진단하고 도움을 주는 는 역할을 맡아줘야 합니다.”
손애리 박사는 대전에서 활동하며 느낀 점들을 담담히 고백하면서 ‘유능한 심리학 전공자들을 육성해 사회로 진출시켜야 한다’는 남다른 각오와 진심을 함께 내비췄다.
손애리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심리학적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대학시절에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사회학이나 인류학, 종교학 등에도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는데,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선택하면서 20년간 한 길만을 충실히 걸어온 전형적인 심리학자다. 인간의 내면에 대해 이해하고 심리적 부적응 문제를 치료하는데 평생을 바치기로 각오한 그는 앞으로 손애리심리연구소가 사회적으로 더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울 계획들을 갖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연구소에서 임상심리전문가들을 교육하고 자격을 갖춘 이들을 배출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유능한 인재들이 활동하도록 하고 싶다는 손애리 박사. 부디 빠른 시간 내에 그의 포부가 실현돼 손애리심리연구소가 중부권을 넘어 전국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기관으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이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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