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은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드물게 뉴스의 대상이 되는 언론인이 있다. 손석희 JTBC 사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에게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 대학생이 가장 닮고싶은 인물 1위, 시민단체와 전문가그룹이 좋아하는 언론인 1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왜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언론인이라고 칭할까?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방송 때문이다. 그는 양심적이고 이지적인 진행자로서 보도계의 모범생으로 평가받는다. 재난뉴스는 피해자와 실종자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방송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후배의 실수에 대해 즉시 사과하는 모습과 가족들을 배려하는 인터뷰,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까지 짚어가며 보도하는 자세로 많은 지지와 박수를 받고 있다.
손석희는 1984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입사 직후부터 뉴스 프로를 진행하며 얼굴을 알렸다. 1987년에는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의 주말 진행을 맡았다. 동시에 라디오와 TV의 음악프로를 맡으며 대중에게 다가섰다. 그의 언론인 인생에 전기가 된 것은 1992년 MBC 파업 당시 20여 일간 구치소에 수감된 일일 것이다. 이때 수의를 입은 사진은 언론인 손석희의 이미지를 세상에 각인시켰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 그는 여전히 주부 대상 아침방송을 진행했다. 지금의 손석희가 완성된 시기는 2000년대 이후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라디오에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2002년부터 2009년까지 텔레비전에서 100분 토론을 진행했다. 그는 탁월한 진행 능력을 발휘했다. 많은 시민이 이른 아침 출근길 자가용에서, 버스에서 시선집중을 들으며 손석희에게 익숙해져갔다. 이후 2013년 MBC를 떠나 종편인 JTBC 보도부문 총괄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해 9월부터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9의 앵커를 맡았다.
세련된 방송진행으로 어필
30년 방송 이력이라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그를 다르게 기억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손석희의 변신은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언론 환경의 변화와 연계된다. 그와 비슷한 시기 MBC에서 활동한 백지연 아나운서는 손석희와 흡사한 이력을 보인다. 백지연에게도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여성 1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손석희와 백지연이 방송인으로 큰 영향력을 얻게 된 것은 그들이 몸담았던 직장 MBC에 힘입은 바가 크다. 같은 시기 활동한 MBC 기자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정동영, 신경민, 박영선, 최문순 등은 약속이나 한 듯 제1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 국회의원, 도지사가 됐다. 왜 1980년대 MBC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언론계와 정치권에서 약진할까? 이들이 자신의 선배, 후배와 달랐던 것은 무엇일까? 시대적 상황을 배제하고 원인을 찾는 것엔 한계가 있다. 이들의 성장을 추동한 근원적 힘은 민주화 직후 MBC 내부의 역동성이다.
젊은 세대에 인기 있는 이유
손석희는 과거 인터뷰에서 아나운서가 정리된 원고를 읽기만 한다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앵커라는 단어가 생긴 것은 그들의 역할이 아나운서와 뚜렷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뉴스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고 전체 진행을 조율한다. 편집권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해설과 논설, 촌철살인의 클로징 멘트를 생산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이는 오랫동안 현장을 누빈 경험에서 비롯된다. 언론인 손석희의 약점은 취재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MBC에서도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만큼은 현장 기자 출신이 양보하지 않았다. 손석희가 MBC의 뉴스, 시사 프로그램을 도맡을 수 있었던 것은 기자 출신들의 정계 등으로 진출하면서 생긴 공백을 메운 측면도 있다. 손석희가 젊은 세대에 인기 있는 이유를 단지 능력이나 도덕성에서만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 현상에서 보듯이 대중은 능력, 도덕성 외에 상징자본까지 갖춘 인물을 동경한다. 손석희는 세련미와 진보성향을 적절히 조합함으로써 자신의 상징자본을 완성했다.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는 진행
그는 시선집중에서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질문의 집요함을 놓고 보면 CNN의 래리 킹 쇼를 진행한 래리 킹을 연상시킨다. 언론인으로서 그런 태도는 미덕에 가깝다. 그러나 그의 질문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구설에 오른 사람은 주로 보수성향 인사들이었다. 2004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그의 질문에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에요?라고 되물은 것이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와 비교되는 인물이 신동호 아나운서다. 신동호는 손석희가 진행하던 두 개의 프로그램을 모두 물려받았다. 2012년 통합진보당의 진로를 주제로 한 100분 토론에서 한 여성 방청객이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북한 인권, 북핵, 3대 세습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이상규 의원은 답을 회피해 종북 논란이 일었다. 이전까지 100분 토론에서 진보 진영이 수세에 몰린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2월엔 시선집중에서 김재연 통진당 의원과 통화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신동호가 이석기 의원이 사용한 좌경맹동주의가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단어가 아니냐고 묻자 김재연은 사회자의 추측일 뿐이며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라고 했다. 두 번에 걸친 통진당과의 악연 때문인지 일부에서는 신동호의 편파성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반대로 손석희의 진행에는 편파성이 없었을까? 통진당 계열의 종북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진행자 교체가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다.
손석희의 JTBC
손석희의 JTBC 이적 선언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중앙일보 계열의 종편방송인 JTBC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소유의 종편과 함께 묶여왔다. 누가 보아도 손석희와 JTBC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평론가 허지웅은 손석희의 선택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가 삼성을 비판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손석희는 뉴스9에서 삼성전자 노동자의 백혈병 사망 실화사건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관 축소 논란속에서도 조용히 흥행한다고 전했다. 손석희가 진행하는 JTBC 뉴스에 대해 진보와 보수는 다른 평가를 내린다. 진보는 손석희를 옹호하는 양상이다. 반면 보수는 JTBC 뉴스가 한겨례처럼 되간다고 본다. 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9은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사건과 관련해 통진당 측에 편향적으로 보도했다는 논란 속에 방송통신심의의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종편 4사 가운데 모기업 신문사와 방송사 간 가장 대조적 논조를 보이는 곳이 중앙일보와 JTBC라는 데에는 거의 이견이 없다. 이제 JTBC는 그야말로 손석희의 JTBC라고 불러야 한다. 아직 현장을 지키는 손석희에게는 갈 길이 좀 더 남아있을 것이다. 그가 앞으로 언론인으로서 어떠한 길을 걷고 어떠한 평가를 얻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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