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이미지 연극의 연금술사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다시 한 번 한국 관객을 찾는다. 지난 두 번의 내한 공연 <달의 저편>(2003년), <안데르센 프로젝트>(2007년)을 통해 현대 연극의 혁신가로서 자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캐나다 출신의 천재 연출가 로베르 르빠주. 그의 대표작 <바늘과 아편>이 오는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8년만의 내한이다.
1949년 어느 날 밤, 자신의 최신작 개봉을 맞아 뉴욕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장 콕토는, 프랑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미국인들에게>라는 편지를 통해 자신이 미국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는지, 또 무엇에 환멸을 느꼈는지에 대해 쓰고 있다. 같은 시기에 마일즈 데이비스는 생애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여 <비밥>을 소개하는 중이다. 파리의 재즈 팬들은 열광했으며 <나는 나일 뿐(Je suis comme je suis)>으로 인기몰이 중이던 프랑스 배우 겸 샹송 가수 줄리엣 그레코는 데이비스와 사랑에 빠진다. 40년 후, 캐나다 출신의 배우 로베르는 마일즈 데이비스와 줄리엣 그레코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녹음을 위해 파리에 머물고 있다. 얼마 전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한 그는 연인을 잊기 위해 애쓰고 있으나 별 소용 없다. 그의 감정적 고통은 아편에 의존하던 장 콕토와 헤로인에 의존하던 데이비스를 상기시킨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중독된 사랑으로부터 자유를 찾고자 온갖 힘을 써보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마약, 술, 사랑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바라본 의존성에 관한 이야기다. 중독은 보통 무언가 빈 곳을 메우려 한다. 나는 상실을 경험한 세 인물을 통해 의존성에 대해 그려보고 싶었다.”고 의견을 밝힌 로베르 르빠주의 말처럼 <바늘과 아편>은 상실과 의존에 대한 이야기다. 1991년 초연된 <바늘과 아편>은 발표 당시, 연극계에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다. 사랑을 잃은 세 남자(프랑스 영화감독이자 극작가인 장 콕토, 미국의 유명 재즈 트럼피터 마일스 데이비스, 캐나다 출신의 배우 로베르)가 중독된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고 중독되어 가는 아이러니를 그리고 있다. 상실, 불안, 고독 등 인간 내면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은 로베르 르빠주 특유의 영상과 테크놀로지가 접목되어 관객들에게 거대한 예술적 카타르시스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바늘과 아편>의 백미는 이야기를 놀라운 비주얼 시퀀스로 풀어놓는 데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큐빅이 회전하며 뉴욕의 거리, 파리의 재즈 클럽,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로 순식간에 변화하여 마치 콜라주처럼 펼쳐진다.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며 꿈 같은 이미지들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로베르 르빠주의 연출은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예술의 진수를 느끼게 해 줄 것이고 공연 내내 흐르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는 이 연극의 또 다른 묘미가 될 것이다. 로베르 르빠주가 뼈아픈 이별을 겪고 만들었던 연극 <바늘과 아편>.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것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바늘과 아편>은 보다 성숙한 모습을 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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