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국립극단은 가을마당 네 번째 작품으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린다. 오는 11월 4일부터 11월 22일까지 펼쳐지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이 시대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 고선웅이 ‘동양의 햄릿’이라 불리는 『조씨고아』를 직접 각색해 무대화한 작품으로 더욱 기대를 모은다.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는 중국에서는 천카이거 감독이 2010년 <천하영웅>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고, 2013년에는 CCTV에서 41부작 드라마로 방영되어 드라마부문 대상과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서사중심의 연극을 지향하는 국립극단의 새로운 도전인 동시에 연극의 놀이를 극대화하여 비극 속의 웃음과 공허를 찾아내는 고선웅 연출의 야심작으로 흥미진진한 고전읽기의 기회를 제공한다.
장군 도안고는 권력에 눈이 멀어 적수인 문인, 조순의 가문을 멸족하는 정치적 처단을 자행한다. 조씨 집안의 문객, 정영은 자기 자식과 아내를 희생하면서 조씨고아를 살려야 하는 가혹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20년간 복수의 씨앗, 정발을 자신의 아들로 키운다. 이를 알아채지 못한 도안고는 정영을 자신의 편으로 믿고 정발을 양아들로 삼아 무인으로 훈련을 시킨다. 정발이 장성하자 정영은 참혹했던 과거를 고백하며 양아버지 도안고에 대한 복수를 부탁한다.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 정발은 20년 전 죽음을 당한 친아버지 조삭, 20년간 키워준 아버지 정영, 그리고 두 얼굴의 양아버지 도안고, 즉 세 명의 아버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정영의 말에 따라 조씨 가문의 복수를 결심한다.
이처럼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 희생하게 되는 비운의 인물 ‘정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20년 동안 복수의 씨앗을 길러낸 정영은 마침내 도안고에게 복수를 행한다. 그러나 연극은 복수 끝에 씁쓸한 공허만이 남는 그의 인생을 보여주며 과연 ‘복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복수’는 오랫동안 문학의 커다란 화두였지만 누구도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비극적 주제이다. 법이라는 제도가 생기기 전 중국 사회에서 용인되었던 복수이야기를 지금 이 시대에 가져와 무대에 올림으로써 이 연극은 ‘복수는 해야 하지만 그 끝이 후련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복수의 진정한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특히 근현대를 지나며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모순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복수의 의미와 현상을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고전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복수의 씨앗을 살려낸 20년 동안의 복수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정영’의 복수는 정녕 성공한 것인가. 복수에 성공하면 비극이 희극으로 바뀌는가. 그렇다면 이 연극은 희극인가. 고선웅 연출은 비극 속에 희극성을 내재해 이 경계를 희미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곰곰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성숙의 세계로 인도한다. ‘좋은 연극’은 그렇기 때문에 필요하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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