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를 넘어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러 간다. 조선 후기 판소리를 집대성한 대표적 이론가이자 당대 최고의 판소리 대가 신재효, 그리고 남자만이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금기와 편견을 깨고 그가 키워낸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 1867년 흥선 대원군이 전국의 소리꾼들을 위해 열었던 경연 ‘낙성연’에서 조선 역사상 최초로 여성의 소리가 울려 퍼진 그 날 이후, 스승 신재효와 제자 진채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역사에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다. 신재효가 진채선의 아름다움을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핀 봄 경치에 빗대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단가(짧은 판소리) ‘도리화가’의 노랫말에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가 오는 11월 25일 영화 <도리화가>를 통해 새롭게 되살아난다.
<도리화가>는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운명을 거슬러 소리의 꿈을 꾸었던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배수지)과 그녀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류승룡)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채 기생집에서 자라났지만, 우연히 접한 판소리에 매료되어 기생이 아닌 소리꾼의 꿈을 품어 온 당찬 소녀 진채선. 그녀가 시대의 금기를 넘어 간절한 꿈에 도전하고, 자신의 운명을 넘어 진정한 소리꾼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현시대와도 맞닿아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가슴 뛰는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이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제자의 꿈을 지켰던 신재효는 때론 아버지와 같고, 때론 멘토와도 같은 묵직함과 애틋함으로 <도리화가>의 드라마에 깊은 울림과 감동을 채운다. 금기를 깨고 최초의 여류소리꾼이 탄생하기까지, 역사 속에 숨겨진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판소리라는 가장 한국적인 선율과 아름다운 절경으로 담아낸 영화가 바로 <도리화가>이다.
이 영화에는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 류승룡과 배수지, 실력파 배우 송새벽, 이동휘, 안재홍, 그리고 김남길이 역사 속 실존 인물로 분하여 각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최고의 앙상블을 완성해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허균’, <명량>의 ‘구루지마’에 이어 <도리화가>의 ‘신재효’를 통해 다시 한 번 실존 인물로 분한 류승룡은 한층 묵직해진 변신을 선보인다. 남다른 카리스마로 동리정사를 이끄는 수장으로, 채선에게는 엄격하면서도 든든한 스승이자 버팀목으로, 하지만 그 이면에는 못 다 이룬 꿈에 대한 열망과 백성을 위한 소리꾼으로서의 번민을 지닌 신재효의 입체적 캐릭터는 류승룡의 깊은 눈빛이 더해져 강한 진폭의 감정선으로 극을 이끈다. 류승룡과의 첫 호흡으로 기대를 높이는 배수지는 전 국민을 설레게 한 데뷔작 <건축학개론> 속 국민 첫사랑의 이미지를 벗고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소리꾼에 도전하는 당차고 밝은 매력의 진채선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메이크업을 지운 맨 얼굴에 숯칠을 하고 남장을 하는 파격적 변신을 감행한 것은 물론, 판소리를 위해 발성과 목소리마저 변형시키며 캐릭터에 완벽히 스며든 배수지는 철없는 소녀에서 아름다운 소리꾼으로 거듭나는 채선의 성장 과정을 특유의 맑은 매력과 더욱 성숙해진 연기력으로 소화해냈다. 이처럼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로운 소리는 미래가 아닌 과거에 있었다. 영화 <도리화가>를 통해 복원되는 새로운 소리가 반가운 이유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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