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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이종철의 위대한 선화세계 27년간 달마보시, 무욕無慾의 숭고한 삶

커버스토리 이종철 화백 | 2016년 01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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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화백은 선화가(禪畵家)이자, 달마도 대가(大家)로서 이채로운 업적을 남긴 명인(名人)이다. 그는 상업화된 ‘가짜 달마도’가 판치는 혼탁한 세상에서 명리(名利)를 좇지 않고, 무욕의 길을 걸으며 20여년 달마보시의 삶을 이어왔다. 달마대사에 대한 깊은 신심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은 응집된 생명력을 발산하며 희망의 기운을 안겨준다. 더불어 이 화백은 그간 40여 회에 넘는 개인전과 시연전을 개최하여 기념비적 작품을 선보였고, 전시 수익금을 지체장애인 복지기금 등으로 기부해 이웃사랑을 실천해왔다. 또한 최근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금연캠페인을 선도하며 무료강연을 하는 등 남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본지는 2016년 신년호를 맞아, 기운생동(氣韻生動)한 선화세계를 펼치는 이종철 화백의 구도행(求道行)과 청신(淸新)한 삶을 조명했다. 

“상업화가로 나갔으면 벌써 재벌됐겠지만 인연법에 따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즉석에서 무료로 그려주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한 달마선사의 그림이 홈쇼핑에서 거래되는 세상이다. 돈을 벌려고 달마도를 그렸다면, 벌써 많은 부를 축적했을 것이지만 이 화백은 인연법에 따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그려주면서 부처의 마음을 전했다. 이는 달마대사의 뜻을 훼손시키지 않고, 달마도가 상업용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일반인들에게 선화를 널리 알리고 싶은 의지였으며, 달마를 그리는 것은 수행하고자 함이니 욕심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지난 27년간 달마보시를 하며 무욕의 숭고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이화백은 첫 대면에서 당당한 기개의 선객(禪客)의 풍모가 절로 느껴졌다. 

이 화백은 1943년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세살 때 한국에 들어와 고교시절까지 서양화를 공부했다. 우연히 연예계에 발을 디딘 후 국내에서 가장 젊은 쇼 단장으로 서영춘, 최무룡 같은 스타들과 전국을 누볐다. 예술에 대한 끼를 버리지 못하고, 사진작가 생활을 15년 정도하다 1987년 팔공산 동화사에서 도운 스님을 만나 불교에 입문했다. 석주 화백은 월산스님에게 자봉이라는 법명을 받았지만 승적을 갖지 못하다가 다시 도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며 석주라는 법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 전에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호화스럽게 살면서도 채워지지 않았던 욕망이 먹은 것도 부실하며 일반인들이 버티기 힘든 절의 좁고 추운 방에 있으면서 만족감을 느꼈죠. 당시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심상(心象) 즉, 마음으로 보는 것에 굶주려 있었던 나를 깨닫고, 그때부터 머리 기른 상태로 스님을 모시고 지냈습니다.”
그는 존재의 깨달음을 얻은 후 과감히 속세의 화려한 생활을 접었다. 이어 자연으로 돌아가 선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그만의 소신을 바탕으로 물질과는 먼 삶을 살아왔다.  
그의 창작 달마가 명성을 얻은 이유는 국가 행사나 우환이 있을 때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화백은 축구공을 들고 있는 달마의 형상인 ‘2002년 월드컵 4강 예언 달마도’를 그렸는가 하면,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때 대회의 성공을 기원하고, 지하철 참사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250m에 이르는 선화도를 그려 대통령표창 상신을 사양한 바 있다. 이 작품은 국내 그려진 달마도 중에서 가장 긴 작품으로 현재 대구시 산하기관에 전시돼 있다. 당시 석주 화백은 2173(개최연도 2003+당시 희생자 170)명의 달마를 화폭에 담았는데, 달마 제각각의 포즈와 표정이 달라 그 독창성을 엿보이게 했다. 이어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공사가 완공됐을 때에는 청계천의 길이(5602m)에 맞춰 달마도를 그려 나눠주기도 했다. 그는 맑은 물을 보면서 달마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그 해 11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 때에는 각국 정상이 우리 달마도의 기상을 느낄 수 있도록 대규모 전시회를 열어 찬사를 받았다. 이처럼 다채로운 이력으로 각종 언론사, 방송사의 주목을 받았으며, KBS 아침마당에서 그의 인생스토리가 방송된 바 있다.  
“선화도의 근본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말로 하고, 양손으로 움직여서 동선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지된 것인데, 움직이는 것을 본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죠. 실의에 빠졌을 때, 좋은 음악을 들으며 내일의 희망을 기대하고, 우울할 때 좋은 그림을 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사람과 차 한 잔 하면서 느끼는 편안함을 담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선화세계입니다.” 

이 화백은 그의 작품 본류에 대해 “을에서 나오는 몸부림”이라고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에 파묻혀 있을 때에는 그것의 본질을 모르고 그저 고통인 줄 안다. 산 속에서 산이 그립고, 사람 속에서 사람이 그리운 것처럼, 가난 속에서 달마선사의 마음그릇을 담고자 치열 하게 선화를 그릴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을 느낀다며 그의 작품관을 설명했다. 자연을 떠난 작위(作爲)적 예술이 아닌, 자연에 대한 신뢰를 근간으로 선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석주 화백. 한가로운 유희가 아닌, 심신의 기력을 말소시키는 고통의 전투와도 같은 그의 작업은 범인들로서는 도저히 인내하기 어려운 각고의 수련으로 탄생된 예술의 경지다. 이 화백은 궁핍을 면하기 위해 물욕에 얽매어 있기보다, 선(禪)의 비밀스러운 뜻을 풀어내며 자연을 도(道)로 삼고 천인(天人)이 합일(合一)된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었다. 
지·필·묵을 벗 삼아 지나온 인고의 세월을 어떻게 다 형언할 수 있을까. 그가 걸어온 생(生)의 역사와 희로애락(喜怒哀樂)과 마음고생의 흔적이 그의 초연한 눈빛에서 나타났다. 이 화백은 안타깝게도 황반변성(황반 및 후극부의 변성)으로 오른쪽 눈이 거의 실명상태며, 왼쪽 눈은 항체주사요법을 통해 겨우 시력을 유지하는 상태다. 하지만 그는 “가진 것도 없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요즘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는 춤을 추고 싶다. 귀를 막고도 들을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다. 앞으로 몇 년 후면 나는 봉사가 된다. 고칠 수 없는 병이며 다만 늦추고 있는 것임을 안다. 물질적 여유만 있었다면 이리되지도 않았을 터지만, 돈으로 바꾸지 않은 삶에 자부심을 갖는다”며 미소 짓는 그는 신선(神仙)의 모습과도 같았다. 

“권력은 눈밭을 걸어간 기러기 발자국이니,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달마의 모습이 비치어 반목을 거둬주기를...” 최근 그는 금연캠페인을 전개하며 청소년들을 바른 길로 선도하고, 사비를 털어 달마도와 부채를 보시하는 등 아름다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우울증, 자살 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포용할 수 있는 창작활동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자신을 도구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가치 있는 작품을 널리 전파하길 소망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예술가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평생 변치 않는 선비의 지조로 몸 바쳐 헌신하는 이종철 화백의 고결한 예술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예술여로에 서광이 비추기를 바래본다.  

인터뷰가 끝난 후, 석주 화백은 족자와 화구를 꺼냈다. 붓에 먹물을 찍어 선화를 그려나가는 그의 모습은 달마선사의 형상을 닮아있었다. 그의 화폭에 펼쳐진 기백 서린 산(山)의 형상과 수행하는 스님의 모습은 잔잔하게 가슴을 울렸다. 사람들 속에서 늦게 만난 정혜미 덤. 작품에 남긴 그의 메시지였다. 이제 기자는 그의 아름다운 인생에 덤이 되었다. 정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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