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전국을 강타했던 ‘초원이’를 기억하는가. 조승우 주연의 영화 <말아톤>은 당시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반도를 감동의 물결로 가득하게 했다. <말아톤>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달릴 때가 가장 행복한 5살 지능의 20살 청년의 휴먼드라마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를 외치는 자폐아 ‘윤초원’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자폐에 관한 대중의 시선 또한 변화시킨 <말아톤>은 개봉을 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달릴 때가 가장 행복한 초원이처럼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한 자폐 학생들을 5년째 직접 발굴 및 지도하는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를 통해 벌써 다섯 명의 화가를 데뷔시킨 시스플래닛(www.wearesysplanet.com)의 오윤선 대표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시스플래닛은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에 위치해있다. 시스플래닛은 작가를 발굴하고 교육하며 전시를 기획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기업이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가 행운이 되어 현재 ‘투명한 재능’을 보유한 자폐 작가들과 ‘열린행성 프로젝트’를 비롯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밀도 높은 관심을 받았다. 미술계에도 전문적인 매니지먼트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신(윤선)과 친구(서연)의 이니셜을 따 SYS(시스플래닛)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도쿄 긴자의 메구미오지타갤러리에서 김샨(아티스트)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시스플래닛은 첫 출발하였다. 그리고 현재 자폐성장애, 다문화가정의 작가 등 다양한 환경의 작가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전시도 열며 회사명처럼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또 다른 행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자폐아동의 놀라운 미적재능에 빠지다
오윤선 대표는 우연히 교회에서 자폐아동들이 예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목사님이 설교하는 중에도 아랑곳없이 뛰어다니고 소리도 지르는 자폐아동의 때 묻지 않은 자유로운 모습이 오 대표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자폐아동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았던 그 1시간 내내 굉장히 즐겁고 재밌었어요. 제 안에서 카타르시스의 감정이 솟아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답니다. 마치 제가 하고 싶지만 이성적으로 제어하고 있는 행동들을 이 아이들이 대신하고 있는 거라고 표현하면 될까요? 그런 후에 시스플래닛이 자폐아동을 담당하는 분께 혹시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있으면 3개월 정도만 만나보고 싶다고 정식으로 제안을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3개월이 5년차가 되었고 제 인생 또한 자연스럽게 바뀌었습니다.”
그때 처음 만난 작가가 바로 시스플래닛의 메인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동민 작가이다. 처음에 신동민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놀랐던 순간을 오윤선 대표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신동민 작가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했지만 이미 자신만의 화풍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신 작가의 그림 중에는 고갱의 작품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소화한 것도 있었다. 이렇듯 미대 등 정규 과정을 거친 이들의 작품에서는 찾기 힘든 순수함과 독창적인 면에 매료된 오윤선 대표는 이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전시를 기획해 ‘열린행성 프로젝트’를 열고 더 나아가 ‘2014 홍콩아트쇼’, ‘중국문화엑스포’, ‘2015 아시아호텔아트페어’ 등 굵직한 해외전시에도 참여하며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과 성과를 이어오고 있다.
그림을 먼저 본 후 작가의 환경을 알 길 바라며
관람객들이 실제로 작품을 보고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하는 이야기가 “작품의 수준이 복지 차원이 아니네요”라는 말이라고 한다. 시스플래닛 오윤선 대표는 이 말 뒤에 감춰진 숨은 의도를 포착하였다. 작가들이 특별한 환경에 처해있다는 이유로 전시를 복지사업으로 바라보는 관람객들이 적지 않다는 것. 이와 같은 시선을 해결하기 위해 그림을 먼저 본 후 작가의 환경을 알아주는 문화가 활성화되기를 오 대표는 소망하고 있었다.
“시스플래닛의 작가들이 사회적으로 보면 핸디캡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언어적인 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전시장이나 그림에서만큼은 편견 없이 바라봐주시고 그 안에서 투명하고 솔직한 에너지를 느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즉, 장애를 가진 누군가가 그림을 그렸다는 전제 아래 전시를 관람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아닌 그림을 먼저 본 후 작가의 환경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 장애나 문화적 차이는 전시를 관람하게 만드는 수단이 아닌 모든 이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스토리 중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에 많은 이들이 시각의 전환을 통해 편견 없는 예술적 경험을 넓혀가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현대인들은 사회 속에서 저마다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에 없던 시스플래닛이라는 행성에는 가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솔직해진다. 시스플래닛 오윤선 대표 역시 이들과 함께 하면서 ‘사람과 함께 하는’ 느낌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받고 있다. 이렇듯 자폐성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이 그린 그림이 조금씩 사회의 편견을 줄여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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