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묵직한 내면의 관념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동양적 정신미학의 높은 경지를 화폭에 담아온 이희춘 화백. 지금껏 그는 자칫 감상자의 시야를 흐려 본질적 메시지를 왜곡할 수 있는 화려함을 배격, 오로지 정직한 화폭을 통해 꿈결 같은 무위자연의 관념적 상아탑을 현대인의 가슴 속에 전하려 노력해왔다. 매일같이 수련의 깊이를 더하며 치열하게 작가 정신을 가다듬는 그를 찾아 ‘현대인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느껴보는 한편, 그가 강조하는 예술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몽유화원도(Drawing for Flower Garden of Dream), 전통적 이상향을 갈구하는 도가적 사유 화법 이희춘 화백은 물질문명의 저편에 감춰진 정신세계를 갈구하며 지금껏 지치지 않는 자세로 붓을 들어왔다.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가치관과 형이상적 통찰을 화폭에 담으려 노력해온 우보만리(牛步萬里)의 꾸준함은 순수한 구도(求道)적 진실함으로 캔버스에 피어난다. 이러한 노력이 있어 가능했던 작품 속 꿈과 현실의 접경은, 양측의 간절한 소통과 교감을 담은 나비의 날갯짓으로 시각화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꿈결 같은 속삭임을 경험케 한다. 전통적인 동양화법을 구사했던 그의 화력이 고스란히 지극히 도전적인 회화적 표현기법 속에 살아 약동하는 광경이다. 이렇듯 자유분방함 속에 높은 경지의 도가 사상을 담아내는 그의 표현기법의 내력은 지필묵으로 고유의 전통미를 지키고자 애썼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양사상과 한국 전통미를 예찬하며 고지식하게 수묵화를 그려냈던 젊은 시절은 지금의 이희춘 화백을 있게 한 수련 기간이었다. “빈틈없는 전통적 도상성을 파고들며 동양화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높은 꿈을 품었던 저는 2008년 아트페어에서 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시장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던 것이죠.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간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한국적 전통미를 추구하게 만들었던 강렬한 예술혼이 처음으로 한계에 부닥치자 그는 절망하는 한편 끊임없이 변화를 향한 활로를 모색했다. 그리고 의식의 심연에 가라 앉아있던 그의 눈앞에 옛집의 자개농이 들어오는 순간, 그는 도상성의 고치를 찢고 새로이 창작의 불꽃을 가슴 속에 품게 된다. “저의 유년시절을 함께해온 자개농이었습니다. 익숙하다 못해 방 한편에 뿌리내린 녀석이었죠. 하지만 그때는 무언가 달랐습니다. 저의 오감을 자극하며 움직이는 새와 꽃 장식들이 저마다의 생명력을 뽐내며 강렬한 영감을 줬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죠. ‘전통이란 답습하며 전승하는 것 보다, 현대적 감각과 작가 나름의 표현력이 어우러질 때 더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죠.” 그는 곧바로 자신의 뇌리에 강렬하게 떠오른 영감을 캔버스에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 위에 투사되기 시작한 이상향은 나비가 되고 꽃이 되고 영수(靈獸, 상상의 동물)이 돼, 이희춘 화백만의 무릉도원을 만들어 나갔다. 수묵화는 ‘이희춘 화풍’의 중심을 이루는 근간임에 분명하지만, 그의 끓어오르는 영감의 표현에는 오히려 족쇄가 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그는 과감히 지필묵은 내려놓고 새로이 캔버스 앞에 서서 나이프를 들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는 ‘몽유화원도(夢遊花源圖)’가 바로 이러한 맹목적인 도전과 사유의 결과이다. 조형적 굳건함이나 화려함, 도상적 체계성을 벗어던지고 속삭이듯 ‘무위(無爲)’의 철학을 전해주는 그의 작품은 한편으로 산들거리는 나비가 돼, 우리의 귓가를 간지럽힌다. 무엇보다 그가 이룩한 모던한 스타일은 나전의 질감과 회화적 풍미를 오가며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가기에 돋보일 수밖에 없다. 이 화백이 추구하는 전통의 발전적 변용은 소재가 가진 진부성을 회화적 실험으로 보완하고 있기에, 소위 ‘클래식한 모던, 모던한 클래식’이라는 수사적 표현에 가장 적합하다. 아울러 그가 만들어가는 표현 기법은 고달픈 구도의 과정 속에서 깨우친 삶의 철학과 더없이 한국적인 담백함이 어우러져 있기에 특별하다. 매일 행복한 창작을 이어가는 이희춘 화백의 속내가 표현된 덕분일까. 질투와 욕심 등 사람의 마음을 흐리는 파괴적 욕구와 물질문명의 각박한 틈바구니에서 지치고 상처 입은 현대인들은 구김 없이 행복한 ‘몽유화원도’ 속 유토피아를 보며 저마다의 이상을 꿈꾸고 새로운 힘을 얻곤 한다.
“죽는 날까지 초심을 지키면서 변화를 이어가겠다”
“자신의 작품을 멋지게 포장한다고 해서 그것의 가치가 높아지는 일은 없다. 오직 꾸준한 수행과 출품으로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작품 가치를 인정받는 최선의 길”이라며 소신을 밝히는 이희춘 화백. 오롯이 외길을 걸어오며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장인들의 삶을 숭상하며 그들의 굳은 철학과 의지를 닮고자 노력하는 그는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자신의 화풍을 더욱 완벽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이희춘 화백만의 철학적 작품세계가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며 화폭을 통해 우리가 바라 마지않던 이상향을 제시해주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