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서예의 품격을 높이며, 창조적 예술세계를 펼쳐나가는 정암 김광영 선생은 전북 서예 발전 및 저변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정암선생은 43년간 교직에 몸담으며, 학생들의 바른 인성 함양을 위해 서예지도에 매진했고, 정년퇴임 이후에는 정통필법을 바탕으로 임서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침체된 서예계의 활성화를 꾀하며, 후학양성에 기여하고 있는 정암선생을 만나 묵향을 오롯이 드리운 예인의 고귀한 숨결을 느껴보았다.
전주시 덕진구 호성동에 위치한 정암선생의 서실은 예술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었다. 벽면에 걸린 수많은 작품들과, 작업실 가득 겹겹이 쌓인 서적들은 서예술에 대한 선생의 집념과 열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정암선생은 한학자였던 조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서당에 다니면서 자연스레 묵향에 젖어들었다고 회고했다.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전북 임실의 오수초등학교를 초임으로 교편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예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그는 교내 어린이 서예교육을 주도했으며, 나아가 전북 교원서예연구회를 창립해 전주시 교육자의 서예문화 저변확대에 공헌했다.
“서예는 학생들의 학력향상 뿐 아니라, 정서순화, 인내력(끈기, 지구력),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평교사 시절부터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어린이들 서예교육에 열정을 바쳤습니다. 또한 서예를 지도하면서 서예와 독서는 어린이들의 성장발달에 필수요소 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독서를 많이 한 어린이들은 학년이 오를수록 지식을 흡수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실력이 월등히 향상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서예와 더불어 독서지도에도 열중했습니다.”
한국서예연구회 창립의 중추역할 담당
사단법인 한국 서가협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회원 상호간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창작 의욕을 고취시켜 가고 있는 정암 선생은 일찍부터 서예 교육에 뜻을 담고, 한국서예연구회 창립에 주요 역할을 했다. 그는 1960년대 교내 서예지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습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7년 전주시 교원서예연구회 조직에 기여하고, 이듬해부터는 전주시 초등학생 서예백일장 대회를 개최했으며, 첫 해 5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등 입지를 넓혔다. 이를 계기로 교원서예연구회가 전주시교육청 관내 우수교원단체로 인정받아 교육장 표창장 및 상금도 수상한 바 있다.
“1980년경에는 서예계의 대가인 여산 권갑석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교원서예연구회를 더욱 발전시켜 전국 학생서예휘호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1,0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등 성황을 이뤘지요. 이후 교원서예연구회를 한국서예연구회로 개명하고 전국규모로 확장시켜, 창암 이삼만선생기념사업회, 한글서우회 등도 창립했습니다. 따라서 전국신춘휘호대전, 한국서예대전, 전국학생휘호대회 등의 각종 행사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정암선생은 1992년 한국서가협회가 창립한 후 이듬해 서가협회 전북지회를 창립하는데 핵심역할을 했다. 당시 여산선생을 지회장으로 추대하고 정암선생은 사무국장으로 활약하며 한국서가협회 중앙임원들을 모아 창립총회를 열었다. 그 후 1997년부터 7년간 정암선생이 지회장직을 맡아 조직을 이끌었으며, 취임하던 해부터 전라북도 서예전람회를 개최하여 매년 이어가고 있다. 한편 한국서예연구회는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진강시, 일본의 고마쓰시와 매년 전시를 이어가며 한·중·일 문화교류는 물론 상호 친선을 도모하고 있으며 2008년 여산 선생의 작고 이후, 그의 여식인 유산 권영수 회장이 본 사업을 이어받아 운영하며, 조직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부단한 탐구정신과 창조적 모색
지난 43년간 교육계에 몸담아 초등교육의 미래를 연 정암선생은 교사시절, 사랑을 근본으로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지난 2000년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후에는 서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정신과 열정을 불태우며 인생 2모작을 개척하고 있다.
“붓글씨를 하면 고통이 따릅니다. 열심히 작업할 때에는 밤샘 작업을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닌데, 중고등학교 시절의 중간고사 시험공부 못지않게 힘이 들죠.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고 좋은 글씨를 쓰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며 임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강건한 운필, 생동감 있는 필획을 구사하며 묵묵히 예술의 길을 걷는 정암선생은 40년 가까이 서예에 천착하며 예술의 품격을 높여왔다. 현재 서가협회 원로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임서에 매진하는 그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하면서 훗날 감상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글씨를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선생은 지나친 예술지향보다는 실질적인 글씨를 쓰고 싶다고 전했다. 아울러 서예에 대한 국민적 인식 변화를 통해 서예의 정신함양을 강조하고, 다양하게 서예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면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할 수 있고, 서예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자신했다.
“옛 성현의 말씀 중에 도오선자(道五善者)는 시오적(是吾賊)이요, 도오악자(道吾惡者)는 시오사(是吾師)라고 했습니다. 나의 잘못까지도 모두 칭찬해주는 사람은 나의 적이요, 나의 잘못을 정확히 지적해 주는 사람이야말로 나의 참된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곧 인생을 살면서 저를 다스리는 글귀입니다. 남들이 나를 칭찬해주는 것보다,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앞으로의 예술인생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인생의 황혼 길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예술에 전념하겠다는 정암선생. 그는 향후 사회활동보다는 붓글씨에 매진하여 그 만의 개성을 담은 서체를 쓰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가족들에게는 어설픈 글씨에 매달려 매사에 소홀 했던 부분이 너무 많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가정들처럼 여행도 하지 못하고, 내 욕심만 차린 탓이죠. 앞으로는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보내고,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만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고된 수행으로 탄생된 선생의 작품에는 그의 사상과 철학, 인격과 이상이 담겨있다. 주변의 칭송에도 정작 본인은 구도자의 길을 걷는 중이라며 겸손함을 보이는 정암 선생은 늘 새로운 창작을 위해 고심하고, 붓글씨에 열정을 쏟는다. 매사에 진실한 예술세계를 지향하며 끈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작업에 몰두하는 정암 김광영 선생. 국내 서예의 활성화를 선도하는 중핵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하는 작품세계를 펼쳐나가길 기대한다. 정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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