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프랑스 마르세유의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인 프리쉬라벨드메(Friche la Belle de Mai)와 공동으로 <에코시스템: 질 바비에>전을 2016년 4월 13일부터 2016년 7월 31일까지 서울관에서 한국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과 프리쉬라벨드메가 상호 협력하여 각 기관이 기획한 전시를 교차전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결과 2015년 프리쉬라벨드메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기획전 《미래는 지금이다》를 개최하였고,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프랑스 작가 질 바비에의 한국 첫 개인전 《에코 시스템: 질 바비에》를 진행하게 되었다.
질 바비에(Gilles Barbier, 1965-)는 남태평양의 바누아투 공화국 태생으로 20세에 프랑스로 건너가 마르세유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마르세유를 근거지로 꾸준히 활동해 온 조형 예술가이다. 그는 문학, 과학, 생체해부학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이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드로잉·회화·조각 및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을 제작해 선보이고 있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현상과 과학 특히 생물학의 논리를 담고 있다. 이는 작가가 창조해낸 규칙과 생태계에 의해서 조직된 새로운 마이크로 세계이다. 질 바비에는 영국의 수학자 존 콘웨이(John Conway)의 ‘생명게임(Game of Life)’ 원리를 종종 본인의 작품 세계와 비유하여 설명한다. 세포 자동자(Cellular Automaton)의 대표적인 예인 존 콘웨이 ‘생명게임’은 임의적으로 배열된 세포들이 기본 법칙에 의해 자동으로 생성, 소멸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증식의 퍼즐을 만들어 낸다는 개념이다. 작가에게 이러한 생명게임은 그가 작품을 풀어내는 방법론이자 창조적 세계를 만들어 내는 논리체계이다.
이번 전시 제목은 작가의 방법론을 거대한 하나의 생태계 즉 ‘에코 시스템’으로 표현하면서 그가 경험한 변이와 증식의 새로운 유기적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머리 Head> 시리즈)에서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위해 자기 파괴와 생성을 시도했고, 이러한 분열과 복재는 (<질 Gilles> 등)에서 난쟁이 모양의 인물 오브제로 변화된다. 그리고 이 오브제를 장기의 졸(卒)에 해당하는 체스의 폰(Pwan)으로 명명하여, 체스라는 세계에 증식하는 또 다른 자아의 세계를 보여주는 <폰 Pwan> 시리즈로 확대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에 대한 탐구는 <인간주사위의 추락 The Falling of the Dice Man>, <꼬인 이야기로 된 세계 The Worlds as Braided Stories>, <리본 맨 Ribbon Man> 등으로 확대되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에 조응하는 또 다른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와 더불어 자가 증식하는 작가의 사유체계를 살펴 볼 수 있는 드로잉, 회화, 설치 작품 1백여 점이 이해 불가능한 혹은 임의적으로 해석 가능한, 시작도 끝도 없는 구조로 전시장에 입체적으로 설치된다.
전시는 놀라움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모든 것을 하고, 모든 것을 시도하라'는 듯 상상력과 자유가 넘친다. 그림이 걸린 전시장 안쪽 벽은 검은색으로, 바깥은 핫핑크로 칠해져 극단의 경계를 오간다. 독특한 상상력이 넘쳐나 '성적인 코드'도 희화해 버렸다.
난쟁이 모양의 인물 오브제 중 '인간 주사위'는 생태계의 우화를 보여준다. 주사위의 '점'의 숫자 대신 남성의 성기로 달아놓은 작품이다. 우스꽝스럽고 징그럽기도 한 모습이지만 작가는 "주사위로 1~6까지 숫자로 선택하는데, 성기가 구를 때마다 뭔가 색의 세계를 창조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어떤 흔적, 출생, 출산의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인간 주사위'는 루크 라인하르트의 소설 '인간 주사위'에서 영감 받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읽고 이전까지 벗어나지 못했던 어떤 단단한 생각의 틀을 깨트리는 경험을 했다. "소위 합리적이지 않은 것, 사회 통념에 반하는 것이 때로는 사람에게 더 큰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 주사위는 작가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던져진 그 순간,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를 드로잉과 설치작품에 담아냈다.
분홍색의 두상에 여섯 개의 바나나가 눈과 입 머리 귀등에 박혀있는 '바나나가 박힌 머리'는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매체와 광고를 비판한다. 이끼, 버섯, 담쟁이덩굴 식물을 자신의 몸과 엮어낸 방식으로 제작한 '조용한 남자'는 마치 인물화와 풍경화가 한 작품에 섞여 있는 듯하다. 생물학적인 상식에 맞서는 오브제임과 동시에 자연과 문화가 묘하게 어우러지는 화해의 장을 기괴하게 보여준다.
입속에서 말풍선이 터져나온 '다변증'도 "예술가의 오만한 태도의 비평, 예술에 관한 권위주의적인 담론"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생각을 드러낸다.
질 바비에는 한국을 내한하여 자신의 작품을 바라볼 한국 관람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한국 관람객들에게 꼭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제 작품을 예술이라는 넓은 세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예술작품이 있고 무수한 전시가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 역시 그 중 하나의 버전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주변의 세상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도 우리가 만들 수 있었던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버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느끼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 전시는 질 바비에의 지난 30여 년간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고 매일 생성, 사멸하고 다시 증식하는 우리의 생태계에 대한 우화를 보여줄 것이다. 독특하면서도 삶을 비판적이고 공격적으로 꼬집는 질 바비에의 작품은 7월 31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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