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소위 ‘먹방(먹는 방송)’이 유행하고 있다. 물론 먹방은 지금도 불티나게 성행중이다. 하지만 먹방이 방송가의 키워드로 자리 잡은 후 온갖 먹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범람하여 시청자들은 조금씩 등을 돌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먹방이 드디어 침체기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우려가 지배적인 가운데 유일하게 먹방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 프로그램은 바로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이다. <한국인의 밥상>이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무너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2011년부터 햇수로 6년째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구수한 ‘국민 아버지’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국민 아버지’이자 ‘국민배우’, 최불암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지역의 대표음식은 지리적 환경에 사람들의 숨결과 지혜가 어우러져 역사가 되고 문화로 응축된다. <한국인의 밥상>은 각 지역 대표음식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역사, 그리고 음식문화 등을 아름다운 영상과 깊이 있는 취재를 통해 매주 한편의 ‘푸드멘터리’로 꾸며내 폭 넓은 사랑을 꾸준히 받는 먹방계의 ‘스테디셀러’다. 뿐만 아니라 음식의 원류의 맛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긴 생명력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요리방식과 맛도 변하지만 옛 방식을 고집스럽게 이어오며 맛을 지켜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국인의 밥상>에는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불암과 <한국인의 밥상>이 찰떡궁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인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최불암을 가리켜 시골사람들은 ‘수사반장의 박반장’ 혹은 ‘전원일기의 김회장’이 왔다며 쌍수 들고 격하게 환영하고 얼싸 안는다.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향토적이고 구수한 이 풍경을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은 어렵지 않게 만들어낸다.
그렇게 5년이 넘도록 이어온 <한국인의 밥상>은 여전히 평균 시청률 13~14%를 기록하며 장수 먹방 프로그램으로 그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고 있다. 최불암은 “내가 하면 뭐든 오래하는 것 같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운명인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은 나보고 좋은 것만 먹고 다닌다고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애로사항도 있다. 긴 시간을 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허리병도 생겼다. 또 조미료가 하나도 안 들어가거나 입에 안 맞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고 애쓰기도 한다”고 장수 프로그램 진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최불암은 그의 인기만큼이나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국민 배우’, ‘국민 아버지’, ‘양촌리 김회장’, ‘수사반장’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최불암이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수식어는 따로 있다. 바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이다. 그는 작년에 후원회장 30년을 맞이하기도 했다. 배우로서의 입지가 워낙 단단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이라는 타이틀로 불릴 기회가 그리 많진 않았지만 최불암은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갔다. 시간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81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서울지역 후원회장을 맡기 시작하였고, 1985년부터는 전국후원회장을 역임하여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를 위해 두 팔 걷고 봉사를 이어왔다.
그는 그동안 국내 나눔 문화가 많이 활성화 된 것에 대해 “기업에 사회공헌팀이 생기고 개인들도 기부하고 후원하는 문화가 많이 퍼졌다. 과거에는 기부를 하면 돈이 투명하게 쓰이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난 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우리처럼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이 앞에 나서서 나눔을 독려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집사람도 청각장애인을 돕는 사랑의 달팽이 회장을 맡고 있고,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김혜자도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수십 년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그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모두가 다 아는 것처럼 최불암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배우이다. 그는 50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연기를 하면서 무수히 많은 작품에 출연하였고 그중에서도 대표작은 단연 <전원일기>다. 최불암은 <전원일기>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만 서른아홉이었을 거다. 마흔 살에 시작해서 23년 간 했다. 내가 마흔 살에 예순다섯 살 어르신 역할을 맡았다. 워낙 노역이 내 주특기다”라며 시청자들에게 따스함과 편안함을 선사했던 그때 그 시절을 추억했다. 이어 “어머니가 굉장히 혜안이 있으셨다. 연기한다고 하니 요만큼도 말리지 않았다. 허나 같이 살던 외할아버지께서는 3대를 말아먹는 광대 짓을 한다고 진노하셨다. 외할아버지가 평생을 피리를 부셨기 때문에 광대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가 이렇게 바뀌어 그 광대가 각광받는 때에 내가 연기를 시작했으니 운이 얼마나 좋은가”라고 50년이라는 긴 연기생활의 소감을 밝혔다.
최불암, 그는 1940년생으로 올해 77살이 되었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그는 여전히 구수함과 정겨움으로 무장한 채 팔도 여행을 다니며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다. 제일 좋은 맛은 손맛이 아닌, 인정의 맛이라는 그는 오늘도 한국인의 밥상을 촬영하며 인생의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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