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가혹한 현실이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올해 여든한 살의 백발 감독이 노래한다. 영원한 현역 우디 앨런 감독의 46번째 장편 극영화 <카페 소사이어티>가 지난 9월 14일 개봉했다. 이 영화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이 늘 그랬듯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두루 받고 있는 한편 “우디 앨런 최근작 중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답다(The Playlist)”는 찬사까지 받고 있다.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는 꿈결 같은 로맨스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96분간의 러닝타임이 흐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는 단잠 속에서 기억이 날듯 말듯 희미한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1930년대 미국, 화려했던 사교계를 일컫는 ‘카페 소사이어티’를 배경으로 뉴욕 남자 바비와 할리우드 여자 보니가 나눈 잊지 못할 로맨스는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낭만적인 시간을 선물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한다. 사랑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바비와 보니의 로맨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채 우리를 낭만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스토리라인의 중심축인 바비와 보니의 로맨스는 특히 더 그렇다. “인생은 코미디죠. 가학적인 코미디 작가가 쓴 작품이지만”이라고 했던 바비의 대사처럼 <카페 소사이어티>는 어쩌면 아름답기보단 가학적인 희극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바비는 성공을 꿈꾸며 뉴욕을 떠나 할리우드에 입성해 첫눈에 반한 보니와 달콤한 한때를 보내고 미래를 약속하지만, 사실 보니는 자신의 삼촌이 1년째 만남을 이어가던 내연녀였던 것.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한 할리우드의 여자는 ‘삼촌의 여자’가 되었고 뉴욕에 돌아온 바비는 후에 또 다른 베로니카를 만나 결혼한다. 삼촌과 결혼한 첫사랑 보니가 ‘베로니카’를 줄인 애칭이었으므로, 바비는 할리우드의 베로니카에게 버림을 받고 뉴욕의 베로니카와 결혼을 하게 된 셈. 인생의 아이러니다. 시시콜콜한 농담 같은 상황이 현실이 된 상태로 바비와 보니는 뉴욕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재회한다. 할리우드의 청춘커플이 숙모와 조카로 만난 곳이 또 카페 소사이어티라는 ‘성인의 공간’이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만났을 때 역시 바비와 보니는 성인이었지만, 그들이 나눈 사랑은 청춘의 그것처럼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뜨거웠다. 이러한 연속된 아이러니 속에서 바비와 보니는 또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비록 보니가 뉴욕에 머물러 있는 아주 잠깐의 순간이지만 그들의 감정은 현재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화려한 속물의 세계에서 벗어나 할리우드의 그때로 돌아간다. “타버리면 어때요. 다 바스러져 없어질 텐데”라고 노래하는 가수 검정치마의 ‘Hollywood’라는 곡처럼 그들은 다시 한 번 치기어린 꿈속으로 빠져든다. 바비와 보니는 많은 시간이 흐르고 관계 또한 달라졌음에도 재회한 찰나의 순간에 그들의 감정을 복원한다. 숙모와 조카, 또 다른 베로니카가 곁에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말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 어른이기 때문에 바비와 보니는 인상적인 엔딩장면처럼 결국에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서로를 추억한다. 하지만 이렇게 제법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서로를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는 건 비극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가학적인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바비와 보니가 애초에 처음 만난 할리우드에서 어떠한 장애물 하나 없이 결혼에 성공했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까. 그럴 수도 있으나 나는 영화의 엔딩이 더 마음에 든다. 서로를 꿈꿀 수 있는 지금이 좋기 때문이다. 현실이 아닌 꿈의 세계는 영원하다. 그렇게 바비와 보니는 서로가 서로에게 한 폭의 낭만적인 꿈이 되었다. 이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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