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수 <메디아>가 오는 2월 24일부터 4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전 세계 무대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그리스 고전 <메디아>는 이번 공연에서도 티켓 오픈 직후 열렬한 반응을 얻고 있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당대 3대 비극 작가로 불리는 에우리피데스의 <메디아>는 주인공 ‘메디아’가 행복하게 살던 과거의 기억과 자신을 버린 남편 ‘이아손’에 대한 욕망이 치열하게 교차되며 결국 파국을 맞는 내용이다. 공연 내내 격정적인 심리 변화를 표현해야 하는 메디아 역은 이 작품을 여배우들에게 있어 필생의 도전작으로 만들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독보적인 존재감의 배우 이혜영이 가장 ‘메디아다운’ 메디아를 선보인다. 2012년 <헤다 가블러>, 2016년 <갈매기>로 연극배우로서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이혜영은 이번 무대에서 모든 것을 잃고 고립되어버린 한 여자의 절망적인 심경을 자신만의 에너지로 풀어낼 것이다.
메디아는 모든 걸 걸고 사랑한 남편 이아손이 크레온 왕의 딸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실감과 분노를 느낀다. 크레온은 복수를 할까 두려워 당장 이 땅을 떠날 것을 메디아에게 명하고, 이아손은 용서를 빌기는커녕 자신의 타당성을 주장하며 메디아의 분노를 질타한다. 이웃나라의 왕 아이게우스는 메디아를 동정하며 도움이 필요할 경우 신변의 보호를 약속한다. 드디어 메디아는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신화 속 인물 메디아의 심리를 과감하게 그려낸 에우리피데스의 고전은 헝가리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에 의해 동시대적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지난해 셰익스피어의 <겨울이야기>를 연출한 그는 고전 희곡을 오늘날의 무대에 맞게 완성도와 현대성을 갖춘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메디아에 대한 관객들의 공감이 관건”이라는 로버트 알폴디는 인간이라면 한번쯤 느낄 수 있는 끝없는 고립감과 공포, 분노에 초점을 맞춰 메디아를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릴 예정이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여자 그리고 그를 배신하고 권위자의 딸과 결혼을 하겠다는 남편, 복수심에 불타 결국 자신의 아이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 주인공. ‘왕’, 혹은 ‘공주’ 등의 단어를 생략한다면 마치 최근에 뉴스나 신문에서 접한 것 같은 이야기다. 메디아의 비극은 이처럼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다. 유일하게 믿었던 사랑에게는 배신당하고 이방인으로서 추방될 위기에 처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복수심으로 가득 찬 한 여자는 결국 친자살해라는 최악의 선택으로 내몰리게 된다. 연극 <메디아>는 이러한 참극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며, 한 개인의 분노 뿐 아니라 사회적 무관심 역시 섬뜩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원작에 비해 그 역할이 더욱 확대된 ‘코러스’는 공연 전반에 걸쳐 등장함으로써, 메디아의 심경에 동조하다가도 때로는 그를 비난하고 외면하기도 한다. 가족, 형제, 친척, 친구, 동료로 모든 사건을 함께하는 코러스는 비난과 방관으로 누군가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 이번 공연은 막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이 있었지만, 무관심 속에 이미 비일비재해진 처참한 사건들에 대한 유의미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질 것이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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