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Heart)다. 심플하게 선이 분명한 하트다. 그렇지만 하트가 모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동(動)적이고 충분히 추상적이다. 붉은색의 하트 그리고 더 큰 이미지의 군상은 첫 눈에 강렬하게 각인되는 동시에 아름다운 중독성을 띄게 된다. 이것이 김세정 작가의 하트다. 2009년.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 탑 갤러리 호텔 아트페어(ATAP)에 그녀의 하트가 전시되기 전까지 하트는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기호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김세정 작가의 하트가 ATAP에 전개된 이후, 대중은 열광했다. 1000장이 넘는 하트의 팸플릿이 뿌려질 때 갤러리가, 호텔이, 백화점이 예술적 콜라보레이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김세정 작가에게 하트는 절대자인 신(He)이 만들어낸 예술(Art), 그리하여 마침내 생명이 되었다.
Heart 1. 시간을 아우르는 생명의 영속성을 향해
김세정 작가는 화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철학자다. 경북예술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효성여자대학교(현.대구가톨릭대학교) 미술학과에서 드로잉, 회화, 동양화, 서양화, 조소, 디자인을 섭렵하며 한국여류화가 2세대를 이끌던 그가 서울미술협회 부이사장이 되어 우리 화단을 이끌었다. 개인전 23회에 달하는 열정적인 작품 활동으로 화단의 작가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던 그이가 최근에는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했다. 미술가의 글쓰기는 어떤 관계일까. 선뜻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울 듯 싶었으나 돌아온 답은 명쾌했다. “그림 자체가 철학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라는 부제도 생각해 두었습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 하트와 더불어 행복하라. 심장(heart)이 사랑이고 사랑이 핏길이고 그 공간에는 음악성마저 깃들어있어 춤추듯 이미지가 살아 숨 쉰다. 하느님이 만든 생명체를 이야기하는 김세정 작가의 작품 세계에는 사랑과 공유, 공감의 사회, 세상 모든 소외된 자들이 더불어 꿈꾸는 행복한 세상이 그려진다. “폭넓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놓친 게 많습니다. 보이는 것 위주로 믿었던 인식, 보지 않으면 확신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역사를 다시 공부했고 그림을 새로이 바라봤다. 그의 그림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관통한다. 시간을 가다듬어 오래된 미래를 그려낸다.
Heart 2. 한국 미술은 고아한 예술혼 갖추고 있어
김세정 작가는 늘 그림과 연관된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삶이 미술이고 미술이 삶인 그에게는 마치 조선 백자의 고아한 기품이 흐르는 듯 했다. 고고한 정취가 흐르는 검박한 도자기마냥 우리 문화를 향한 순수한 혈액형이 감지되기도 한다. 작품 속에는 지구상에 유일한 단일민족국가, 한국의 빛깔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구체적이며, 섞여있지 않고 일관되며 통일감으로 일축되어 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김세정 작가의 작품은 화려한 그림은 아니다. 그러나 빛이 색을 투영한 그의 작품은 더욱 찬란하고 화려해졌다. 지금이야, K-pop이니 한류니 하는 기류가 흔해졌지만 김세정 작가는 사실상 20여 년 전부터 한국문화를 알리는 민간 홍보대사였다. 일찍이 미국에 거주하는 영주민들에게 한미수교 기념으로 600여 점의 우리 작품을 전달했던 김세정 작가는 미국 한인사회에 한국적 예술혼을 일깨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난 이른바 1세대 작가다. 암울했던 1세대 작가들의 화풍을 탈피하고 화이트, 레드, 옐로우 계열의 단색의 밝은 색상을 발현하는 데에도 서슴이 없었다. 어두운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 밝은 세상으로 감성을 취하는 내면세계는 작품 세계 전반에 온전히 드러난다.
Heart 3. 나의 하트는 즐겁고 행복한 땅따먹기
인간이 가장 듣기 좋은 목소리의 주파수, 200에서 250헤르츠(Hertz)는 김세정 작가를 두고 이르는 말일 듯 싶었다. 인터뷰 내내 김세정 작가의 음성은 맑고 경쾌한 하이톤을 유지하면서 청명한 호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래서일까. 김세정 작가를 닮은 작품 속의 하트는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단아한 기품을 나타낸다. 오래된 듯한, 그러나 선이 분명한, 그래서 이미지의 형상이 뚜렷하다는 점. 그것은 오직 ‘김세정 하트’ 만의 심호흡이다. 그의 시선은 자세하다. 하트의 두 봉우리를 45도 각도로 고이 접어 여성의 젖가슴으로, 하트의 반을 접어 자신과 비어있는 상대의 마음자리를 표현한다. 인체의 곳곳에 숨겨진 하트를 절묘히 찾아내는 숨은 그림찾기-이 행복한 순간들은 모든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희망찬 충만을 선사한다. “결국은 마음자리 찾기입니다. 형상을 넘어선 생각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좋은 마음이 나쁜 마음 빼앗아먹는 ‘기분 좋은 땅따먹기’, 마치 어린 시절 골목 모퉁이에서 해 저무는 줄 모르던 땅따먹기의 추억처럼 김세정 작가의 하트는 감사이자 기쁨이다. 마음 안의 자리가 온통 사랑과 평화로 가득해지는 이 유쾌한 작업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유희에 가깝다. 자신도 즐겁지만 보는 이도 즐거워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꽃으로부터 하트, 무지개에 이르는 작품사에서 살펴지는 아름다움은 그의 지나온 시간을 표현하는 자취다. “결국, 그림은 좋은 인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몸은 마음을 들고 가는 그릇이죠. 어떤 영혼을 들고 가느냐를 보여주는 일이 그림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하트는 결국 모성애에 지향점을 둔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머니의 따뜻한 품, 그 사랑 안에서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Heart 4. 신이 허락한 재능, 더불어 나누며 살고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예술적 원동력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린다. 자신이 모든 이에게 평화를 나눠주는 도구로 쓰임을 기쁘게 생각하게 해 준 성당은 하트의 근원에 심취하게 된 원천이다. “인생이 밀림 속의 달팽이처럼 살아가는 것이라면 고통도 즐거움으로 바꿔서 돌려줘야 하는 것임을 알게 해 준 곳은 성당이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고 공유하는 길, 그것이 바로 제 작품입니다.” ‘함께’의 중요함을 작품 속에 녹여온 김세정 작가에게 좋은 화가란 어떤 의미일까. “뛰어난 화가는 창조적 국가의 재원(財源)입니다. 정치·경제인들이 화가들과 생각을 공유하다보면 창조적인 발상을 얻게 됩니다. 화가는 과학의 숙주라고 하지 않습니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러했지요.” 그러므로 김세정 작가는 작품으로써 신세계를 창조하고, 작품을 통해 철학하는 화가인 것이다. “내 마음이 감사로 돌아서니 모든 게 편안해지더군요. 하트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행복도 이런 게 아닐까요?”
2013년 삼성생명 연하장 7만 5천장에는 김세정 작가의 하트가 새겨졌다. 7만 5천명이 하트의 사랑과 평화, 행복, 생명을 공유했다. 하트만 바라보면 그저 힘이 나고 행복해진다는 김세정 작가. 오늘도 그의 붓끝은 또 하나의 하트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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