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춤협회 채상묵 이사장의 기사를 작성하는 날, 공교롭게 그동안 앓던 어금니가 내 몸에서 빠져 나왔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수 십 년간 자리를 지켰던 나의 어금니를 생각한다. 난, 아니 어금니는, 그동안 어떤 음식을 씹어 삼켰나. 기억의 연장선상을 긋고 지난날을 추억한다. 최소한 나의 어금니는 현재의 내 육신에 어떤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리라.
한국 전통춤 중, 호남류의 승무(僧舞)와 살풀이춤의 대가로 불리며, 전통춤 계승과 후학양성, 저변확대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한국전통춤협회 채상묵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한국적 정서를 가진 전통춤의 관심과 애정, 공연장으로의 발길을 주문했다. 전통이란 정서의 어금니를 갖기도 전에, 오늘을 사는 우리는,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으로 어금니를 이미 잃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말이다.
<꽃과 나비> 소년의 가슴에 살포시
전통춤에 빠져들어 예인(藝人)의 삶 50년 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아름다운 반세기, 무용가 채상묵》에서 그는 춤과 만난 인연을 ‘운명적 만남’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해 조선반도를 선혈이 붉게 물들이던 그해. 전주사범부속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소년 채상묵에게 지금은 고인이 된 한국발레계의 대부 임성남 선생은 그의 가슴에 불멸하는 <꽃과 나비>를 안겼다. 작고 여린 소년이 공연한 학예회 작품 꽃과 나비는 지금도 만개 중이고 꿀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7월 창립과 함께 설립된 ‘한국전통춤협회’의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채상묵 이사장은 전통춤의 저변확대, 학술대회, 협회의 정기공연 등의 활성화를 위해 노고 중이다. 또한 지금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전통예술원 강의와, 국립국악원, 국립극장의 문화학교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 서울예술단 무용감독, 우봉이매방춤보존회 회장을 역임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64년 대학에 진학 후, 태평무 예능보유자인 강신영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춤에 대한 갈증을 풀고자 했지만 당시 강신영 선생의 바쁜 활동으로 충분한 수혜를 받지 못하다 1974년 그의 나이 31세에 당시 부산에서 활동하던 승무의 대명사인 우봉 이매방 선생을 서울로 직접 모시며 학습에 빠져들었다. 그후 호남류의 승무, 살풀이춤 등을 포함한 전분야를 40년 가까이 고루 섭렵하였다. 전통춤과 창작춤의 한계를 넘나들며 섬세하고 강렬하게 표출하며 매우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새로움에 도전하는 위험을 안으며 시도해왔다. 전통이 갖는 민족성과 창작의 구도적 성향을 접목하여 예술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모색하며 30여편의 창작춤을 발표하여 실험적 춤 언어 개발을 선도한다는 평을 듣는 안무가이자 춤꾼으로서 한국 무용계의 중추적 맥을 이어가고 있다. 채상묵 이사장은 후학들에게도 “한국적인 성향과 우리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데 요즘 젊은 춤꾼들은 그러한 노력이 부족한듯하여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하며 “우리 전통춤은 외형적 형태미도 중요하지만 감성을 표출하며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춤이라서 전혀 진부하지 않고 우리 민족만이 표현할 수 있는 춤이다. 소외당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갑작스러운 외국문화의 유입으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직을 수락한 배경 역시 전통춤에 내재된 정신적 근본과 ‘질서와 절차’를 의미하는 예도(禮道) 정신의 사유적 체계를 전승체계의 기본으로 삼아 이를 바탕으로 사회교육, 홍보진흥, 학술연구, 인재양성, 공연기획, 국제교류 등을 통해 한국 전통춤의 대중성과 예술성, 더 나아가 민족적 자긍심을 고양시키기 위한 국제화의 물꼬를 트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브라질의 삼바, 쿠바의 차차차·맘보·룸바, 독일의 왈츠, 아르헨티나의 탱고, 스페인의 살사, 가까운 일본의 가부키의 몸동작과 음운은 떠올릴 수 있지만, 우리 전통춤인 승무, 태평무, 살풀이 등 비교적 많이 알려진 것임에도 쉽게 상상치도 못하는 건 분명 어딘가에 문제가 있음이다. 채상묵 이사장은 “11월 12일부터 프랑스와 벨기에, 포루투갈에 공연이 있어 출국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전통춤을 본 외국인들은 한국 전통춤에 매료되어 예술의 경지를 넘어 신비롭게 생각하고 많은 관심과 감탄을 합니다. 이번 공연도 기대가 되는 데 승무 말고도 많은 춤을 보여 주면 좋은데 그것만 추라고 해 아쉽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채 이사장은 그동안 수많은 공연과 창작, 안무, 국외공연을 통해 한국 전통춤을 알리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채 이사장은 그의 50년 활동을 기념하는 저서에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애정을 갖는 것은 대나무입니다. 눈부신 화려함도, 진한 향기도 없지만 비바람과 눈보라를 겪으면서도 푸름을 잃지 않는 세한고절(歲寒孤節). 뿌리에서 잎사귀까지도 쓸모 있게 남겨지는 그런 모습으로 보이길 바라는 제 작은 바람도 함께 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서두에 말한 몇몇 사람이란 채상묵 이사장과 같은 몸과 정신의 어금니를 잃지 않기 위해 춤으로 시를 쓰고 시가 춤이 되는 대나무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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