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 이승엽이 은퇴했다. 1995년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한 이래로 23년 동안 삼성은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맹활약하며 국민에게 크나큰 기쁨과 희망을 안긴 그에게도 결국 은퇴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승엽은 지난달 3일 대구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최종전이 끝난 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눈물의 은퇴식을 가졌다. 주위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새롭게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박수칠 때 떠나기로 결심한 ‘대한민국의 자랑’ 이승엽의 은퇴식 현장과 23년간 만들어낸 그의 기념비적인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그의 야구인생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자리를 빼곡하게 채운 2만 4,000여명의 관중의 환호 속에 은퇴식은 거행되었다. 이승엽은 고별사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삼성라이온즈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고 팀의 우승은 물론 은퇴식까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게 돼 정말 영광스럽다”면서 “프로야구선수로서 23년이라는 긴 세월을 뛰면서 기쁜 날도, 슬픈 날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모든 감정을 잊고 싶다”고 입을 뗐다.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묻는 외신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내가 먼저 물러나지 않으면 구단에서는 쉽사리 나에게 은퇴를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팀이 지난 두 시즌 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팀의 맏형으로서 많은 책임감을 느꼈다. 내가 은퇴함으로써 2군에서 1군만 바라보며 뛰는 선수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이번 은퇴 역시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승엽은 은퇴식에서 마지막으로 타석에 서며 배트를 잡았다. 그러자 마운드 위에서는 불빛으로 그린 공 모양이 등장했고, 팬들은 ‘홈런’을 연방 외쳤다. 그 후 이승엽은 큰 포즈로 힘껏 스윙을 했다. 불꽃은 터졌고, 그것이 국민타자의 마지막 스윙이었다. 이승엽은 그를 상징하는 백넘버 ‘36’이 적힌 유니폼 상의를 벗어 삼성라이온즈 김동환 대표이사에게 반납하였다. 마지막으로 함께 구슬땀을 흘린 삼성라이온즈 후배들은 이승엽을 높이 들어 올리며 헹가래를 쳤다. 그렇게 은퇴식은 막을 내렸다. 이승엽은 1994년 말 당시 고졸선수로는 파격대우인 1억5천200만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승엽은 당시만 해도 각광받는 투수유망주였다. 하지만 그는 팔꿈치에 문제가 생긴 것과 동시에 타격 소질을 단번에 간파한 우용득 감독의 판단으로 타자로 전향했다.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이승엽에게 ‘신의 한수’가 되었다. 이승엽은 데뷔해인 1995년 타율 0.285, 104안타, 13홈런, 73타점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이후로는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이듬해 3할 타자로 거듭난 그는 데뷔 3년차에 홈런 32개를 터뜨리며 홈런왕을 차지했다. 본격적으로 홈런 생산에 돌입한 이승엽은 1999년 한국 프로야구 최초 50홈런 시대를 열어젖혔다. 2001년과 2002년에도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쥔 그는 2003년 무려 56개 홈런을 기록하며 일본 프로야구 오 사다하루가 세운 한 시즌 최다홈런(55개)을 뛰어넘고 ‘아시아 홈런왕’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4년, 지바롯데의 4번 타자로 활약하기 위해 그는 정든 대구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적응이 덜 됐는지 첫해 성적은 이승엽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았다. 20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응을 마친 2005년에 117경기에 나서 30홈런 82타점을 기록하며 팀을 일본시리즈로 이끌고, 일본시리즈에서 홈런 3개를 터뜨려 지바 롯데에 기어코 우승 트로피를 선물하였다. 이러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이승엽은 일본 최고 인기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을 맺고,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 활약하며 2006년 41홈런 108타점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 투수들의 집중견제와 함께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심각한 부진의 늪에 빠졌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일본에서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야구를 보는 눈이나 실력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야구를 대하는 태도도 프로답게 변했기 때문이다”라면서 “실패한 경험과 외국 생활은 평생 돈 주고도 사지 못할 경험이다. 그때가 있기에 지금까지 내가 야구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렇게 2012년에 친정팀 삼성라이온즈에 복귀한 이승엽은 2013년을 제외한 5시즌 동안 2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특히, 그가 복귀한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팀을 3년 연속 통합우승과 4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끌며 ‘삼성왕조’를 구축하는데 톡톡히 한몫을 했다. 이승엽은 KBO리그 개인 통산 1906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2를 비롯해 467홈런, 1498타점, 1355득점이라는 불세출의 기록을 남기며 현역 생활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그는 홈런과 타점, 득점, 2루타 부문에서 KBO 역대 1위에 이름을 남겼다. 이 부문 2위는 모두 이미 은퇴한 양준혁이고, 현역선수 중에서는 사실상 적수가 없어 당분간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써냈다는 평이다. ‘이승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도 홈런일 것이다. 한·일 통산 626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아시아 홈런왕이라는 수식어도 달고 있는 이승엽은 기어코 자신의 은퇴경기에서도 연타석 홈런을 쏘아 올리며 기나긴 야구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이날을 자축했다. 비록 이승엽은 야구장을 떠나지만 국민에게 큰 희망이 되어준 23년간의 야구인생은 평생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이승엽의 시대’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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