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1일 금호미술관에서, 한국근현대사의 조감도를 만날 수 있는 고성만 작가의 개인전 상상공생(想像共生, Imagined Symbiosis)전이 열린다. 고성만 작가가 강조한 공생의 개념은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공생이론을 차용한 것이다. 린 마굴리스는 생명체의 진화가 감염과 음식의 섭취 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전체를 얻는 ‘세포 내 공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비해 린 마굴리스의 ‘세포 내 공생’설은 마치 아웃사이더 같은 이론으로 출발했고, 고 작가는 강대국들이 만든 틀과 힘의 논리 안에서만 강요당하는 한반도의 상황이 ‘세포 내 공생’설의 모습과 닮았다고 말했다. 실제 전쟁 상황으로 치닫는 한반도의 정세 그리고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치상황의 안타까움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우리가 주인의식을 당당히 갖고 해결에 임해야 한다는 고성만 작가의 작업정신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기자가 처음 마주한 작품 ‘한국근대사’는 38선이 무섭게 그어져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뇌리 속 회화 DNA에는, 38선이 마치 한반도의 낙인처럼 한으로 스며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발통문(沙鉢通文)속에서 한국근대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 국가, 기관,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다. “시간의 조감도 혹은 역사의 조감도라고 볼 수 있겠죠. 수많은 인위적 모순이 점철된 시간.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공산주의 국가와 분단조국의 현실을 앞두고, 지금의 시간을 그림으로 그리지 않는다면 작가로서 직무유기가 아닐까요? 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데 정치적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지를, 21세기 국민으로서 풀어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2018년 현재, 분단이 사라진 행복한 모습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슬픈 현실이지만, 우리의 미래 이상향을 작품에 담고 싶었습니다.” 미국에서 오랜 이민 생활을 하고 돌아온 고성만 작가의 눈에는 분단과 전쟁위기 그리고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한국인의 현실이 매우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이런 아이러니의 한반도와 민족의 안타까움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우리가 주인의식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고 작가는 이번 전시의 정신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특별 제작한 한국장지와 한국적 재료를 사용하여 동서양의 합치로 풀어보고자 하는 바람을 작품에 담았다. 그래서 작품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공생을 염원하는 주술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잡귀와 사악한 기운을 멸하고 인간의 마음을 평안하게 안정시킨다고 하는 주홍색의 경면주사(鏡面朱砂)를 물감 대신 종종 사용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그리고 먹, 콩과 들기름을 조합하여 노랑과 황색계통 색을 냈는데 이는 한국적 정신성의 소재를 통한 회화 지평의 확장이라는 평이다.
155마일의 슬픈 DNA를 지우자 “여기 휴전선 155마일을 형상화한 작품을 보세요.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동굴로 피신한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는 잔인한 상징은 버섯구름이나 155마일 휴전선이 아닐까요. 그래서 155마일의 슬픈 기억이 DNA에 각인되지 말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흐릿하고 모호하게 그렸죠.” 고 작가의 마지막 작품은 고통 뒤에 정화(淨化)가 오듯, 수천 수만년간 한민족을 굽어보았던 북두칠성으로 귀결된다. 북두칠성은 우주의 내비게이션처럼 영겁의 시간동안 민족의 지표가 되어왔다. 분단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지고, 내편 네편 나뉘어졌지만, 모든 사람은 마침내 영혼의 안식처 북두칠성에서 재회한다. “우리는 이제 100년전의 이데올로기와 패러다임을 원치 않습니다. 이제 작품을 보는 시간동안만은 어느 파벌임을 떠나 마음껏 상상하고 공유해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서양미술이 들어올 때 일부만 수용되었기 때문에 다양성이 부족했지만, 미술에는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숭고, 당혹, 공포의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작품을 아름답지 않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결코 아름다운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성만 작가는 예술의 주술성을 복원하여 현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의 화풍은 형식적으로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전통적인 민간신앙의 주술성을 복원하여 현실의 문제를 치유하고자 한다. 주술적 염원과 작가적 정신이 만나, 어떻게 현대미술의 신선한 양식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지 지켜보자. 이양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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