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묵(打墨)이란 파격적인 예술행위를 통해 서예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며 ‘서단의 이단아’ 임을 자처했던 서예가 율산 리홍재 선생. 지난달 10일 그는 30년간 청춘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한 ‘율림서도원’을 마감하고 대구 봉산문화거리에 서원 ‘도심명산장(道心名山藏)’을 개원하며 새로운 예술혼을 펼칠 공간을 마련했다. ‘서예는 춤이요, 음악이요, 스포츠며 종교’라고 말하는 리홍재 선생은 도심명산장을 개원함과 동시에 ‘신비전(新秘展) 전시회를 개최하고 제2의 대동방서예중심시대 서막을 열었다.
1999년 10월 대구 봉산예술제에서 선보인‘ 타묵(打墨) 퍼포먼스’는 대한민국 서예계와 일반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은 체구로 한 자 한 자 열정을 쏟아 내던 예인의 붓놀림은 보는 이들을 전율케 했다. 50㎏에 가까운 붓을 항아리에 가득 담긴 먹물에 담아 마치 붓을 던지듯 써내려가는 일휘필지의 행위예술은 파격적이었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월드컵축구대회, 안동 국제춤페스티벌, 대구 동성로축제 등에 초청되어 많은 갈채를 받았다. 리홍재 선생은 그때를 회상하며 “처음에는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전통을 무시한다는 것이었지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지 못하면 죽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성된 글을 보여주는 기존 전시회 대신 붓이 움직이는 그 순간의 기운을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갇힌 서예’를 깨부수고 싶었던 것이죠. 나중에는 그런 제 작업을 ‘율산 스타일’이라고 하더군요.”라고 말했다. “서예의 최고 경지를 일컫는 말 가운데 ‘필가묵무(筆歌墨舞)’라는 말이 있습니다.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출 만큼 심오한 수준을 뜻하지요. 음악을 아는 사람들이 고저장단 속에서 악보를 보듯 글씨 속에서 역동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음악이나 서예나 그 중심에는 마음이 있습니다만, 정성만 들였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한 정신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자신 스스로를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라 말하며 예술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므로, 서예나 음악이나 본질은 같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5학년 특별활동 시간에 붓을 처음 접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땅을 종이 삼고, 나뭇가지를 붓 삼아 독학으로 서예를 터득했다. 자아작고(自我作古), 자승자강(自乘者强)이란 성어를 좋아하는 리홍재 선생은 정작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1980년 최연소로 서울미술제 초대작가가 되었고, 같은 해 개인전을 열어 서예계를 놀라게 했다. 1982년에는 국선에 입선하는 영광도 안았다. 평생을 서예에 바쳤지만, 20대에는 잠시 방황도 했다. 그러나 감출 수 없는 본능으로 석 달 만에 다시 붓을 잡았고 이후 마치 미친 사람처럼 서예에 매달렸다. 2000년과 200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 심사위원과 한국미술협회 이사, 대구서예대전 심사위원, 매일서예대전 초대작가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제서예가협회 이사를 맡으며 서예를 위한 삶을 보내고 있다.
서원 도심명산장, 대동방서예중심의 시작이자 중심
대구 봉산문화거리는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곳으로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지역답게 그림, 도자기, 공예 등 다양한 미술축제를 만날 수 있다. 문화회관도 있어 연극, 음악회, 전시가 상시 열린다. 대구의 서예발전에 큰 이바지를 할 것으로 보이는 도심명산장은 396㎡(약 120평)의 면적을 가진 한옥으로 리홍재 선생이 오래전부터 준비한, 남은 예술혼을 태우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그는 “율림서도원은 나의 청춘을 바친 곳입니다. 3,0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했고 서예인생의 굴곡과 환희, 리홍재만의 격동기를 보낸 곳이라 막상 떠날 때는 서운했습니다. 이제 다시 이곳에서 서예사랑을 펼치고 격동적인 삶을 한 번 더 살아봐야지요.”라며 웃었다. 갤러리 입구부터 그가 직접 쓴 현판글씨를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은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이다. 마당에는 작은 연못과 정원이 있고 한옥 뒤의 산들과 하늘은 도심명산장을 안고 있다. 본채와 연결된 사랑채 갤러리와 좌측 별채에는 율산 선생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있다. 천장이 낮은 아담한 방들은 옛날 한옥 형태를 그대로 살려 갤러리의 멋스러움을 더 한다. 본채 외관이 모두 통유리로 설치되어 있어 별채나 마당에서도 담소를 나누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을 표현하는 것이 서예의 본질리홍재 선생은 도심명산장이 문을 연 지난달 10일부터 같은 달 27일까지 개인전을 개최했다. ‘신비전(新 +Vision)’이라 명명된 이번 전시회에서는 약 6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됐다. 일반 서예작품과 함께 복숭아, 포도, 앵두 등 각종 과일의 씨 또는 석수어(石首魚)라고도 불리는 조기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이석(耳石)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전통 서예에서 다루지 않던 소재를 이용한 그는 ‘무용지용(無用之用 : 언뜻 보기에 쓸모없는 것이 오히려 큰 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는 “전시회의 이름을 신비전이라고 붙였습니다. 새로운 비전이라는 뜻입니다. 또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평소에도 제자들에게 ‘스스로 개척하면 얻는 게 많다’ ‘네 것을 만들어라’고 늘 강조합니다. 재주꾼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끝없는 도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곳을 단순한 갤러리를 넘어서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대동방서예중심시대의 시작이자 그 중심에 도심명산장이 있다. 서예가 대중문화로 발전할 수 있는 학당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 소그룹 단위의 강의와 서예발전, 서예인구 저변확대를 위해 늘 개방하고 공부하며 토론하는 장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도심명산장 시대를 맞아 작품 양식에서 새롭게 추구하는 핵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정신이다. 언뜻 쓸모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큰 구실을 한다는 의미인데 장자(莊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나오는 말이다. 무용지용의 입장에서 쓸데없이 버리는 것을 활용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자 한다. 이번 신기전 작품이 그런 시도다.”라고 말했다. 이어 “35년 서예인생에 있어 노래하든 술 마시든 모든 것을 서예와 귀결시켜 생각해 왔다. 모든 것이 서예적 관심과 열정으로 치환되었다. 창작할 때는 자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람, 물, 하늘, 구름, 나무, 돌, 불, 번개, 무지개 등 그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그 속에서 나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티끌 하나도 소중하다. 자연 속에서 얻은 느낌을 문자로 표현해 내는 것이 서예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리홍재 선생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지만 씨알의 생명전과 타묵, 타점을 통해 얻어지는 작품이 이어질 듯하다. 문자의 개념도 떠나고, 고전 법첩의 한계도 내려놓고 붓을 들고 즐기면서 작품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창작하는 데 방점을 둘 예정이다. 다섯 가지 서체를 한 몸에 집어넣은 글씨를 구상하고 있다. 이런 융합체로 작품 창작을 해 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