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거부할 수 있는가. 뮤지컬 <더데빌>은 이 도발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은 햄릿과 함께 문제적 인물의 쌍두마차로 늘 거론되는 파우스트를 전면에 내세운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서 쓴 희곡인 <파우스트>의 문제적 인물인 파우스트를 뮤지컬 무대에 끌고 온 것이다. 뮤지컬 <더데빌>은 낯설고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익숙하고 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파우스트’라는 낯익은 인물이 등장하거니와 파우스트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뚜렷한 메타포가 있는 전형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더데빌>은 빛을 상징하는 X-White와 어둠을 상징하는 X-Black 그리고 마음속에 내재된 욕망과 쾌락의 유혹 앞에서 갈등하는 인간 파우스트, 선의 의지를 나타내는 그레첸까지 뚜렷한 색깔을 갖고 있는 네 명의 캐릭터가 선과 악, 빛과 어둠을 표현한다. 파우스트는 월 스트리트의 전도유망한 주식 브로커다. 그러나 주가가 대폭락한 블랙 먼데이 이후 모든 게 뒤바뀌게 된다.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빠진 파우스트를 두고 X-White와 X-Black은 내기를 벌인다. X-Black은 파우스트에게 먼저 접근하여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그레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X-Black의 치명적인 제안을 받아들이고 점차 그에게 잠식되어 간다. 파우스트가 타락할수록 그레첸의 심신은 피폐해져만 간다. 마지막 선의 의지이자 파우스트의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그레첸마저 외면하려 하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보며 X-Black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지만 X-White는 아직 끝이 아니라 말한다. 원작 <파우스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더데빌>의 파우스트 역시 악마와의 계약을 단행한다. X-Black은 점점 타락해가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X-White와 X-Black의 내기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 않는다. 빛이 모두 사라진 어둠은 없기 때문이다. 빛이 강할 때 어둠은 사라지고 어둠이 깊으면 빛이 잠든다. 선한 인간은 어둠을 오래 견디지 못하여 결국 빛을 향한다. ‘당신은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거부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진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어떤 인간일지라도 내면의 빛과 어둠은 공존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면서 어둠이 깊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그 순간에 인간은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결국 그 충동을 넘어 다시 선한 길을 택하는 것 또한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뮤지컬 <더데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더데빌>의 이야기는 배우들의 열연과 록 사운드와 클래식 선율을 넘나드는 음악으로 관객의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음악이 곧 작품의 주제가 되는 <더데빌>은 음악극인 뮤지컬의 본질에 가장 충실하면서, 그 안에 현대인의 고민까지 훌륭히 담아냈다. 많은 관객들이 왜 뮤지컬 <더데빌>에 열광하는지 한 번의 관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더데빌>의 매력에 빠질 시간은 120분이면 충분하다. 공연은 11월 7일부터 내년 3월 1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계속된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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