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너머에 있는 비가시적인 세계의 실상을 목도하는 전시가 열린다.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크리스 조던의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 전시가 성곡미술관에서 개최된다. 크리스 조던은 사진과 개념미술, 영화와 비디오아트 등 장르를 넘나들며 현대세계의 주요 담론과 이슈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밀레니엄 이후 전 세계 공통 과제라 할 수 있는 환경과 기후문제는 그의 작품에서 전경과 배경을 이루며 현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숙고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분명한 주제와 익숙한 영상언어로 많은 관객의 공감을 이끄는 그의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크리스 조던의 작품 세계를 요약하면 ‘멂과 가까움’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멀리서 언뜻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미지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이미지들이 쌓이고 부딪히며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크리스 조던은 마치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이미지들을 엮어서 분명한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이는 디지털 사상가 빌렘 플루셔가 언급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 너머에 있는 텍스트를 사유하게 한다. 이를 위해 대중적으로 친숙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등의 명화와 현대 대중 매체의 상징코드들을 차용한다. 친화력이 높은 이미지를 통해 ‘생태학적 상상력’을 불어넣는 작가의 대표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 조던은 대학에서 문학과 법학을 전공하며 사진작가로서 흔치 않은 행보를 걸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은 문명에 대한 통찰과 세계 문화의 흐름을 바라보는 직관력이 돋보인다. 작업 과정에서 리서치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는 예술가로서의 미덕인 장인정신이 발휘된다. 끝없는 반복 작업을 거쳐야 하나의 작품이 겨우 완성된다. 작가는 지난한 프로세스를 통해 현대사회의 쟁점들을 낱낱이 드러낸다. 또한 미드웨이 섬에서는 마치 인류학자처럼 ‘알바트로스’를 바라본다. 바다의 오염으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알바트로스를 애도하며, 죽은 알바트로스를 촬영할 때는 ‘예’를 갖추어 촬영하게 된다. 생태 공동체에서 인간이 뭇 생명체에게 준 큰 고통을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며 눈물짓기도 한다. 생명에 대한 공감은 슬프고 아름다운 장편, <알바트로스>를 탄생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대표작품과 함께 <알바트로스>가 전시장에서 특별 상영된다. 결국 크리스 조던의 메시지는 현대사회의 위기를 드러내는 것보다, 개별적인 삶의 가능성과 특이성을 살리는 것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생태계는 상보적일 수밖에 없고,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각각의 삶의 자리를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작가는 ‘슈마바’ 숲에 머물며 숲의 신령스러운 아름다움에 깊이 경도되었다.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다시 숲은 한 그루 나무에서 시작되듯 둥글게 순환하는 생태계의 경이로운 질서를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현대인에게 가장 친숙한 매체인 사진은 디지털 혁명의 물결 속에서 그 기술이 최고봉에 올랐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보내고, 받으며 문자보다 사진이미지로 더 많이 소통하고 표현한다. 하지만 사진은 그 뛰어난 재현 기능을 말미암아, 겉은 잘 보이지만 그 속은 좀처럼 헤아리기 어려운 역설을 낳기도 한다. 많은 이미지들이 생산되지만, 무엇을 어떻게 봐야할지 이미지를 해독하기란 쉽지 않다. 크리스 조던은 사진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에 개입하고, 특별히 비가시적인 세계에 빠르게 반응한다. 그는 누구나 쉽게 재현할 수 있는 사진으로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세계의 실상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는 사진 너머의 세계를 건드려 충격을 주기도 하고 각성하게도 한다. 크리스 조던의 사진철학이 디지털시대에 특별히 부합하는 이유도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사진매체를 통해 동시대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에 공감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 전시는 지난 2월 22일 시작돼 오는 5월 5일까지 계속된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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