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개발 및 신진 작가 양성을 위한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 최종 선정작 <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하 뮤지컬 <HOPE>)이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다. <HOPE>는 신진 크리에이터 강남 작가와 김효은 작곡가의 데뷔작으로 카프카 유작 반환 소송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하지만 현대 문학 거장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재판이라는 사건의 큰 틀만 따왔을 뿐 캐릭터의 서사나 배경은 모두 새롭게 재구성했다. 실제 재판이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호프 중 누가 원고 소유의 정당성을 갖고 있느냐의 관점이라면 뮤지컬 <HOPE>는 원고가 대체 무엇이길래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호프가 원고를 지켜왔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호프가 어떻게 원고를 만나게 됐는지, 원고 때문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결국 원고가 호프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됐는지를 그리며 호프의 전 생애를 심도 있게 조명한다. 이처럼 탄탄한 구성의 스토리를 자랑하는 <HOPE>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차분하지만 힘 있게 끌고 간다. 2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적 역사와 극한에 몰린 캐릭터 등을 자극적이지 않게 풀어냈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1월 초연 이후 평단과 관객들은 입을 모아 창작 초연,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높은 완성도에 호평을 쏟아냈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베르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글을 쓰는 요제프의 재능을 동경한다. 요제프는 자신의 원고를 태워달라는 말을 남긴 채 요절하고 베르트는 요제프의 재능을 지키기 위해 그의 남은 원고를 소중히 보관한다.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며 시작된 2차 세계대전. 베르트는 자신의 연인 마리에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요제프의 원고를 넘기고 떠난다. 마리는 피난 속에서도 베르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원고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마리의 딸 호프는 원고만 바라보는 엄마의 곁과 총성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호프 앞에 나타난 카델. 그는 호프의 인생에 있어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중년이 된 호프 앞에 다시 놓인 원고. 에바 호프에게 원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뮤지컬 <HOPE>는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스토리와 캐릭터를 재구성해 특유의 독창성을 완성한다. 평생 원고만을 지켜온 에바 호프와 요제프 클라인의 원고를 의인화한 독창적인 캐릭터 K를 비롯해 과거에는 호프의 엄마였던 마리, 요제프의 친구였던 베르트, 전쟁을 피해 도망쳐온 난민 카델 등 인물들이 현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분해 과거와 현재의 호프에게 영향을 미치며 스토리의 풍성함을 더한다. 타이틀롤인 호프는 이 동네의 미친 여자라고 불리는 78세의 노파이자 30년째 이어지는 재판에도 굴하지 않고 원고를 지키는 인물이다. <HOPE>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드라마 구성에 맞춰 배우들은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 하지만 호프는 K와 함께 극 중 유일하게 과거와 현재 모두 변함없이 한 인물을 맡아 이들의 전 생애를 연기한다. 지난해 영화와 공연계 최고의 키워드는 단연 ‘여성’이었다. 여성이 서사의 중심이거나 여성의 현실을 담은 작품들이 연이어 소개된 가운데 <HOPE> 역시 78세 여성 호프를 서사의 중심에 두었다. 그리하여 느리지만 천천히 성장하면서 주체적인 여성 서사를 완성해내며 여성 서사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갈망을 채웠다는 평이다. 지독하게 인생을 지켜낸 78세 노파의 삶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뮤지컬 <HOPE>는 3월 28일 개막해 오는 5월 26일까지 계속된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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