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경관과 명소를 소재로 그린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는 고려시대와 조선 초·중기에 실용을 목적으로 그려졌다. 실경산수화는 그 후에 나온 진경산수화 발전에 바탕이 되었다. 지난 6월 26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갤러리 라메르 1관에서 <유흥수 개인전>이 성황리에 열렸다. 작가 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 초기부터 고집스럽게 실경산수화만을 그려온 유흥수 화백은 친근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개성 있는 작품으로 탄생시키며 평단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관념적인 전통 산수화 양식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낸 유흥수 화백을 만나 그의 작품을 감상했다.
유흥수 화백은 대한민국 미술 명문인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그런데 전공이 응용미술 공예다. “저는 가족을 위해 미술이 아닌 사업으로 제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도 마음속에서 쉽게 멀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화였습니다. 도자기를 전공했지만 늘 한국화에 마음이 가있었고,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커지기만 했습니다.” 유 화백은 중진 한국화가 이자 전 한성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인 정하경 교수와의 인연을 계기로 실경산수화를 익혔다. 실경산수화를 정하경 교수로부터 배운 뒤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졌고, 물 만난 고기처럼 대한민국 화단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199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다섯 번의 입선에 이어 2000년에는 특선을 수상하며 유 화백만의 작품세계를 인정받았다. 그리하여 국립 현대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이외에도 2회의 개인전과 95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홍현회, 서초미술협회 회원으로 있으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 개인전으로 칠순을 기념하다 “요즘에는 색깔이 난무합니다. 무엇이든 화려합니다. 그런데 저는 완전히 반대 아니겠습니까. 사실 개인전을 열면서 제 작품이 관객 여러분에게 잘 어필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검은색 하나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쉬운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죠. 제가 올해 칠순이 됐습니다. 제 아내가 칠순이 된 저에게 평생 기억에 남는 선물을 주고 싶어 했는데, 이번 전시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마음을 다시금 가다듬고 전시를 천천히 준비하여 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림을 구경하러 들어온 사람마다 한 작품 한 작품씩 마음껏 성찰하고 갔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는데 저는 그 점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유흥수 개인전>에서 선보인 유흥수 화백의 실경산수화는 전통적인 관념의 산수를 넘어섰다는 평이다. 자연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통해 생동하는 생명력을 포착하여 생생한 현장감과 생동감을 그림에 담아냈다. 그의 작업은 그야말로 수묵 일변도지만 다양한 감정을 전달 받을 수 있다. 유흥수 화백이 추구하는 적묵법은 묵운과 먹색의 변화를 통해 동적인 미감을 표출하는 파묵법에 비해 안정적이면서도 그 깊이와 무게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먹은 겹치게 되면 탁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유 화백이 반복하여 덧칠하는 먹빛은 탁하기보다 담담하고도 차분한 운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유 화백은 오직 수묵만으로 화폭을 가득 채워나간다. 양평, 가평, 춘천 일대의 일상적인 전원 풍경은 유 화백의 붓을 통해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진다. 평범하고 낯이 익은 장면들은 바늘로 한 땀 한 땀을 떠 나아가듯 치밀하고 조심스럽게 유 화백의 감성에 녹아들어 탄성이 절로 나오는 실경산수화로 거듭난다. 이번 <유흥수 개인전>에서도 그 진가가 여실히 드러났다. 유흥수 화백이 구축한 일상의 풍경과 담백한 서정의 세계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화풍이 생소한 젊은 층과 외국인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캄캄하면서도 환한 그의 작품은 많은 관객들과 기분 좋은 소통을 나누며 유흥수 화백 자신에게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칠순 선물이 되었다.
힘이 닿을 때까지 작품 활동하겠다 유흥수 화백은 천생 화가로서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림을 통해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은 애시 당초 없는 듯하다. 그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실경산수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좋다고 털어놓았다. 앞으로도 그저 힘이 닿을 때까지 평온한 마음으로 작품 활동을 잇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저에게 그림이란 마음입니다. 마음을 표현하고자 그림을 그립니다. 그저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좋으니까 마음속으로부터 그림에 자연스레 몰두하게 됐습니다. 제가 마음속에 담은 생각들을 그림으로 자꾸만 표현하게 됩니다. 그림을 그림으로써 누군가와 대화를 하게 되고, 제 마음을 끄집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림은 저에게 둘도 없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려서 큰 상을 받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언론 매체에 대서특필되고 명예가 높아지는 것도 물론 좋지만 유흥수 화백은 오로지 그리는 그 자체가 좋으니까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거듭 밝히면서 동료 작가들에게 한마디 인사를 건넸다. “작가가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생각할 여지를 주는 그림을 그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려운 그림으로 대중들과 만나는 것도 좋겠지만, 일반 관객들이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려주었으면 합니다. 그림은 어렵지 않고 쉬워야합니다. 아울러 그림을 통해 공감할 수 있어야합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그게 바로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분하고 잔잔한 자연 풍경을 그린 유흥수 화백의 실경산수화를 보고 있노라면, 기자 역시 벅차오르는 커다란 감동과 공감이 가슴 한가득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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