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예술의 세계와 생활의 세계는 과연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이 소설의 제목에서 ‘달’은 예술의 극치를 의미하고, ‘6펜스’는 재산과 세속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단국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인 이주영 화백 역시 이 작품을 읽고 미술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정립했다. 그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록 돈을 벌지 못하고 유명해지지 않아도 자신의 이상을 찾아서 끊임없이 나아가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마치 이 소설의 달처럼 이상향을 찾아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내겠다는 것이다. 이주영 화백의 마음은 그 생각을 처음 했던 고등학교 1학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그림을 그려나가며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고 있는 이주영 화백을 만났다.
1941년생인 이주영 화백은 여전히 젊은 작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임을 몸소 입증해내며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혁신적이면서 실험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기자 역시 마치 크고 작은 음의 파동이 살아움직여 액자가 걸려있는 공간이 생명의 에너지로 다이나믹하게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다. 이처럼 이주영 화백으로 하여금 여전히 왕성한 창작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름 아닌 그림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노랫소리, 피아노, 바이올린, 하프 등 아름다운 선율은 물론 빗소리, 심장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작품 소재로 활용하였다. 아름답고 다양하면서도 분명한 소리를 어떻게 하면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어느새 그의 작품 테마로 자리매김하였다. 이후 이주영 화백은 고집스럽게 마치 캔버스 위에서 작곡을 하듯이 그림과 소리를 일치시키기 위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주영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현재 단국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있으며, 수많은 개인전과 국제전 및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프랑스 파리 구스타프 갤러리 등에 소장되어 있고, 대한 교과서 중학교 3학년 74-75면에 전면 수록되어 있다.
소리의 파장과 물결을 작품으로 표현 “화가마다 그 사람이 즐겨 찾는 테마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잔잔한 연못에 돌멩이를 하나 풍덩 던지면 파문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큼직하게 퍼지더니 이내 곧 약해지면서 사라집니다. 돌멩이 두 개를 던지면 파문이 일어나면서 겹쳐집니다. 저는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작곡가의 음악을 들으면서 어떻게 이 곡이 만들어지나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형식을 저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 작품을 저만 좋아하는 게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그 느낌이 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리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은 이렇게 소리의 파장이나 물결을 표현하기에 이르렀고, 재료도 캔버스 작업에 용이한 종이를 사용하게 됐다. 즉, 화폭에 그림을 그린 후 그것을 아주 짧게 잘라 화폭에 다시 순열 조합하는 패턴으로 작품을 독창적으로 완성해내고 있다. 100호 대작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해 <오, 환희I>, <거문고 산조>, <현을 위한 아다지오>, <잔향>, <윤슬> 등과 같은 그의 대표작품이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작가의 그림이 정적이라면 이주영 화백의 그림은 절정의 크라이막스에서 볼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심지어 기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마주한 그의 그림에서 바로 음악 소리가 뛰어 나올법한 환상을 경험했다. 이주영 화백은 이렇듯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의 조화를 치밀하게 고려하면서 창작활동을 잇고 있다. 이점만으로도 가히 미술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주영 화백의 작품세계는 향후 비단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새로운 경향과 특징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빛과 소리를 일치시키려 노력했던 화가로 기억되었으면 이주영 화백은 1970년대부터 빛과 소리를 적극적으로 시각화하기 위하여 자신의 회화 작품 400여점을 투사하는 영상을 제작한 바 있다. 그림에서 색채와 선을 율동적으로 강조한 그의 회화 작품을 뉴에이지 작곡가 Ray Linch 음악에 맞춰 우리의 몸과 정신의 정화를 느끼도록 의도했던 그의 행보 역시 빛과 소리를 일치시키려 노력했던 숭고한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언젠가 화가는 죽지만 작품은 소장만 잘하면 인간에게 많은 즐거움을 영속해서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술작품의 힘이죠. 제가 죽기 전에 이 작품들이 어딘가에 소장돼서 후대에도 제 그림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모든 예술가의 바람일 것이며,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음악과 동영상을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회를 준비 중인 이주영 화백은 올해 2월 <피아노 포르테>, <안단테 안단테> 등 4점의 작품을 가지고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 아트페어에 참가할 예정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유럽, 동남아 등에서도 아트페어를 계획 중인 이주영 화백. 시청각의 일치점을 표현하려고 애썼던 화가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앞으로도 빛과 소리를 회화로 계속해서 만들어가기를 기대해본다. 블루칩 작가 이주영 화백의 무한한 작품세계를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