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언택트(untact) 시대가 찾아왔다. 언택트란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에 부정·반대를 의미하는 언(un)을 합성한 신조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 간의 접촉은 최소화되고 있고, 외부활동마저 신중을 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듯 삭막해진 격리 생활과 사회적 거리 두기의 상황에서 그나마 문화와 예술을 통해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민화는 아주 좋은 장르임에 틀림없다.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에는 자신의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우리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영실 작가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영실 작가는 색감이 깊고 묵직한 것은 물론 은은한 기품까지 자아내는 옻칠 재료를 통하여 현대 민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민화가 한국화의 근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품활동을 열심히 해나가고 있는 이영실 작가를 만났다.
이영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정말 좋아했던 그는 화가의 꿈을 이루고자 미술학원을 찾았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하지만 본업인 약사로서의 일과 미술 작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여기에 더해 아이들의 엄마이기도 했던 이영실 작가는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그림을 잠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다시 그는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바로 그때 이영실 작가는 민화를 만났고, 약사로서의 인생과 작품활동의 균형을 맞춰나가며 깊은 삶의 연륜을 표현해나가고 있다. 파인 송규태 화백을 만나 민화를 사사하고 소산 박대성 화백의 그림교실에서 한국화의 정신을 함께 배웠으며, 성파스님 문하에서 옻칠 민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이영실 작가는 개인전과 단체전을 50여 차례 진행하였으며, 『조자용의 민화 운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그는 (사)한국민화센터 이사장, 옻밭아카데미 회장 등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잇고 있다.
민화와 전통 안료인 옻의 만남 이영실 작가는 작가로서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던 시기에 성파 큰스님이 개척한 옻칠작품에 매료됐다고 한다. 민화를 옻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새로운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옻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만큼 인내의 미학이 멋진 결과로 돌아온다. 이영실 작가가 지금까지 옻으로 새로운 작업물을 선보이며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다. “저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인 민화를 전통 안료인 옻으로 표현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옻으로 민화를 4년간 작업한 작품들을 지난해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 전시하였습니다. 지금 저는 통도사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통도사를 감싸고 있는 산이 바로 영축산입니다. 저의 대표작은 ‘영축산일월오봉도’입니다. 5m 크기인 일월오봉도에 영축산을 오버랩하고 평소에 작업했던 호랑이, 조랑말, 두꺼비, 거북이 등을 숨겨두었습니다. 두꺼비는 실제 제 작업실 앞에 나타나곤 하던 영축산 금두꺼비의 실물입니다. 이 작품은 현재 부산시청에 걸려있으며, 통도사와 영축산의 사계를 담으면서 사찰 전각벽화에 남아 전해지는 민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켜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영실 작가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절실한 기원을 빌었던 통도사를 감싸는 영축산을 라라(羅羅)랜드로 만드는 작업에 한창이다. 이를 통해 꿈을 놓치지 않고 이루고자 노력하는 마음을 담아내려고 한다. “저의 라라랜드는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마음과 정성과 기원이 담긴 세상입니다. 우리 할머니가 저를 업고 ‘나중에 공부 잘해서 부잣집에 시집가야지’ 하시던 것을 기억합니다. 옛날 그 시절이나 지금 우리들의 기원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주 출신인 이영실 작가가 꿈꾸는 라라랜드의 ‘라’는 신라의 ‘라’로 그의 세계를 펼쳐간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또한, 그는 요즘은 책가도 분(芬)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다. 책가도 분은 분황사의 향기 나는 ‘분’자 그대로 통도사 서운암의 아름다운 향기를 담아낼 전망이다.
예술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 “예술이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이고 바탕에 깔려야 하는 필수 교육이란 생각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문화와 예술에 눈뜨게 만들어 평생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접했던 음악, 미술, 문학이 평생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럼으로써 제가 끝까지 그림을 놓지 않고 그린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의 예술교육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영실 작가는 오랜 시간을 약사로 일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미술 작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지금 집중하고 있는 옻 작업에 그러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를 늘 고민한다. ‘치유’는 이러한 그의 고민에 대한 대답이다. 그림이나 약이나 결국 치유를 위해 존재하며, 그 지점에서 이 둘은 공통분모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영실 작가가 약사이자 작가로서 많은 이들을 치유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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