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서민층에서 유행한 민화(民畵)는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만들어진 그림을 뜻한다. 민화는 민중이 그린 가장 한국적인 그림인 동시에 서민의 염원을 담아낸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미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작품활동을 펼치는 작가가 있어서 본지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민화에 나타나는 상징성을 현대적인 도구를 활용하여 현대적인 이미지로 재창출하고 있는 서양화가 김양훈 작가를 긴 장마가 끝난 어느 여름날에 만났다.
옥상 정원이 딸린 김양훈 작가의 작업실은 그를 닮아 아주 평화로웠다. 자신의 그림을 보고 많은 이들이 좋은 기운을 얻었으면 한다는 김양훈 작가의 작업실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김양훈 작가의 작업실에서 먼저 눈에 띄던 것은 그의 작품이 아니었다. 바로 3D 프린터와 수많은 컴퓨터 관련 서적이었다. 도전을 즐기는 그는 15년 전부터 컴퓨터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미술과 컴퓨터의 융합을 꿈꿨다. 그리하여 김양훈 작가는 지난해부터 물감이 아닌 3D 프린터를 활용하여 작품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2대의 3D 프린터는 최고의 조수 역할을 해내고 있으며, 김양훈 작가는 이들에게 손수 이름도 지어주며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작업방식은 평면작업에서 3D 작업으로 넘어온 상태이며, 3D 프린터라는 현대적인 도구를 이용하여 민화를 재창출해나가고 있다.
잉어에 강한 기운을 담다 민화에 큰 울림을 받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민화를 그리는 데 여념이 없는 그는 강렬한 원색을 배경으로 매화, 대나무, 물고기 등 대표적인 민화 소재를 주로 그렸다. 그중에서도 황금 잉어를 주로 그려 ‘황금 잉어 작가’로도 알려진 그는 이를 통해 생동하는 강한 기운을 담아내려 애썼고, 그 결과 작품 속 잉어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작품 초창기에는 잉어를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실제 잉어와 움직임, 지느러미 모양, 눈 모양 등을 흡사하게 그린 것이죠. 그랬더니 잉어에 제가 담고자 했던 힘이 잘 안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점점 잉어에 힘을 주고 지느러미에 변형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작품 속 잉어를 통해 강한 기운을 느끼는 감상자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김양훈 작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고 좋은 감성을 가지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뉴스에서도 매일같이 다루는 죽음이나 사회 비판을 주제로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좋은 것만 보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에서 작가까지 그러한 것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펼칠 이유는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것이 그가 민화를 계속해서 그리는 이유이며, 컴퓨터와 접목한 작품들 역시 좋은 감성을 전하는 것에 초점을 두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느낌이 없으면 감동할 수 없다 “물고기를 계속 그려가던 중의 일입니다. 조금 더 생동감 있게 물고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한번은 친구가 낚시를 간다길래 같이 간 적이 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서 만져보니 미끌미끌한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다시 물고기를 그렸습니다. 그림이 예전보다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주위에서도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이따금 인물화를 그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안 본 사람은 제가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보고 나면 생생하게 그 사람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미술을 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느낌이란 게 많이 좌우한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되었습니다.” 김양훈 작가는 이렇듯 인간만이 지니는 감성과 느낌을 계속해서 개발해나가는 것이 코로나 시대를 이겨낼 방법이자 미래 시대를 준비하는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좋은 감성을 발산하는 작품을 앞으로도 만들고 싶다는 김양훈 작가. ‘이번 생은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는 김양훈 작가의 즐거운 하루 속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그의 작품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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