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봉제기술자 빠진 상생전략은 쇼잉’이라며 패션계를 질타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리씽킹 서울>을 통해 작은 개발, 착한 개발, 공정한 개발을 통한 도시개발을 주장해 왔고, ‘동대문의 답은 창신동(봉제공장)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패션계의 발전은 디자이너가 아닌 봉제 기술자 육성에 있다는 것. 대한민국 대표 봉제사로 칭송받고 있는 한어패럴의 한상민 대표를 만나 그 실상을 들어봤다.
의류 임가공제조업체 한어패럴의 한상민 대표가 17살 어린 나이에 패션계에 입문했을 때에는 봉제 산업이 국가 주력 산업인 시대였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라 해서 이 길을 선택했고 30년 외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맞춤 봉제 산업의 마지막 세대가 되었다. 맞춤복 시장이 활성화 되었을 당시에는 디자인, 패턴, 미싱, 완성 단계의 모든 기술을 마스터해야 비로써 봉제사로 인정받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게를 창업할 수 있었다. 그만큼 옷 한 벌을 온전히 완성해 내는 명장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봉제를 천직으로 알며 30년 세월을 견뎌 한 대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봉제사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맞춤복 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든 후였다. 지금은 기업 차원의 경제성을 위해 봉제기술도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기술자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다. 그는 원가절감을 내세우며 기술자들에게 유독 비상식적인 대우를 해오는 패션계에 일침을 놓는다. “명품을 만들어 내는 나라에서는 봉제 기술자도 봉제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봉제기술이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시스템의 변화가 시급합니다.” 본사와 하청업의 갑과 을 관계에서 기술과 노동의 착취가 인가공에 개입이 되고, 카피한 디자인을 1주일 안에 시장에 풀기 위해 그들에게 10시간~16시간 이상의 노동 강도를 강요해오고 있다. 좋은 디자인을 바탕으로 최상의 컨디션으로 퀼리티 높은 봉제기술을 선보이며 거기에 걸맞은 대우를 통해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이태리, 프랑스 장인들의 근무환경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봉제기술이 젊은 세대로 전수되지 못하고 있다. 곧 봉제기술 숙련자들을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웃지 못 할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패션계는 구조적인 불균형 속에서 사업자들만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시스템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제라도 변화를 꾀해야만 할 것이다.
봉제 산업의 재도약을 꿈꾸다. 한상민 대표는 무엇보다 인프라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는 2006년부터 (사)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진흥원, 동대문 의류봉제협회에서 봉제 기술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고 익힌 기술을 후진 양성을 위해 기꺼이 전수하고 나선 것. 하지만 여전히 젊은 세대의 유입은 미비한 실정이다. “지금은 환경이 열악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봉제기술의 비전은 무궁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봉제기술은 70대가 되어도 건강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 특화된 기술입니다” 한 대표는 봉제 산업 발전 및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표창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는 이번 수상을 정부차원의 긍정적인 노력으로 평가하며 더 폭넓은 지원과 관심을 기대했다. 특히 그는 ‘소공인 지원법’에 많은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다. “50대 후반부터는 재능기부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후진 양성을 하다 보니 나만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대표는 오늘도 자신이 대한민국 봉제기술자의 마지막 이름이 되지 않기를 염원하며 후진 양성위해 힘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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