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는 인류의 발자취가 그려져 있다. 위치 정보의 차원을 넘어 그 시대를 보는 거울이다. 또 지도는 우리에게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시험지다.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김혜정 관장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주고 싶어 한 평생을 지도에 바쳤다. 김혜정 관장의 아름다운 지도이야기를 들어본다.
김혜정 관장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고지도를 많이 수집한 소장가이자 이를 발전시켜 박물관을 설립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혜정박물관은 상시 전시 중인 작품이 900여 점 남짓이지만 총 26만 여 점을 소장하고 있어, 방대한 고지도를 전시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기도 하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경희대학교 부속기관인 혜정박물관은 2005년 2월 1일 설립되었다. 당시 경희대학교 이사장이었던 조영식 박사와 김혜정 관장의 뜻이 맞아 만들어진 의미 있는 곳이다. 조영식 이사장은 만해평화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아인슈타인 평화상을 수상한 이력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사람을 생각하고 인류를 생각하는 선각자였기에 지도로서 평화를 알리고픈 김혜정 관장의 마음을 헤아려 성사된 것이다. 김혜정 관장은 “당시 조영식 이사장께서 문화발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그 분이 쓴 저서를 읽고 다른 대학의 권유를 뿌리치고 조 박사님의 뜻을 따르게 됐다.”라고 박물관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혜정박물관은 약 2,600㎡의 공간에 고지도와 관련사료, 각종 관련 도서 수 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18세기 후반의 신경준이 중심이 되어 제작한 대형의 채색 필사본 도별도인 경기도·강원도·함경북도·함경남도 4점은 국가지정 보물(제1598호)로 지정되었다. 제1전시실은 고지도에 대한 개념과 고지도를 보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고지도의 제작 과정 및 지도를 제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고지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 등에 대하여 전시하고 있다. 제2전시실은 동서양의 고지도를 통해 우리나라가 어떠한 형태로 변화하고 발달하여 나타나는지 시대 순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울릉도 및 독도, 제주도의 명칭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제3전시실은 고지도를 통해 동해의 정확한 명칭은 무엇인지와 일본의 의하여 왜곡되어가는 명칭 표기과정의 다양한 고지도를 전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제1특별전시실은 우리의 북방영토에 대한 역사가 고지도에서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소개하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간도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도서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제2특별전시실은 어린이들이 역사와 문화를 통해 지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혜정 관장은 “앞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더욱 다양화하고 지역에 관계없이 어느 누구라도 편하게 와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했다.
제주도에 전시관 설립위해 동분서주
김혜정 관장은 30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주도에 지적장애를 겪는 이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평생을 어려운 이들과 함께 했고 그야말로 ‘헌신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박물관장과 교수로 활동을 겸하며 후학양성에도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김 관장이지만 아직도 그녀는 현직에서 꿈을 향해 뛰고 있다. “대학박물관에 고지도박물관이 생긴 건 세계 유일입니다. 또 그만큼 내실 있는 자료들로 가득하고요. 젊은 시절부터 계속 연구한 보람이 있습니다. 지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꿈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고지도는 보는 것을 넘어 읽는 것입니다. 지도를 읽으니 자연스럽게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작품이 많아서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아까운 작품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 최종의 꿈이라면 제주도에 박물관을 겸한 테마파크 형태의 종합전시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그 작업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어요. 전시관이 만들어지면 고지도는 물론 인물과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곳이 될 겁니다. 또 우리나라의 황실문화를 알리는 계기를 만들어 우리민족의 정체성과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고 전하며 꿈을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그녀는 “지도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됐는지 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길이 보입니다. 우리민족은 1402년 세계지도를 처음 만들었고 17세기에 우리나라 전도를 그려냈습니다. 행복은 평화로움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지혜로움을 모아 현명한 삶의 지표, 국가와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찾고자 한다면 지난 과거의 고지도를 통해 미래를 보는 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상기된 얼굴로 지도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대학 교수로, 박물관장으로, 박물관학회장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내일의 우리 민족을 생각하는 김혜정 관장. 그녀야말로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진정한 리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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