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엘은 매년 시의성을 반영한 주제를 아젠다로 선정해 본 기관만의 예술적 표현, 실질적 해결 방안으로서의 창조 활동을 선보이고자 한다. 올해의 아젠다는 ‘공생’으로, 이번 전시와 다원예술 공모 프로그램 <플랫폼엘 라이브 아츠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의 제목인 ‘UNPARASITE’는 지난 2019년 화제가 된 봉준호 감독의 블랙 코미디 <기생충(PARASITE)>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재해석해 새롭게 만든 단어이다. <기생충>은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과 깊어지는 분열을 유희적으로 잘 보여줌으로써, ‘기생’을 넘어 ‘공생’, ‘상생’을 이야기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팬데믹 이후 현재의 상황을 단순히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닌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아와의 관계를, 공생의 가치를 되짚어보기 위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참여 작가들의 독창적인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현재의 삶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본 전시에 참여한 디자이너 작가군 23인(팀)은 시각 예술의 범주 안에서 가구 디자인과 시각 디자인, 공예, 건축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독특한 시선과 시각 언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디자인과 예술의 공통분모 안에서 기능성과 반 기능성에 대해 탐구하며, 구체적 메시지와 추상적 표현을 통해 주제를 아우르는 흐름을 전시장 공간 위에, 혹은 가까운 미래의 거주 공간 위에 펼쳐 보인다.
이번 전시는 플랫폼엘의 갤러리와 아넥스, 머신룸에서 진행된다. 갤러리와 아넥스 공간에서는 참여 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되며 관람객은 QR 코드로 접속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통해 작품에 대한 세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원하는 작품은 바로 구입할 수 있다. 머신룸에는 참여 작가의 인터뷰 영상이 설치되어 전시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전시장 전반에는 각 참여 작가들이 플랫폼엘이 제시한 공생의 아젠다에 맞게 제작한 신작과 구작이 함께 전시된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심규하의 참여형 작품, 전시장 곳곳에 퍼져 있는 오혜진의 0.1평 크기의 문서 작품과 갤러리 3층의 중앙에 설치된 크리스 로의 작품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듯 평면의 그래픽을 다루던 작가들은 평면에서 나아가 확장된 형태의 작업을 선보인다. 또한, 갤러리2에 설치된 맛깔손과 박길종(길종상가)의 협업, 김기문과 윤라희의 협업은 그래픽 디자이너와 아트 퍼니처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서로 공생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갤러리와 아넥스 공간에 설치된 아트 퍼니처와 아트 오브제를 다루는 작가들 역시 기존에 선보이던 작품의 맥락 안에서 공생을 다룬다. 이시산은 갤러리2에서 석탑의 비율을 돌의 크기에 맞게 변형해 새로운 석탑의 비율을 제안하는 <석탑>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인다. 갤러리3에 설치된 워크샵 파머스(유정민, workshop farmers)의 작업은 곡선과 직선 사이에서 일상 속 반복과 변형의 과정을 묘사한다. 중심과 가장자리, 안과 밖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골판지와 시멘트를 혼합해 풀어내고 있는 전치호는 이번 전시에서 시멘트와 골판지를 결합해 새로운 경계를 만든 벤치 작업을 선보인다.
아넥스3에는 유리를 다루는 글로리홀의 작업과 도자를 다루는 자연의 작품을 전시한다. 글로리홀은 UV 살균 램프를 더한 조명을 디자인했다. 이 작업은 기존에 선보이던 작업의 맥락에서 ‘가까이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빛’을 다루는 조명을 함께 선보인다. 자연은 흙 찌꺼기를 이용해 자연물과 흡사한 인공물로 표현한 <해양 생물> 작업과 동일한 모양이 한없이 반복되는 순환성을 표면에 드러낸 <모자이크> 시리즈를 함께 선보이며 자연과 또 같이 사는 공생의 삶을 묘사한다.
권오현과 양선희가 듀오로 활동해오고 있는 구트폼은 이번 전시에서 각각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아넥스2에 설치된 구트폼의 작업은 희망을 주제로 한 거대한 벽화 포스터 작업과 코로나19 이후 책을 통해 겪은 사람들의 감정과 어조를 분석해 막대 그래프 형태로 표현한다. 콘크리트로 사물이 사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오브제 건축가 그룹인 랩. 크리트의 김형술이 선보이는 신작은 콘크리트에 먹을 섞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의 조합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전시장 곳곳에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의 작품이 전시된다. 공생이라는 큰 맥락 안에서 참여 작가들이 풀어낸 각자의 이야기들은 따로 또 함께하며 팬데믹 이후의 변화된 삶과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한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