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집짓기’로 시작된 집짓기 붐은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잡지나 신문을 비롯하여 책과 방송까지 모든 미디어에서 삭막한 아파트에 지친 영혼들을 감미롭게 달래주고 있다. 대형서점에 가보면 ‘집짓기’ 매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정보도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고, 이미지와 편집도 나무랄 데 없는 책들이다. 그런데 ‘○억 원에 집짓기’, ‘아파트 전세값으로 내 집 갖기’, ‘○○일 만에 집짓기’, ‘○○평 안에 집짓기’라는 식의 책들은 집을 말하면서 여전히 비용과 면적에만 집중되어 있다. 당장이라도 아파트를 때려 부술 기세로 한국의 획일적 주거문화를 비판하며 탈주를 선동하고 나선 책들이 하나같이 새로운 집의 철학에 대해선 언제나 물음표 아니면 말줄임표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흐름출판 생활·예술·에세이 브랜드 ‘마이’에서 출간한《집 더하기 삶》은 <하우징 스토리>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건축가와 건축물을 재구성한 책이다. 이 책은 건축주들이 13명의 건축가를 만나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가족과 함께 주말을 즐기고 싶은 사람, 나만의 작업 공간이 필요한 사람, 인생 후반기를 즐기고 싶은 노부부, 멋진 풍경을 혼자만 차지하는 게 아쉬워 갤러리를 만든 사람까지. 이들은 건축가들에게 각자의 소망과 꿈을 이야기하고, 집짓기를 통해 이를 실현해간다. 또한 이 책은 우리에게 집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어떤 추억을 만들고 싶은지를 생각해보게 하고, 더 나아가 내 삶에 맞는 집을 찾아가게 만든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집, 혹은 호숫가 옆에 펼쳐져 있는 집, 능선과 어우러진 집, 공장을 개조한 집, 비탈진 언덕길을 따라 세운 집, 옛 집터의 흔적을 간직한 집, 쪽빛 바다를 품은 집……. 이 책에는 이처럼 여러 가지 형태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집들이 소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건축가 김인철이 지은 ‘호수로 가는 집’은 사업가의 삶을 접고 자연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어느 부부의 꿈을 담은 집이다. 이 부부는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했다. 답답하고 갑갑하지만 편리성이 뛰어났던 아파트와 도시를 떠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깊이 고민한 끝에 도시와 멀어진 곳에 삶의 터를 잡기로 한 것이다. 호수로 가는 집의 주인공 이규익·김을식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이 부부는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나날을 뒤로하고 전원생활로 과감히 돌아갔다. 춘천시 사북면 가일리,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굽이굽이 가파른 길을 지나야만 닿을 수 있는 작은 마을. 그들은 광란하는 도시의 불빛마저 굽어 들어오기를 포기한 순수 의 자연으로 돌아갔다. (p.23) 혹자는 ‘돈이 있으니 저렇게 좋은 집을 짓고 살겠지……’라며 좋은 의도로 기획하고 건축한 집을 눈을 흘기며 볼 수도 있지만, 이 집들은 단순히 돈으로만 완성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고민한 후, 그들이 원하는 앞으로의 삶을 위한, 그 터전을 만든 것이다. 집들에는 그들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집들의 모습을 넘어 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선물한다. 사람의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의 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공간 속에서 오롯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았는가, 혹은 살고 있는가는 그 집들이 증명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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