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이우섭 화가의 생애 첫 개인전이 열렸다. ‘TRACE’라는 타이틀로 치러진 이번 전시에서 이우섭 화가는 역동적인 기하 추상 작품 20여 점을 선보였다. 본지에서는 ‘나는 자연산이다. 나는 양식이 아니다. 남의 그림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라는 좌우명답게 자신만의 미술 언어와 미학 세계를 구축하여 첫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친 ‘팔순의 젊은 작가’ 이우섭 화가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에 있는 그의 화실에서 만났다.
이규섭에서 이우섭으로
이우섭 화가의 본명은 이규섭이다.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테리어 건축 디자인 회사인 ‘SUBI DESIGN’(서비디자인)을 운영했다. 여기서 ‘SUBI’는 이규섭의 끝 자 ‘섭’을 풀어쓴 것이다. 디자인 선진국에서는 많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성이나 이름을 브랜드화함으로써 디자이너의 철학과 책임감을 표현한다. 오랜 사업가 생활을 마무리하고 학창 시절부터 품어온 화가라는 꿈에 다가가기에 앞서 그는 ‘이우(玗)섭’이라는 예명을 지었다. 그가 사업가 시절 이규섭을 브랜드화한 것처럼 ‘화가’라는 제2의 인생은 이우섭을 브랜드화하여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는 수십 년을 SUBI DESIGN을 운영하며 살아왔지만, 제 마음속에서 한순간도 그림을 내려놓은 적이 없습니다. 이에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매달 인사동 일대 갤러리에서 약 1,500점씩 작품을 감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잘 그린 그림은 많았지만 좋은 그림은 없었습니다. 제가 이규섭이 아닌 이우섭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없던 저만의 그림을 그리려는 이유입니다.” 그의 미술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스승은 개성중학교 시절 은사 김종식 선생이다. 미술 시간의 수업 도구였던 홍시를 먹은 벌로 일주일간 미술실 청소를 하게 된 이우섭 화가는 그림에 흥미가 생겨 미술반에 들어가게 됐고, 당시 그의 눈에 잘 그린 그림으로 보였던 미술반 친구들의 작품을 흉내 내서 그렸다. 그때 김종식 선생은 그에게 “이게 어찌 너의 그림이니? 쫓아 그리는 것은 도둑질이나 다름없다”라고 쓴소리를 건넸다. 그 말 한마디에 이우섭 화가는 그림에 관한 생각이 100% 바뀌게 되었고, 그의 좌우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우섭 화가는 이른바 ‘인사동 미술’로 불리는 정통화단 대신 자신만의 새로운 기법에 도전하고 있으며, 평생을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의 자세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나는 양식이 아닌 자연산!
이우섭 화가의 첫 개인전은 드립핑(dripping) 기법이 하나의 구조를 이루면서 공간에 스며든 <trace> 연작으로 채워졌다. 드립핑 및 번짐 기법을 활용하여 시간의 유한성을 정제된 색감으로 기품 있게 표현한 그의 연작들은 기존 그림 양식과 시류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야말로 독보적인 아우라를 풍긴다.
“제 그림은 붓이 캔버스에 직접 닿은 게 없습니다. 전부 떨어뜨린 겁니다. 어떤 높이에서 떨어뜨리느냐에 따라 원형의 크기가 제각기 다릅니다. 그런데 붓을 대고 그리면 똑같은 흔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저는 오랜 세월 답습된 양식화된 기법이 아닌 우연과 시간의 흐름에 맡긴 작업으로 개성적 화풍을 다듬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어떤 주류도 따르지 않고 저만의 미술 언어를 개척해가겠습니다.”
이우섭 화가는 액자를 쓰지 않는다. 액자는 일종의 화장이라는 생각에서다. 즉, 액자 역시 양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은 반드시 벽면에서 일정 부분 떼어내 디스플레이하는 것은 물론 전시장에 레일을 설치하여 작품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전혀 새로운 시도는 그가 양식이 아닌 자연산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오는 10월 갤러리 라메르에서 차기 전시가 예정돼있는 이우섭 화가가 앞으로도 자연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좋은 그림을 그려가기를 기대해본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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