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九旬)의 서예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기자가 제주 출신 한국 서단의 원로 라석(羅石) 현민식 서예가를 본 첫인상은 그랬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총명했고 걸음걸이도 다부졌으며 전체적으로 청춘 못지않은 기백이 물씬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는 구순의 나이에도 건강을 기반으로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작품활동을 왕성히 펼치고 있다. 본지에서는 이 순간에도 세속에 오염되지 않고 서예의 정도를 부단히 걸어가고 있는 라석 현민식 서예가를 제주시에 있는 한 찻집에서 만났다.
한·중 미술교류전서 한국 대표작품으로 선정 쾌거
제주 태생인 라석 현민식 서예가는 6세 때 서예에 입문한 이래 붓길 외길 인생을 걸으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는 정확한 필법을 익히기 위하여 매일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임서에 매진하는 등 오랜 시간을 부단히 노력했다. 또한, 무수한 서예 전문 서적을 탐독하였으며, 서법 연구에 남들보다 곱절 이상의 정성을 보탰다. 이렇듯 서예에 법고창신의 길을 걸어온 라석 현민식 서예가는 깊은 고뇌와 장구한 시간 끝에 모든 서체에 능통해졌으며 특히 행서체를 높게 평 받는다. 실제로 그의 행서작품은 2010년 8월 중국 산동성 태안시에서 열린 한·중 미술교류전에서 우리나라 작가 작품 100여 점 중 대표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한·중 미술교류전에서 제 작품이 한국 대표작품으로 선정된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제 행서작품은 중국 측 대표작품과 나란히 전시장 입구에 걸렸습니다. 이후 제 작품은 중국 3대 예술지 중 하나인 ‘희지서화보(羲之書畵報)’의 1면 전면에 실린 것은 물론 이듬해에도 5면 전면을 장식하였습니다. 이는 서예가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라석 현민식 서예가에게 작년은 참 의미 있는 해였다. 그는 2020 제주문화예술재단 원로예술인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지난해 9월 미수(米壽·88세)기념 서화집 ‘라석 현민식’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이 서화집에는 라석 현민식 서예가가 지난 1984년 이후 제작한 주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정교한 운필법과 마음의 비움, 호쾌함 등 그가 지닌 여러 서예의 멋을 수록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이와 함께 서화집에는 그가 작품활동에 임하는 신념과 서도에 뜻을 둔 후진에게 남기는 메시지 등이 담겨 그 의미를 더했다.
글씨에는 기가 살아 있어야 한다
제주 서예인들의 아버지라 일컫는 라석 현민식 서예가는 제주도서예문인화총연합회 초대 대표회장, 대한민국서예대전 운영위원·심사위원·초대작가, 한국서예협회 제주도지회 창립 1~4회 지회장,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 부이사장, 전국서화예술인협회 부회장·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재암문화상, 제22호 한국미술국제공모대전 국회의장상, 제주도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그는 라석서예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글씨에는 기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글씨를 쓰는 나 자신이 자신만만한 마음으로 쓰면 그게 고스란히 글씨에 나타납니다. 저 역시 서예는 마음으로 쓰는 것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수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세속에 오염되지 않고 서예의 정도를 열심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음악은 마음의 소리요,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라고 강조하는 라석 현민식 서예가. 100세 시대가 도래됨에 따라 마음으로 그려내는 서예는 좋은 취미활동으로써 향후 더욱 주목받을 전망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이 라석 선생처럼 서예를 즐기며 참된 행복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기대해본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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