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것>은 작가가 매일 색상, 질감, 동세 등에서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인상적인 상태를 적어 두는 지난 몇 년의 습관을 전시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 우리가 본 것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물리적 경로이며 세상과 관계 맺는 장이라는 정서영의 조형인식을 나타낸다.
정서영은 ‘형(形)’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생각, 감정, 상황 등의 다양한 요소가 변화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다가 불현듯 관계를 맺어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 찰나가 바로 ‘조각적 순간’이다. 작가는 지난 30여 년간 이러한 유·무형적 요소까지 조각에 포섭하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형(形)’으로 이뤄지기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다양하고 복잡한 각각의 요소는 스치는 생각이나 감정, 행위, 사물, 상황 등에서의 유무형적 편린으로서 ‘나-사물-세계’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에서 유동적이고 독립적으로 산재한다. ‘조각적 순간’은 이들 각각이 찰나적으로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고 관계를 맺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의미하며, 이때 조각은 발생하게 된다. 작품의 제목이나 텍스트 드로잉 형태로 사용하는 특유의 언어 또한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요소로서 각 요소 간 충돌, 갈등, 선택, 소멸의 과정을 거치며 그 맥락을 한층 다면화한다.
작품이 등장하면서 엮이는 모든 관계를 중시하는 작가의 특성상 이번 전시 또한 작품 간, 작품과 그것이 놓인 위치 간 관계성이 새롭게 형성되어 제시된다. 전시 초입은 작가의 예술적 세계관과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초기작 3점으로 구성된다. <전망대>(1999)는 ‘사물에 가담하고 투사’하는 작가의 태도가 드러나며, <파도>(1998-2022)는 동적 또는 무형의 것을 조형 예술적으로 포섭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어>(1996)에서는 작품의 제목이나 텍스트 드로잉 형태로 나타나는 작가 특유의 언어 기법을 볼 수 있다.
전시 중간부는 일상적인 재료가 간결한 외형으로 다층적인 의미를 파생하고, 그와 대비되는 빈 공간의 여백이 역설적으로 더 풍부한 함의의 여지를 갖는 작가의 전시 특징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다. 지난 30여 년간 작가가 선택한 사물의 위상이 변화된 것이 느껴지는데, 일부 재료는 단종되기도 하였고, 빛, 소리, 문자 등이 새롭게 채택되어 조각 영역의 확장이 시도된 면이 보인다. 특히, 중앙에 위치한 <뇌 속의 뼈>(2022)는 간결한 직선 형태의 브론즈가 이어지고 갈래 쳐 뻗어나는 형상으로 유동적인 요소들이 뼈대와 같은 형(形)을 갖추는 ‘조각적 순간’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며, 전시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느낌을 준다.
전시 말미의 두 채널 영상 <세계>(2019)는 유토로 캐스팅된 호두 조각을 둘러싼 빛, 사운드 등이 미세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10여 분간 관찰하는 작품으로 어떤 것을 오랜 시간 집중해서 보는 문제를 다룬다. <말 그대로>(2022)는 일상적인 재료인 소금이 표면에 스며들거나 붙어서 역설적으로 ‘빈 공간’의 의미가 더 증폭되는 작품이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최근 들어 미술계에서 조각에 관한 다양한 관심과 해석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조각가 정서영의 이번 개인전은 큰 울림을 가질 것이다. 작가는 전통조각의 전형적 문법을 해체하며 동시대 조각 개념을 지속적으로 확장해왔으며, 특히 이번 전시는 그의 함축적이고 조형적인 매력을 가진 작품을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일별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이다."라고 말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