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으로 단체 입국한 한국인들이 탈레반의 인질이 되는 피랍사건이 발생한다. 전례 없던 사상 최악의 피랍사건에서 시작되는 영화 <교섭>의 소재는 언뜻 자극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섭>은 피랍된 인질들이 아닌, 그들을 구하러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영화 <교섭>은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동분서주한 이들의 존재와 그들이 어떤 과정과 고민을 거쳐 교섭을 이뤄냈을까? 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임순례 감독의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을 구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이야기”라는 말은 선악의 이분법보다 사람을 구하러 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 영화 <교섭>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임순례 감독이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의 사명감에 중점을 찍은” 이유기도 하다.
피랍사건과 인질들의 구출이라는 발단과 결말의 토대 위에, 교섭 작전의 디테일과 캐릭터라는 주요 뼈대를 채워 넣은 영화 <교섭>의 스토리는 오직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이들의 사명감을 엔진삼아 달려 나간다. 그리고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을 중심으로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교섭에 임하는 사람들의 악전고투, 기필코 인질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을 붙들고 고군분투하는 인물들과 함께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을 약속한다. 또한, 국가의 존재 이유와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만든다.
황정민이 연기한 유능한 외교관이자 협상가인 ‘정재호’는 탈레반과 교섭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 자체가 외교적으로 최악의 패라는 원칙주의에서, 서서히 그러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는다. 교섭 실패의 좌절, 살해된 인질을 마주할 때의 참담함,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거는 결단까지. 황정민은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외교부의 중요 사명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라는 대사로 상징되는 ‘재호’의 파노라마 속에 관객을 동참시키는 설득력으로 <교섭>을 끌고 간다. 현빈이 연기하는 국정원 요원 ‘박대식’은 기존의 쿨하고 멋진 선망을 자극하는 캐릭터들과도, 황정민이 연기하는 외교관 ‘정재호’와도 대비된다. ‘국정원 또라이’로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 기피 대상일 수 있는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 전문 요원으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섭에 임한다. 과거 피랍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인질의 목숨을 잃지 않겠다는 그만의 방식은 외교관 ‘재호’와 대조되며 입체적인 터닝 포인트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 아프가니스탄 유일의 파슈토어 통역 전문가를 자처하는 잡초 같은 한국인 ‘카심’ 역의 강기영이 돈만 주면 뭐든 할 것 같은 현지화 지수 100%의 위트와 연기력으로 <교섭>의 극적 재미에 또 다른 물꼬를 튼다.
임순례 감독은 세 배우의 협업에 대해, “황정민 씨와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이후 21년 만인데,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힘 있는 배우가 필요했고 그는 훌륭하게 영화의 중심을 잡아 주었다. 현빈 씨는 늘 함께하고 싶었던 배우였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거칠고 자유로운 모습을 ‘박대식’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 절친한 사이인 황정민 씨와 현빈 씨의 투샷에서 느껴진 서로를 향한 자연스러운 신뢰감이 두 사람의 입체적인 케미스트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강기영 씨는 외국어 구사에다 연기까지 얹어야 하는 어려움에도 미묘한 선을 스스로 잘 지키면서 활기와 재미를 만들어 주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유능한 외교관과 아웃사이더인 국정원 요원, 잡초 같은 통역까지. 차이를 딛고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연대하며 공감과 이해로 나아가는 이들의 앙상블은 <교섭>의 최대 강점 중 하나다. 1월 18일 개봉.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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