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전은 지난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수집된 한홍택(1916~1994)의 작품과 아카이브, 그리고 2022년 기증된 이완석(1915~1969)의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동시기 활동했던 작가들과 다양한 자료를 통해 한국 근현대디자인의 태동과 전개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고자 마련되었다. 1945년 해방 직후 한홍택은 권영휴, 엄도만, 유윤상, 이병현, 이완석, 조능식, 조병덕, 홍남극, 홍순문 등과 함께 최초의 디자인 단체인 조선산업미술가협회(현 대한산업미술가협회, 이하 산미협회)의 창립을 주도했다. 이들은 미술과 디자인이 지금과 같이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되기 이전에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했던 선구자로, ‘산업미술’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정의하고, 불모지였던 한국 디자인계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모던 데자인’이란 제목은 1958년 개최했던 <제2회 한홍택 모던 데자인전>에서 발췌한 것으로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 이전 도안, 산업미술, 생활미술, 응용미술, 장식미술과 같이 번역된 어휘가 뒤섞여 사용되었던 시대적 조건을 환기한다. 이번 전시는 한홍택 작가의 아카이브부터 산업미술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제안과 실험을 엿볼 수 있는 포장, 책표지, 도안 등 다양한 형식의 디자인 작업들이 전시된다. 또한, 1950-1960년대 도시 풍경 속 각양각색의 간판, 옷차림 등이 기록된 사진 및 영상 아카이브를 통해 국가 재건 시기 한국의 생활상에 녹아있는 당대 시각문화를 다각도에서 추적해 볼 수 있다. 전시는 다음과 같이 4부로 구성된다.
1부 ‘미술과 산업: 산업미술가의 탄생’에서는 한홍택의 초기 작업과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일본 유학 시기 교육과정을 비롯해 조선산업미술가협회의 창립과 해방 전후 다양한 활동을 살펴본다. 또한, 함께 산미협회를 주도했던 이완석이 1930년대 후반 천일제약의 도안 담당으로 근무하던 시기에 수집한 천일제약의 상표와 각종 광고, 포장디자인에 관한 자료들을 통해 해방 이전 시기 디자인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초창기 산업미술가들의 활동을 조망하고자 포스터, 장정과 삽화, 광고와 포장디자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현된 이 시기의 다양한 실천을 함께 소개한다.
2부 ‘모던 데자인: 감각하는 일상’에서는 전후 사회 복구와 민생 안정을 위해 들어온 미국의 원조물자로부터 접하게 된 서구식 문화와 물질, 현대적 삶을 지향하는 대중의 욕망이 투사된 사물과 이미지, 일상의 풍경을 다룬다. 산업적 토대가 부족했던 시기 스스로의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 분투했던 산업미술가의 다양한 작업이 함께 소개된다. 한편 대중의 일상, 기호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일상의 시각문화를 수집한 김광철의 <로고 아카이브 50-60s, 기업의 탄생과 성장〉(2022), 장우석의〈한글 레터링 컬렉션〉(2022), 더 도슨트(백윤석)의 <골목 안 풍경>(2022)을 비롯해 가장 모던한 현재를 살고자 했던 이들의 모습이 생생히 담긴 한영수의 1950-1960년대 도시 풍경 사진은 시대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3부 ‘정체성과 주체성: 미술가와 디자이너’에서는 미술가와 디자이너,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지녔던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하여 미술과 디자인 사이의 영역에서 그간 놓치거나 혹은 배제되었던 작가와 작업을 새롭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한홍택은 <한홍택 산미 개인전>(1952)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개인전을 통해 ‘데자인’, ‘디자인’, ‘그라픽아트’, ‘시각언어’등 용어의 도입으로 분야의 정체성을 정의하고자 했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미술 단체의 참여와 작품을 통해 화가로서의 활동도 병행했다. 또한, 화가로 일찍이 주목받다 산업미술가로서 입지를 확장했던 문우식(1932-2010)의 작품도 소개한다.
4부 ‘관광과 여가: 비일상의 공간으로’에서는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과 현대적 시각화를 시도한 산물인 산업미술가들의 관광포스터 원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관광산업진흥정책이 주요한 국가정책의 일환이던 시기 경주, 제주, 강원도 등 지역을 주제로 제작된 산업미술가들의 포스터는 일상의 공간에 환상을 더하는 강력한 홍보 수단이었다.
전시의 시작과 끝을 교차하는 2층 회랑 공간에서는 동시대 그래픽 디자이너 10인/팀이 함께한 설치프로젝트 <데자인 시대의 표어들>(2022)을 선보인다. 산업미술가들의 기고문, 디자인정책에 관한 언술, 기자 및 논평가들이 남긴 기사 등을 통해 당시 디자인에 대한 인식과 디자인에 요구되었던 시대적 과업 등 ‘데자인’시대 디자이너들이 맞닥뜨렸던 사회적 조건을 조망할 수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기 산업미술가들의 활동을 다양한 작품과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과 디자인의 역사가 서로 교류하고 분화되는 과정을 살피고, 분야 간 논의의 장을 확장하는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